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차 교섭. 주 1회 진행하는 교섭 차수만 보더라도 긴 투쟁의 세월이 느껴진다. 2007년 HS바이오팜이 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충남지부 경남제약지회 여성조합원들의 싸움이 벌써 6년째다.

회사는 2007년 충남 지역 총파업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회사 손을 들어줬다. 지회 조합원들은 21일 법률비용 마련을 위해 주점을 열었다. 아침부터 휴가를 내고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주점 장소 곳곳을 꾸미느라 조합원들이 바쁘다. 이날 주점 음식은 지회 고참 조합원들이 맡았다. 가사일만 몇 십년 째인 베테랑들이라 음식 맛은 최고라고 자부한다. 아침부터 음식 준비하느라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이정도가 힘들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조합원들이 같이 준비하니까 재밌고 얼마나 좋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 12월21일 열린 경남제약지회 법률비용 마련을 위한 연대주점에서 박혜영 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신동준

이들 중 내년 2월 정년퇴직을 앞둔 조합원도 있다. “시원섭섭하죠. 우리 지회가 요구하는 것 다 쟁취하고 그만두면 좋을텐데 이런 상황에서 나가려니 아쉬어요. 조합원 수가 계속 줄어드는 것도 걱정되고요.” 여전히 지회 걱정이 가득하다.

47명 똘똘 뭉쳐서 온 6년 투쟁

2008년 직장폐쇄가 철회되고 현장에 복귀했지만 무자비한 현장탄압이 기다리고 있었다. “복귀 뒤에 화장실도 못가게 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도 못해요. 조합원들 있으니 견뎠지.” 회사는 지회 조합원 현장 복귀 후 작업 라인 인원을 줄여 이전에 두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하도록 했다. “조합원들이 부항 떠가면서 일하고 어깨며 팔이며 성한 곳이 없어요. 하물며 기계도 고장이 나는 법인데.” 단협해지와 징계, 해고, 각종 송사도 뒤따랐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임신 중이라 직장폐쇄 며칠 뒤 출산 휴가를 갔던 홍정순 사무장도 싸우는 동지들 모습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홍 사무장은 “그때 낳은 아이가 벌써 여섯 살 이예요. 아이 커가는거 보니 우리가 싸운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 12월21일 충남 아산에서 열린 경남제약지회 법률비용 마련을 위한 연대주점에서 지회 조합원들이 율동을 선보이고 있다. 신동준

요즘 조합원들은 경남제약 투쟁이 잊혀져 가는 것 같다는 걱정을 한다. 남윤주 부지회장은 “이미 경남 투쟁 끝난 것 아니냐는 얘기 들을 때마다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회사가 2008년 단체협약을 해지한 뒤 아직까지 교섭을 체결하지 않고 있어 노조활동은 일체 보장받지 못한다. 법원이 공장 앞 집회 금지 등 10여 개 항목에 대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도 받아들여 제약도 많다. 이수정 조합원은 “연대투쟁 많이 다니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휴가가 한정적이다보니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 투쟁 잊혀지는 것 같아 가슴아프다”

하지만 경남제약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 공장 인근 피켓 선전전을 하고 매주 2회 중식집회를 한다. 해고돼서 공장 출입이 금지된 박혜영 지회장은 공장 밖에서 활동을 하면서 주 1회 교섭도 이어가고 있다.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 작업시간 전 모여 조회도 하고, 월 1회 주말마다 전체 조합원이 모이는 단결의 날 행사도 거르지 않는다.

조합원들은 연대 투쟁을 가거나 지회 활동을 위해 개인 휴가를 사용하고 있다. 간부 회의도 일을 다 마친 뒤 저녁에 모여서 하고 있다. “일 끝나고 간부회의를 해야하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으니 간부들이 애들을 데리고 와요. 회의 하는 동안 애들을 다른 방에 두고서 떠들지 말라고 구박할 때 제일 미안하죠.” 홍 사무장은 “반드시 단체협약을 체결해서 단 몇 시간이라도 시간 할애 받고 지회 활동 하는 것이 내년 소원”이라고 말한다.

▲ 12월21일 충남 아산에서 열린 경남제약지회 법률비용 마련을 위한 연대주점에서 음식을 준비한 조합원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동준

남 부지회장은 “밖에서 볼 때 경남제약지회 활동이 많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며 “우리는 아직도 현장에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조합원들도 “오늘 주점은 우리 지회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여전히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 지역 동지들에게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개인 휴가내고 연대 투쟁, 회의 데리고 다니는 아이들에 미안

2007년 시작한 투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조합원들은 여전히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수정 조합원은 “회사는 언제든 다시 매각될 수 있고 또 싸워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되면 우리는 더 치열한 투쟁 할 준비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처음 직장폐쇄 했을 때 현장에 돌아가지 못할거라고 생각한 조합원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우리를 탄압했던 관리자들은 회사를 떠났지만 우리는 현장 지키고 있잖아요. 여지껏 견뎠는데 지금 회장보다 더한 사람이야 있겠어요. 다 뺏겨서 이제 더 뺏길 것도 없고 우리가 되찾을 것만 남았으니 그 힘으로 싸워야죠.”

조합원들이 이렇게 투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단결력에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한 조합원은 “직장폐쇄 전에 지회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같이 어려움 겪으면서 더 끈끈해지고 똘똘 뭉치게 됐다”고 강조한다. 여성조합원끼리 있다보니 서로의 어려움을 더 공감하고 챙겨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 12월21일 충남 아산에서 열린 경남제약지회 법률비용 마련을 위한 연대주점에서 지회 집행부들이 노래공연을 하고 있다. 신동준

이수정 조합원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만둘 수 없다”며 “지역 동지들이 투쟁에 같이해준 것, 연대해준 것들을 잊지 못하는데 어떻게 노조 깃발을 내릴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남윤주 부지회장도 “우리는 1996년, 2007년 두 번의 직장폐쇄를 겪었다. 지금은 노조의 힘이 많이 약해졌지만 민주노조 사수라는 뜻 하나는 결코 놓지 않고 끝까지 지키려고 한다. 그것이 우리 조합원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고 경남제약 투쟁의 의미를 설명했다.

“끈끈한 조합원들, 지역 동지들 있어 포기하지 않는다”

이날 주점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조합원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율동 공연을 했다. 최근들어 저녁 9시까지 잔업에 주말 특근까지 바빴지만 점심시간, 쉬는시간, 집에서도 가리지 않고 연습 삼매경이었단다. “우리끼리만 반복되는 일상이고 투쟁도 길어지다보니 조합원들이 조금씩 지쳤어요. 그런데 이번에 율동 준비하면서 다들 생기가 돌더라고요.”

▲ 12월21일 충남 아산에서 열린 경남제약지회 법률비용 마련을 위한 연대주점에서 지회 조합원들이 열띤 율동공연을 펼치자 주점에 첨석한 충남지부 조합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신동준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이왕 하는 것 즐겁게, 누구 하나 빼지않고 동참하는 것. 율동 공연 하나에도 경남제약지회의 힘이 무엇인지 보인다. “질긴 투쟁이죠, 그러나 반드시 승리하는 투쟁, 경남제약에서 보여주고 싶어요.” 이날 지회 조합원들은 충남 지역 동지들에게 지회가 이어갈 투쟁을 약속했다. “더 힘차게 싸우겠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겠습니다. 동지들, 지지해주고 엄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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