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는 자기가 게으르다 믿고(?)있었습니다. 지각해도 “제가 원래 게을러서요”, 수행평가 시간에 “영희야 아직 더 해야 되네?” 해도 게을러서요.
누구에게 그 말을 많이 듣니? “엄마요.”
언제 듣니? “아침에 못 일어나서 깨우면서” “방 청소 안 해서 지저분해질 때.”
그 말 들으면 어때? “처음엔 기분 나빠서 엄마가 하란 대로 안 하고 싶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제가 정말 게을러서 큰 문제라고 걱정이 되어요.”
게으르지 않을 땐 언제? “없어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몰라요”
지난번 동아리 발표회 때 제일 먼저 나와서 아이들에게 무용 가르쳤잖니? “......”
혹시 밤에 늦게 자니? “늦게 자도 일찍 자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요”
혹시 방을 치워본 적은? “엄마가 혼을 많이 내면 어쩔 수 없이 하거나 어떤 때는 그냥 치우고 싶어져서 마음먹고 치워요”
그때 기분은? “혼나서 기분 나빴지만 치우다 보니 화난 건 사라지고 뿌듯해요 상쾌해요”
엄마 반응은? “거 봐라 하면 되는데 게을러 걱정이다” “네가 웬일이냐?”
엄마가 네가 한 일을 잘 칭찬해주시지 않아 조금 서운했겠다. “네 조금.”
그럼 엄마가 왜 그러셨을 거라 생각해본 적 있니? “지각해서 혼날까봐 저를 걱정해서요.” “방정리가 안 되어서 제 물건을 저도 못 찾고 헤매니까 걱정이 되어서요.” 이런 영희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아네요.

“제가 원래 게을러서요”

엄마는 게으름은 ‘악’ 부지런함은 ‘선’이라는 사회적 통념으로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어서 문제 행동이 바뀌길 바라고 하신 말씀인데 행동의 변화는 없고 그만 아이는 자기는 ‘게으른 아이’라고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엄마가 뭐라 하면 “난 원래 게으른 걸 어떻게 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거나 행동을 제약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됩니다.

저와 영희는 영희가 긍정적이고 새로운 자아상을 갖도록 “게으르다”를 “난 아침잠이 많다” “난 마음만 먹으면 방을 잘 치운다”로 바꾸고 실제 행동의 구체적 지침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서두르지 않도록 일어나야할 시간을 정해 ‘적어도 7시 30분에는 일어나기’, ‘학원가지 않는 목요일 저녁 먹고 방을 치우기’로 일단 정해놓고 일주일 실행해보고 다시 만나 지침의 문제점을 다듬고 정리해나갔습니다. 예를 들면 저녁 먹고 치우려다보니 연속극 못 본다고 그래서 학교에서 가자마자로 바꾸고, 알람이 5분 간격으로 울리는데 7시 20분으로 해두어서 두 번 정도 울릴 때까지는 눈 감고 일어날 준비하기 등.

부모가 아이들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실제로 아이들은 부모가 표현하는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아이에게 자신을 전혀 새롭게 볼 기회를 제공(아침잠이 많다)하거나 아이에게 긍정적인 말(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을 하는 것을 듣게 하는 것은 비난이나 설득보다 기존 행동을 바꾸는 효과적 방법입니다. 아니면 기존 방식대로 행동했을 때 부모의 느낌이나 기대(방 정리까지 해야 하니 엄마가 할 일이 더 늘어 부담돼. 네가 방을 정리해주면 엄마가 덜 힘들 텐데 어때)를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쌓인 부정적 자아상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하기도 잘(?) 해야만 약이 됩니다. 칭찬과 벌은 타인의 의견에 좌우되고 이를 근거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는 정말로 착한 아이야. 나는 네가 할 수 있다고 믿어” 이런 애매한 칭찬은 부모가 선심 쓰는 것처럼 보이거나 바라는 행동을 조장하는 교묘한 노력으로 보일 수 있으며 자신이 칭찬받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때는 더 불안감이 생기거나 칭찬받고자 억지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칭찬에 익숙하던 아이는 어떤 행동에 어른들이 아무 말도 안 하면 비난으로 오해해서 위축되어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칭찬보다는 격려를 합니다. 격려는 비록 작은 것이라도 향상되고 노력한 것에 주어지는 것이며 실패했을 때에도 주어집니다. 즉 격려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치있게 느끼도록 돕거나 동기화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5분 후 약속을 지키고 일어났을 때 다시는 약속하거나 약속을 지키고 싶지 않게 하는 반응은 “거 봐 일어날 수 있으면서 진작 일어났으면 아침도 더 먹고 느긋하게 할 텐데” “네가 웬일이야 약속을 다 지키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무관심)”입니다.

