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처만은 하늘이 두쪽 나도 임금님 옆에 있어야 한다!

양파 껍질을 계속 벗기다 보면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어떤 사건의 진실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촘촘한 여러 사실관계의 날줄과 씨줄이 모여야 사건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온 나라를 들쑤시고 있는 ‘세종시’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MB 정권이 지난 1월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했건만, 찬반 논쟁은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MB 정권은 삼성, 한화, 웅진, 롯데 등의 기업들의 세종시 투자를 끌어내며 범 정권 차원에서 홍보하고 있지만, 약발은 의도한 만큼 파괴력이 없어 보인다. 야당은 물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원안+알파’를 강조하며, 9부 2처 2청의 행정부처를 이전한다는 원안의 집행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 지난 해 10월30일,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밀마루전망대를 방문하자 연기군 주민들이 밀마루전망대 입구에서 세종시 원안추진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였다. 한 주민이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행정도시건설청을 방문해 방명록에 남긴 서명을 들고 있다. <오마이뉴스>

도대체 세종시라는 ‘정책’의 문제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날줄과 씨줄의 사실관계를 종합해 봐도, ‘왜 원안대로 하지 않는 거래?’라는 물음에 대한 속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일부 시민들은 MB 정권이 ‘강부자’ 내각이기 때문에 강남 집값 하락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행정부처 이전을 결사 반대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행정부처 이전과 강남 집값 하락의 상관관계가 그렇게 분명한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세종시에 내려가 근무하기 싫다’는 고위 공무원 심리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낯선 곳으로 가서 근무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노동자뿐 아니라 사람의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세종시 문제는 ‘MB 정부가 왜 행정부처 이전을 거부하는가?’ 하는 물음과 떼려야 뗄 수 없고, 이 물음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이 나와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채 제시되는 어떤 수정안도 약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수정안에 담긴 온갖 ‘특혜’가 새로운 논란의 불씨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활활 타는 불길에 기름을 퍼붓는 효과만 낳을 뿐이다.

MB 정권이 내세운 논리는 ‘국정 운영의 효율이 떨어지고 행정력이 낭비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상을 통해 국제회의를 개최하고, 휴대폰으로 영상통화를 하는 시대에 일부 행정부처를 이전한다고 해서 국정 운영의 효율이 떨어지고 행정력이 낭비될 것이라는 논리에 수긍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12월, 세종시에서 청와대 가는 시간과 과천에서 청와대 가는 시간을 견주는 웃지못할 사건이 있었다. 세종시에서 청와대까지 가는데 2시간10분 걸린다는 게 청와대 주장이었는데, 호남고속철도과 차량 이용을 결합하면 50여분밖에 안 걸린다는 반박이 제기된 것이다. 과천에서 청와대 가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20분밖에 더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사건에 대해 웃을 수 없는 이유는, 어쩌면 세종시 문제의 진실이 바로 여기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신비로운 국정 운영의 효율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행정부처 이전할 경우 나라가 거덜난다‘는 식의 정운찬 국무총리의 협박이 씨알이 먹히지 않는 물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남는 것은 두 가지 판단이다. 하나는 ’행정부처는 임금님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전 정권이 추진한 정책은 싫으니 모조리 뒤집어 엎는다‘는 것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지난 1월28일 경기도 의정부 컨벤션센터에서 “좌파 정권 10년 동안 이곳저곳 박아 놓은 세종시 대못과 같은 게 많이 있다”며 “이를 뽑아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식의 발언이 이를 상징한다.

개인적으론, 이 두 가지 판단이 세종시 문제의 본질이고 진실이라고 보고 있다. ‘좌파 정권 10년 대못 뽑기’ 프레임이야 MB 정권 내내 써먹을 수밖에 없는 ‘참주선동’의 카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행정부처는 임금님 옆에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것은 마치 검찰 조직의 ‘검사동일체’ 원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원리의 사전적 정의는 “검사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조직체의 일원으로서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관계에서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이견도 허용하지 않는 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상징하는 게 바로 검사동일체의 원리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작동한 ‘권력 기계’의 상징이 바로 나치스를 포함한 파시즘이라고 할 수 있다. 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교조에 대한 탄압 등을 통해 이견을 가진 세력을 억압하고 축출하는 MB 정권의 행태는 ‘행정부처는 임금님 옆에 있어야 한다’는 판단과 그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세종시 문제는 파시즘의 한 징후라고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말한 ‘원안+알파’가 맞는 해법이다. 행정부처는 이전해야 한다. 아울러, MB 정권이 수정안에 포함시킨 ‘교육과학 중심도시’도 구현해야 한다. 고려대가 이전하고 서울대가 이전하는 곳이 굳이 세종시 한 군데일 필요는 없다. 이 참에 서울대는 국립1대학부터 10대학으로 해체해 전국의 주요 도시에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부산에는 해양 과학에 전념하는 국립5대학이 있으면 되고, 서울에는 인문사회과학을 중점으로 하는 국립1대학이 있으면 되는 식이다. 이는 그동안 상식 세력에서 꾸준히 제기해온 해법이기도 하다. 교육 중심도시로서의 ‘세종시’는 전국에 여러 개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파시즘의 징후’로서 세종시 문제를 확 바꾸자. ‘플러스 알파’에 대한 상식 세력의 아이디어를 풍부화시키도록 하자. 이 ‘플러스 알파’가 지방선거에서 화두가 되도록 만들자. 이를 통해 ‘행정부처는 임금님 옆에 있어야 한다’는 파시즘의 망령을 쫓아내도록 하자.

조준상 / 공공미디어연구소장(옛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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