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종 중심의 금속노조가 이제 전자산업 노동자들을 조직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정규직 0명 공장’에 맞서 싸우다가 정리해고를 철회시킨 시그네틱스지회를 중심으로 ‘시그네틱스 정리해고 철회와 영풍그룹 사내하도급 문제해결을 위한 안산대책위’(아래 대책위)가 구성됐다. 대책위는 지난 1월23일, 안산 양지돌봄센터에서 ‘전자업종 간접고용, 비정규노동자 조직화 방안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면서 이런 조직화 논의를 시작했다.

현재 노조에 시그네틱스, 하이디스, 한국산연, KEC 등 약 26개의 전자업종 사업장들이 있다. 이중 100명 미만 사업장이 22개(85%)에 해당하며 약 1천6백여명의 조합원들이 가입해 있다.

이기만 경기지부장은 “구조조정, 복수노조 사업장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과연 이 문제가 단위 사업장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고 말문을 떼었다. 이기만 지부장은 “단위 사업장의 문제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기는 방법은 더 많은 미조직 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로 “시그네틱스지회가 자기 투쟁을 확대해서 비정규 사업으로 진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진일보”라고 평가했다.

▲ 1월23일 경기 안산에서 '전자업종 간접고용 비정규직노동자 조직화 방안모색' 토론회가 시그네틱스 안산대책위 주최로 열리고 있다. 신동준

대책위가 ‘경기 반월 시화공단’에 미조직, 비정규 조직화 사업을 집중하자는 배경에는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주요 공장들의 지리적 조건과 중소영세부품사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 때문이다. 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41%가 300인미만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며, 이들은 전적으로 삼성전자와 엘지전자의 지배를 받고 있다. 특히 전자부품 회사의 48%가 경기 반월 시화공단에 집중돼 있다. 삼성전자가 수원, 엘지전자가 평택에 공장을 두고 있다는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 영업이익 3배 실적… 착취와 무노조 전략에서 기인

이런 구조 속에서 삼성전자는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가 사상 최대 영업이익 8조4369억원의 실적을 올릴 때, 삼성전자는 29조500억원으로 무려 현대차 영업이익의 3배가 넘었다.

손정순 한국비정규센터 부소장은 “삼성전자가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은 삼성전자의 영업력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고환율과 중소하청업체에 대한 수탈, 내부거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에서 기안한 바가 크다”고 말했다. 손 부소장은 삼성전자가 이런 착취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주로 여성인 자사 노동자들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쥐어짜며 철저하게 무노조전략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삼성전자의 내부거래 비중은 무려 91.9%에 달하고 있다. 이중 계열사 에스엘시디(SLCD)는 내부거래 비중이 무려 100%다.

공계진 전 노조 노동연구원장은 “2000년대 중엽 이후 삼성전자는 고용계수의 감소와 생산직 고용의 감소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이것은 “고용관계가 노동시간 유연화 강화 및 노동강도 강화를 축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강제 부품단가 인하 역시 삼성전자의 실적 상승에 역할을 했다. 2006~2011년 삼성전자의 평균영업이익율은 8.96%였으나 부품사 상위 10개사는 겨우 마이너스 실적을 면했을 뿐이다. 삼성전자가 2010, 2011년 영업이익율이 11.19%, 9.85%일 때 상위 10개 부품사들은 5.52%, 3.92%로 3분의1 수준을 조금 넘었다.

▲ 1월23일 경기 안산에서 열린 '전자업종 간접고용 비정규직노동자 조직화 방안모색' 토론회에서 윤민례 시그네틱스지회장이 토론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신동준

윤민례 시그네틱스분회장은 시그네틱스가 있는 “영풍그룹 계열사 노동자들을 면담한 결과 모두 소사장형태의 업체에 고용돼 있다”고 말했다. “원청관리자가 직접 지시를 하고 있지만 인력관리는 하청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영풍그룹은 소사장제를 통해 간접고용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교할 만한 것이 없으니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차별을 느낄 상황도 아니라는 것이다. 윤민례 분회장은 “제가 만나본 계열사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서 “뭐가 문제일까 고민하면서 ‘고통받는 비정규 노동자들’이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 분회장은 “우리가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의 고민을 진정으로 함께 나누고 있는가”라면서 고민거리를 던졌다.

엄미야 경기지역금속 수석부지회장은 이런 쟁점들이 노동조합과 함께 지역사회의 중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만 조직해서는 안 된다. 지역과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인식 하에서 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은 투쟁 과정에서 사회시민단체들과 함께 파주대책위, 안산대책위를 구성했다.

엄미야 수석부지회장은 이런 대책위 활동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지역의 우호여론을 만들고 지방 권력과 유관기관에게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소외된 노동과 비정규 문제를 지역사회가 받아 안도록 지속적인 사업을 진행하고자 했다”고 제안했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공단지역 조직화 사업을 모아서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현재 민주노총은 반월공단을 전략사업장으로 지정하고 있고, 노조 경기지부는 시그네틱스 투쟁을 계승발전 하기 위해 전자업종 노동자 조직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 사업들이 접점을 잘 찾아서 각각 별도의 사업이 아니라 서로 상승하는 사업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 수석부지회장은 “이 사업의 성패 여부는 우리 사회 절반을 차지하고 있은 여성, 그중 전자업종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간접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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