반면에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고 작지만 성취감을 느끼는데 돕는 반응은 “5분 동안 좀 쉬니 기분이 어때?” 이렇게 질문해야 아이가 여러 대답을 합니다. 그래야 깊은 대화가 오갈 수 있습니다. “응 엄마 5분 더 쉬니 몸이 개운해 엄마 5분 더 자게 해서 고마워”, “요즘 수행평가로 할 일이 많아서 힘들어서 그래. 머리가 아파서 그랬어.” 뜻밖에 아이의 생활과 속생각도 듣게 됩니다.

퇴근하시며 부모가 전화로 빨래를 널어라 해서 열심히 널었더니 옷을 안 털었네 옷걸이에 안 널었네. 잘못한 것만 지적하시더래요. 힘든 엄마를 위해 뭔가 한다는 마음에 할 일도 미루고 제 나름 열심히 했는데 지적만 당하니 다음부턴 하고 싶지 않았답니다. 노력한 것을 먼저 격려하고 난 다음에 이런 옷은 옷걸이에 걸고 이런 옷은 끝을 잡고 좀 세게 털면 나중에 구김이 덜 하고 등등을 친절하게 알려주면 아이는 아마 다음에 부탁해도 훨씬 잘해서 부모의 힘을 덜어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아울러 나도 꽤 쓸모 있고 할 수 있다는 자그만 성취감을 얻고 그것이 쌓여 자존감도 커질 겁니다.

뜻밖의 아이 속생각 듣고 싶다면

마지막으로 부모가 가장 하기 힘든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날씨가 춥다는데 부모는 두툼한 옷을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얇은 옷을 입고 나간다 갈등할 때 어떻게 하세요? 이때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좀 불안하시고 부모 말을 안 듣는 아이가 미워 속상하더라도 아이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며 부모의 요구에 강요당하지 않고 자연과 사회적 질서로부터 스스로 배우게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부모는 아이가 자연적 결과(추위로 고생하거나 감기에 걸리거나)를 경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아이가 경험해야 할 자연적 결과를 사전에 방지해 줌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질 기회를 박탈해 의도하지 않았지만 의존심을 갖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 아이들과 상담하는 한 교사. <교육희망>
나중에 감기에 걸리면 “거봐 엄마 말 안 듣더니 잘 됐다. 그렇게 고집이 세서 쯧쯧쯧 엄마 말 틀린 게 없지?” 이렇게 아이와 감정대결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엄마는 네가 혹시 춥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밖에서 어땠어?” 비난받고 혼날 줄 알았는데 엄마의 의외 반응에 아이는 표현하지 않더라도 속으로라도 불편함을 스스로 겪고 들어 온 후라 그릇된 행동 목표를 수정할 기회를 갖고 책임지는 행동도 잠재적으로 배우게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렇듯 아이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뭔가 성취해낼 때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게 되고 자신감을 얻는 것입니다. 만약 늦게 일어난다면 “너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이다” 단정 짓지 말고 좀 더 믿어주세요. “이번엔 정말 지키겠습니다”라고 할 때 “정말이니? 또 약속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 하지 말고 “그래 한 번에 되는 일은 없단다. 네가 노력하려하는 것만 봐도 엄마는 기뻐” “이번 주는 그래도 엄마가 너 두 번 밖에 안 깨웠다. 후후 ” “알았어, 믿어. 재도전!”이라고 해봅시다. 약속 지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신뢰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신뢰를 받으면 그에 열심히 응답하려 합니다. 말 한마디에 아이가 약속의 중요성까지 배울 수 있다면 일석이조(행동도 바뀌고 인성교육도 하고)입니다. 어른들의 설교와 훈계보다 스스로 체험하면서 배우면서 긍정적 자아개념을 갖게 된 아이들이 자신과 타인에 대해 좋은 태도를 발휘하게 된다는 사실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명남 / 서울 영서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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