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5일 오후 5시 부산 반여동 풍산마이크로텍 공장 안 천막농성장으로 조합원들이 하나 둘 모인다. 현장에서 일한 조합원, 교육장에서 교육을 받은 조합원, 부산 곳곳 농성장에 흩어져있던 조합원들이 투쟁 500일차 문화제를 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 3월15일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합원들이 투쟁 500일차 문화제에서 정리해고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정주

풍산마이크로텍은 해고자와 비해고자 가릴 것 없이 총파업에 돌입해 300일이 넘도록 함께 투쟁했다. 임금과 퇴직금을 나눠가며 생활했고, 상경투쟁, 노숙 등 모든 것을 해고 여부와 관계없이 같이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공장 안팎에서 함께 싸우자고 결정한 뒤 비해고 조합원 60여 명이 현장에 복귀했다. 회사는 조합원들이 복귀하자마자 징계를 시작했다. 1명 해고, 42명이 정직을 당했다. 문영섭 풍산마이크로텍지회장은 “투쟁한 조합원은 모두 징계를 당했다”며 “지난해 12월 정직 기간이 끝났지만 아직도 교육을 받으면서 현장에 복귀하지 못한 조합원이 많다”고 상황을 전했다.

▲ 3월15일 풍산마이크로텍 정리해고 철회 투쟁 500일차 투쟁문화제에 참석한 부산 지역 노동자, 연대단체 동지들이 임을위한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강정주

현장에는 복수노조가 있다. 금속노조 지회 조합원이 더 많지만 조합원 중 해고자는 대표교섭노조를 결정하는데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수노조가 교섭권을 갖게 됐다. “아니 조합원이라고 인정은 하는데 왜 그때는 쏙 빼는지 모르겠다”고 조합원들의 항의가 터져나온다. 지회는 5월23일 단협해지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해고자-비해고자 같이 달려온 500일

현장 복귀 뒤에도 비해고 조합원들도 출근선전전 등 투쟁에 결합하고 있다. 해고된 조합원들은 서울에서, 부산시청 노숙을 하며 끊임없이 투쟁 중이다. 2011년 11월 2일 총파업에 돌입한 뒤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쉼없이 달려온 500일 이었다. “조합원들이 꼬박 500일 동안 길거리를 헤맸다. 모든 조합원이 평균 1년에 3개월 이상 서울 투쟁을 하고, 부산에서도 노숙을 하느라 집에 들어가지 못한 시간이 많다.” 문 지회장은 “큰 규모의 사업장이 아니라 이슈가 크게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조합원들은 가혹한 투쟁을 견뎌왔고 공동투쟁, 다른 사업장의 투쟁 등 항상 투쟁 현장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 3월15일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합원들과 포레시아, 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이 함께 율동 공연을 하고 있다. 강정주

풍산마이크로텍지회는 2003년 지회 설립 이후 늘 투쟁을 해왔다. 민주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의 탄압에 맞서 투쟁이 계속됐고, 한때는 조합원이 11명 밖에 남지 않은 때도 있었다. “소수가 징그럽게 싸우면서도 민주노조를 지켰다. 그 투쟁을 하면서 연대만이 살 길 이라는 것을 조합원들이 깨달았다”고 문 지회장은 연대 투쟁에 조합원들이 나서는 이유를 말했다.

“또 이것이 풍산 안에서만 싸우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을 조합원들이 모두 알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문 지회장은 풍산 노동자들 투쟁의 핵심은 ‘재벌 특혜’라고 꼬집었다. “직원들에게 말 안하고 회사를 매각해도 되고, 소수 지분만 가지고도 회사 다 팔아먹을 수 있다. 방위산업 하라고 싸게 내 준 땅도 개발하겠다고 하고 땅 투기로 돈 벌어도 합법이고, 경영 말아먹은 경영진은 버젓이 있는데 노동자들 잘라내도 다 합법이다. 이 모든게 자본의 입장에서 합법이 되는 그런 세상이 문제의 핵심이다.”

문 지회장은 최근 현장 복귀한 조합원들의 징계에 대한 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도 지적했다. “동료가 해고되서 같이 싸웠더니 징계하고, 그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도대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냐. 정의롭게 살면 다 피해만 받으니 사기치고 살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는 현실 아니냐”는 것.

▲ 3월15일 문영섭 풍산마이크로텍지회장이 “투쟁 승리하고 전국에 흩어진 조합원들이 모이는 날, 동지들을 다시 이 자리에 모셔서 승리보고대회를 하겠다”고 발언하고 있다. 강정주

자본 입장에서 무조건 합법, 노동자 생존권은 나몰라라

풍산 노동자들을 하나로 이어주고, 투쟁에 나서도록 하는 힘은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문 지회장은 “회사를 팔고, 땅 투기 하고, 정리해고 하고. 그 과정에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하나도 없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런 자본에 맞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 문 지회장은 현장에 복귀한 조합원들도 떳떳하게 투쟁한 이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살아있다’고 표현했다. “현장 조합원들도 노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해고자들이 모두 돌아올 때까지 싸운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

지난 투쟁 과정에서 풍산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가 풍산 그룹의 부동산 개발계획을 진행하는 가운데 벌어졌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풍산그룹 사업장 중 하나뿐인 민주노조인 풍산마이크로텍지회에 대한 정리해고가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문 지회장은 “회사는 작년부터 장비를 팔고 방위산업 부문을 안강공장으로 이전시키는 등 자신들의 계획 진행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지회장은 “결국 이 사태의 모든 책임은 풍산그룹에 있다”며 “500일을 맞은 지금 부산 시민들을 대대적으로 만나고 새로운 투쟁의 전환점을 만들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 3월15일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합원들이 부산 반여동 공장 안 천막 농성장 앞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은 해고자, 비해고자가 함께 정리해고 철회, 생존권 쟁취를 요구하며 500일 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강정주

이날 저녁 7시30분 풍산마이크로텍 공장 앞에서 부산 지역 노동자와 연대 동지들이 모여 투쟁 500일차 문화제를 열었다. 지역 동지들 모두 끈끈한 단결로 500일 투쟁을 이어온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끝까지 함께 투쟁하자는 결의를 모았다. 정리해고 철회 공동투쟁을 함께하는 시그네틱스, 포레시아 조합원들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문 지회장은 “108명이 500일 동안 달려왔다. 전국 곳곳으로 흩어져 투쟁하는 조합원이 한 자리에 다 모여본 적이 없다”며 “탐욕에 젖어 노동자들 버리는 자본에 맞서 승리하는 날, 전국 흩어진 조합원들이 이 자리에 모여 동지들과 함께 승리 보고대회를 열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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