이 말에 혹자는 반대할 수도 있다. 오는 25일이면 취임 한 달을 맞는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얘기로, 필자는 박 대통령이 나름 신념의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 후반 금융위기가 우리 사회를 덮쳤을 때 -물론 주어는 상상하기 나름이지만-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라며 떨치고 일어나 정치에 입문한 박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의 탄생 스토리부터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런 박 대통령이 특히 강조하는 게 있다. 바로 법과 원칙이다. 포장도 그럴듯해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혹은 사람들은)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를 떠올릴 때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분명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바로 떠올릴 정도다.

하지만 포장이 실체는 아니듯 사회 현안, 그 중에서도 노동 현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원칙은 이중 잣대 속에 작동하고 있다.

▲ 노사자율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일관된 입장인 것이다. 반면 파견법에 따라 현대자동차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현대차와 불법 노조 파괴 공작으로 문제가 된 유성기업 등의 사업주에 대해선 침묵을 지킨다. 2월25일 18대 대통령 취임식이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독자 제공

먼저 불법파견의 문제를 지적하며 벌써 160일 이상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문제 탓에 서울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오른 재능교육 해고자들(이들은 노조 인정을 위해 1,900일 이상 거리농성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30일 가까이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쌍용차 해고자들에 대한 부분이다.

박 대통령은 이들의 문제에 일절 나서지 않는다. 노사자율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일관된 입장인 것이다. 반면 파견법에 따라 현대자동차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현대차와 불법 노조 파괴 공작으로 문제가 된 유성기업 등의 사업주에 대해선 침묵을 지킨다. 결과만 놓고 판단할 때, 박 대통령은 한쪽에 대해선 원칙의 준수를 말하면서도, 또 다른 쪽에 대해선 법을 어겨도 좋다는 사인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런 모습에 미루어 짐작할 때 박 대통령은 어쩌면 노동자의 권리와 관련한 문제보다 기업의 이익 추구 행위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것이 다시는 “어떻게 세운 나란데”라며 그가 분개할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는 길이라는, 나름의 ‘신념’에 따른 행동일 지도 모를 일이라는 얘기다.

최근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지식 소매상’으로 돌아온 유시민 전 의원의 말을 빌자면, 어떤 신념도 완벽하게 옳다거나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노동권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념이 필자와, 혹은 이 글을 읽는 이들과 다르다 하더라도 그 신념 자체에 돌을 던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 신념에 박수를 보내며 그를 지지한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개인의 위치에서 가능한 생각일 뿐, 언론의 위치에선 달라야만 한다. 민주·법치주의 국가의 대통령을 평가할 때 한 명의 정치인으로서 신념을 우선 고려할 순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지상파 방송 3사를 비롯한 다수 언론에선 노동 현안에 이중 잣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박 대통령을 향한 문제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불법 엄단”을 단호하게 말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의 신념이 대통령 자신과 주변인들, 그리고 대통령을 선택한 절반의 대중에겐 옳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겼다 하여 대통령이, 혹은 특정 정치집단이 보이고 있는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좋은 건 아니다.

때문에 민주·법치 국가에선 다양한 견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언론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본령으로 한다고 정체성을 규정할 만큼, 큰 책임을 안고 있다. 거대한 권력을 쥔 정치인의 신념을 그저 전하기만 하며, 그 신념으로 훼손되는 한 사회의 법과 원칙을 방기해선 안 되는 이유다.

그 의무인 권리를 놓아버릴 때 언론 앞에 대중은 이런 말을 내놓을 지도 모르겠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처음 언론계에 발을 들인 후 모교에서 열린 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을 때 마주했다는, “개와 기자는 출입금지”라는 문구 말이다.

김세옥 <PD저널 > http://www.pdjournal.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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