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기자를 사관(士官)에 비유하곤 한다. 기사는 결국 매일의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 지금의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시간이 지난 뒤 18대 대선을 앞둔 여야 유력 후보들의 모습은 어떻게 기억될까. 먼 훗날 언젠가 지상파 방송 3사의 대선 보도만을 본다면, 내용과 결과를 떠나 아마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한국 사회에 대해 가장 다양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 단일화 이전 지상파 3사의 메인뉴스를 보면 공약은 박 후보 혼자만 발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야권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공약 발표는 뒷전이고 단일화 협상에만 목을 매며 꼼수와 갈등을 반복하고 있는 듯 보였다. 거듭 말하지만, 지상파 3사의 메인뉴스만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 12월13일 대전에서 열린 한 대선후보의 유세에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오마이뉴스>

박 후보가 한국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자대회에 참석하며 노동 관련 정책 행보에 나섰던 11월17일 MBC <뉴스데스크>는 첫 번째 리포트에서 박 후보의 말을 직접 인용해 △최저임금 보장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년 연장 △노사 대표들과의 정기적 만남을 통한 현안 논의 등의 공약을 보도했다.

두 번째 리포트에선 박 후보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대회에 참석한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소식이 이어졌다. 이들 후보도 이날 행사에서 저마다의 노동 정책 공약을 설명했지만, <뉴스데스크>는 그보다는 단일화 협상 파행에 따른 어색한 분위기에 초점을 맞췄다. 야권 후보들의 노동 공약은 한 문장으로 짧게 전달했을 뿐이니, 세 후보가 밝힌 공약에 대한 비교·분석이 존재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후보들의 노동 공약을 톺아볼 계기는 또 있었다. 안철수 전 후보가 11월20일 비정규직 등의 보호를 위해 초기업노조의 교섭력을 인정하고 초·중·고·대학 교과 과정에 노동인권 교육을 포함시키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노동 공약을 발표한 것이다. 안 전 후보가 이날 발표한 노동 공약은 노동계의 조언을 수용해 지난 10월 21일 발표했던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으로, 이로써 세 후보의 노동 공약이 모두 제시됐지만 지상파 3사 중 어느 곳도 이를 비교·점검하지 않았다.

이날 역시 <뉴스데스크>는 물론 KBS <뉴스9>, SBS <8뉴스>도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TV토론 합의 소식과 후보 결정 방식을 둘러싼 갈등에 집중했을 뿐이다. 지상파 3사의 보도에 따르면 양측이 이렇게 갈등하는 동안 박 후보는 △기초의원 및 단체장에 대한 정당 공천 폐지 △지방세 비중 상향 조정 등 지방분권 등을 약속하는 정책 행보에 힘을 쏟았다.

공약 관련 보도만 박 후보에 편중된 게 아니다. 대선을 놓고 벌어지는 모든 현상에 대한 보도 역시 여권의 시각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대선 후보 단일화 논의와 관련해서도 선후를 뒤집은 보도들이 이어졌는데, 단일화 협상 관련 내용을 전하기도 전에 이에 대한 박 후보 측의 공세를 보도하는 식이다.

이런 모습이 특히 두드러지는 곳은 <뉴스데스크>로, 액션(Action)이 없는 리액션(Reaction)을 펼쳐놓고도 정작 MBC의 보도 책임자들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여야 순서를 지키는 게 원칙이라 강변하고 싶을지 모르나, 이는 통상적인 동정이나 정책 소개에 해당하는 것일 뿐, 중요한 스트레이트가 있을 경우 뉴스 가치에 따라 편집하는 게 ‘상식’인데도 말이다.

현 정권이 방송가에 투하한 낙하산 사장과 함께 승승장구한 이들은 권력의 교체 여부를 결정한 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이런 식의 보도를 펼쳐놓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해직기자인 이용마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은 11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의 증인으로 출석해 “틀린 역사를 쓰라고 강요받을 때 기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언론인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장관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보고서를 쓰는 ‘영혼없는 기계’의 모습으로 살아도 좋은 것인가에 대한 그의 질문이 지금, 이 순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김세옥 <PD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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