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의 노동자가 센터를 찾았다.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사업장이고, 한때는 백여 명 가량의 직원들이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사업장을 타지로 이전하면서 조금씩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조금씩 물량을 줄여가더니 결국 지난해 하반기부터 15명만 남아 있게 되었다. 갑자기 모두 퇴직하면 수주 받은 물량을 채울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서인지 사업주는 그 사람들을 단속했다.

“사업장 이전이 끝날 때까지 근무하면 위로금을 주겠다. 아무래도 마지막 달 임금이 적어질 테니 퇴직금 계산은 마지막 달 빼고 평 달로 계산하여 손해 없도록 정산해 주겠다” 며 수시로 약속하며 그 분들을 붙잡았다. 그들은 그 약속을 믿었고,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고, 실업급여라도 받아야 하니 끝까지 남아 일했다.

그런데 사업주는 올 3~4월로 예정되어 있다던 이전을 지난해 12월 말 단행하겠다며 말일까지만 근무하고 그만두라 했다. 겨우 13일 남겨두고 해고통지를 받았다. 해고통지서의 통지일은 11월 30일자고, 2일 뒤 폐업신고를 해야 한다며 회사에서 작성한 사직서에 모두 일괄 사인하라는 것이다. 해고통지일이 틀려도 사업주가 상관없다 하여 그것을 믿었고 사직서도 마찬가지로 폐업하는데 필요한 것이려니 믿었다.

▲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들은 이유 없이 사장이 너무 무섭고, 이유 없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무엇보다 생활이 너무 어렵다. 하지만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함께 싸우면 다르다.
회사는 위로금도 퇴직금 정산도 지키지 않았다. 우리보고 노동부에 신고하던지 마음대로 하라는 말만 야비하게 씹어 뱉을 뿐이다. 그들은 10년 넘게 이 회사에서 일했다. 그런데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난 적이 없다. 아니 딱 최저임금이고 다만 호봉에 따라 임금이 조금 달라진다. 호봉이라야 매년 10원 올려주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10년을 넘게 일했다.

그리고 그들은 10년을 사업주의 폭언에 시달리며 일했다. 30분을 넘는 조회시간은 ‘회사의 기대치에 따라오지 못하는 인간은 그만둬라, 걸림돌이 되지 마라, 물량을 못 맞추는 인간은 알아서 나가라’는 식의 모욕적인 말들이 채워진다. 점심시간이고, 교대시간이고 휴게시간이고 할 것 없이 아무 때나 모아놓고 폭언을 쏟아 부었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일했다.

그들은 위로금을, 퇴직금을, 해고예고수당을 받을 수 있을까? 법이 뭐 그리 중요한가? 꼭 받아야지. 생계가 달리지 않고는 참기 힘든 일이다. 사기꾼으로 고소하거나, 들러붙어 맞장 뜨거나 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못한다. 대부분 우리 상담센터를 찾는 비정규, 영세, 이주, 여성노동자들은 못한다. 이유 없이 사장이 너무 무섭고, 이유 없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무엇보다 생활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애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자존심과 권리를 버린다. 그렇게 포기하는 것이 익숙해지기 전에, 숙명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견고해지기 전에 우리의 자존심과 권리를 지켜야 한다. 함께.

김순자 / 호죽노동인권센타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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