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이 칼럼은 금속노조 법률원의 변호사들과 노무사들의 참신하고 신선한 고민들로 채워집니다. 노동조합 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법률대응방안들을 모색하기 위해 매월 1회 최신 판례 소개하고 노동법정책 대안 등을 제시합니다.

최근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중요한 판결이 선고됐다. 노동관계법에서 부당노동행위제도는 사용자의 노동3권 침해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오히려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으로 둔갑했다. 판결문은 결코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수긍하지 못할 법해석자들의 그럴듯한 논리로 치장돼 있다.

대법원은 1991. 5. 28. 선고 90누6392 판결에서, 조합의 적극적인 요구 내지는 투쟁결과로 얻어진 것이라면 전임자급여지급으로 인하여 조합의 자주성이 저해될 위험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이후 현재까지 대법원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2011누34162 사건)이 작년 6월 23일에 노동조합 운영비 원조 금지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하더니, 올해 1월 10일에는 대전고등법원(2012누483 사건)에서도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상황에서 원조행위로 인하여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침식할 우려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사용자가 노동조합에게 지급하는 조합사무실 유지관리비, 차량, 유류비 지급을 모두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

단체협약에 근거한 운영비 지급이 노동조합의 자주성 침해와 무관하고 오히려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투쟁의 결과물로서 자주적 활동근거가 되더라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법은 상식이라는데 임금 한 푼 못 받으면서 파업하고 손배가압류, 징계 받아가면서 단체협약으로 확보한 노동조합의 권리를 법의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빼앗으면서 그것이 오히려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어느 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 법은 상식이라는데 임금 한 푼 못 받으면서 파업하고 손배가압류, 징계 받아가면서 단체협약으로 확보한 노동조합의 권리를 법의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빼앗으면서 그것이 오히려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어느 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한 사업장 조합원들이 휴게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신동준

노동자와 사용자의 이해가 대립하는 이상 노동자 이익옹호를 목적으로 하는 노동조합에 대해 사용자가 여러 가지 방해를 가해 그 존립과 활동을 억압하려고 하는 행위가 발생될 수밖에 없다. 노동3권의 보장을 위해서는 사용자의 방해를 금지하고 사용자에게 단결을 존중하게 하는 것이 불가결하다. 노동자 단결의 적극적 승인은 논리적으로 사용자의 단결침해행위를 금지시키는 것으로 이어졌고 노동자의 단결을 침해하는 행위를 유형화 시켜 놓은 것이 오늘날의 부당노동행위제도이다.

현행 노조법 제81조 제4호에서는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와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는 사용자의 직접적인 행위를 통한 지배개입(협의의 지배개입)이고,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는 경비원조를 통한 간접적인 지배개입을 의미한다.

경비원조는 협의의 지배개입행위와는 다른 수단을 통해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즉, 경비원조라는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훼손시키고 노동조합의 단결권 실현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따라서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선거나 운영에 개입할 목적으로 노조간부나 조합원을 매수하는 등 불법적으로 경비를 지급하는 경우에 한해 부당노동행위가 된다고 봄이 마땅하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는 단체협약이나 관행으로 인정된 노동조합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것이 오히려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라고 해야 한다.

고등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2012가단5991 사건에서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잃을 위험성이 현저하게 없는 한 부당노동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노사합의로 제공하기로 한 사업장 내 자판기를 사용자가 강제로 철거한 것은 위법하므로 다시 자판기를 설치하고, 자판기 철거로 인한 재산적 손해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에 위자료까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선고된 고등법원의 판결이 법원내부에서도 규범력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도 철도노조 사무실 전기요금 미지급이 문제된 사례(2011나5695)에서, 노조사무실 제공 관련 단체협약 조항은 전국철도노동조합과 철도청 및 한국철도공사 사이에 수십 년 이상 지속된 노사관계에 따라 이를 유지하기 위해 규정된 것으로서 사용자가 단체협약에 따라 노동조합 사무실에 관한 전기요금을 납부하더라도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잃을 위험성이 현저하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용자는 단체협약에 따라 전기요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앞서본 서울고등법원 판결의 원심판결인 인천지방법원 2010구합4968 판결에서도, 노조법 제81조 제4호 중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에 관한 규정에 따라 시설편의제공조항을 위법한 것이라고 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자주성을 상실하여 회사가 노동조합의 조직․ 운영을 지배하고 개입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시설편의제공조항에 대해 행하여진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취소 판결했다.

편의제공이나 운영비 지급을 덮어놓고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겠다는 것은 노동법 원리의 생성과 발전방향에 위배된다. 노동조합이 단결력과 투쟁을 통해 적극적으로 요구해 이뤄낸 결과물을 노동3권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존재하는 노동법의 이름으로 박탈한다는 것은 적어도 노동3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문화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법질서 내에서 인정될 수 없다. 사용자로 하여금 최소한의 편의제공의무를 법으로 강제하지 못할망정 국가가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으로 확보한 노동자의 권리마저 빼앗아야 되겠나.

서울고등법원과 대전고등법원 사건은 모두 대법원 상고됐다. 이로써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은 다시 한 번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게 됐다. 대법원이 최고 법해석기관으로서의 권위에 맞게 모든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고 오로지 노동현실과 노동법 원리에 부합하는 법령해석과 적용기준을 제시하기 바란다.

송영섭 / 노조 법률원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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