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0일, 홍종인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이 굴다리에 오른 지 10일 째다. 1평 남짓한 공간에서 움직일 수도 없고,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 소리에 잠조차 편히 잘 수 없다. 그 곳에서 열흘을 보낸 홍 지회장은 현장 조합원들과 부대끼며 얘기하고 같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을 더 안타까워했다. 지회 조합원들은 매일 밤 굴다리 아래 텐트를 지키고, 출근투쟁에 결합하고 있다. 경기지부 에스제이엠지회는 전체 조합원이 20개 조를 짜서 매일 저녁 지회 천막 농성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연대하겠다는 약속을 했단다.

▲ 홍종인 유성 아산지회장 농성천막 뒤로 산업도로가 지나간다. 대형 트레일러가 농성천막을 집어삼킬 듯 지나가고 있다. 신동준

홍 지회장은 “유성지회만 살기 위해 농성하는 게 아니다.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전체 노동자들이 이제라도 공동으로 준비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가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신뢰를 쌓고 전체 투쟁을 모아 내야한다”고 강조했다. 홍 지회장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한 명 한 명 일어나 싸우지 않으면 어떤 투쟁도 승리할 수 없다”며 “굴다리에 오시는 것도 좋지만 현장에서 투쟁하고 조합원이 하나로 뭉쳐 달라”고 당부했다.

*** 홍종인 지회장 인터뷰 전문 ***

굴다리 농성 10일차다. 상황이 어떤가.

-제일 힘든 건 잠이다. 천막 뒤로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소음이 워낙 크고 바람이 많이 불어 잠 들기 어렵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서 하고 싶은 게 많아지더라. 굴다리 지나가면서 인사하는 조합원들 하나하나에 더 관심이 간다. 조합원들이 제 걱정을 많이 하는데 어떤 고민들, 생각들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으니 내려가 만나고 싶다. 현장에서 마주 보면서 같이 투쟁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저 없어도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잘 싸워주고 있어서 정말 고맙다.

2011년 8월 법원 중재에 따라 현장에 복귀했다. 이후 현장 상황을 말해달라.

-작년 8월 회사가 직장폐쇄를 철회하고 조합원들이 현장 복귀했지만 사측은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완성하려고 계획대로 진행했다. 회사는 법원 중재에도 끊임없이 선별적 복귀를 주장했다. 이어서 창조 시나리오대로 전 조합원을 징계했고, 1차 징계자들은 중징계했다. 금속노조 중심이 되는 몇 사람을 중징계하면 그 뒤에 쉽게 조합원들을 자신들 생각대로 끌어당길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 지난 5월18일 유성기업지회 투쟁 1년을 기념하는 ‘민주노조 사수, 심야노동 철폐 금속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 에 참석하기 위해 유성 아산조합원들이 공장에 모이고 있다. 사진 오른쪽 끝이 홍종인 지회장이다. 신동준

복귀 후에도 현장은 온갖 탄압과 어용노조와 차별 대우로 힘들었다. 조합원들 중에 현장 탄압을 견디다 못해 관리자들을 죽이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었다. 관리자의 압박 때문에 현장은 위축돼 갔다.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사측이 노리던 것이었다. 시간을 두고 계속 압박하면 언젠가 너희는 무너진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힘든 시기였지만 조합원들이 끈질기게 버텨왔다.

고공농성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청문회, 국정감사에서 노조파괴 문건이 다 드러났다. 사측은 국정감사만 마무리되면 대선국면으로 넘어가고 이 시기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발뺌 했다. 노동부에서 이 사안을 조사해봤자 과태료 정도로 끝내면 그만이다.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 노조파괴 문제가 이대로 묻히면 더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른 이유는 현장의 조직적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전체 조합원이 하나로 뭉쳐서 사측을 굴복시켜야 한다. 간부들이나 앞장서는 투쟁으로 이길 수 없다. 굴다리에 올라오면서 간부들에게 굴다리 투쟁에 집중하지 말고 현장에 중심을 두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부탁했다. 다행히 조합원들이 현장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간부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굴다리 지키기에 집중하지 말고, 현장 동지들을 최대한 조직하고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어용노조로 인한 현장 갈등이 심한 것으로 안다. 이번 고공농성을 돌입하면서 지회에서 다시 어용노조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선전을 하고 있다.

-어용노조로 간 조합원들은 우리를 배신하고 넘어갔다는 것에 스스로 부담이 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지회 조합원들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한가족이다. 우리가 정말 하나이던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용노조로 간 조합원들이 우리가 싫어서 떠난 게 아니다. 지금 상황은 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모두 사측의 의도이고, 이 모든 책임은 회사에 물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의 조직으로 서는 것, 그것이 사측이 의도한 모든 것을 깨트리고 승리하는 것이다. 

전국적인 노조파괴 시나리오와 이를 실행한 탄압이 심각하다.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상신브레이크, 발레오만도 등등 이미 오래전부터 실행됐고 결국 유성까지 왔다. 지난해 유성 싸움 할 때도 노조파괴를 충남에서 멈추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 에스제이엠까지 이어졌다.

▲ 홍종인 지회장의 농성천막이 국도 변 다리 난간에 위태롭게 설치돼 있다. 신동준

한 곳의 투쟁으로 생각하면 절대 이길 수 없다. 유성이 살아남더라도 다른 사업장이 이 시나리오대로 당하는 사태가 올 것이다. 아쉬운 것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거나, 탄압 당하는 사업장을 보면서 움츠러든다는 것이다. 이제 유성지회에서 승리의 시발점을 만들고 전국으로 확산해 공동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조 사수 공종투쟁을 위한 금속노조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늦었다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르다고 하지 않나. 오늘(10월30일) 노동부 장관이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 조사,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그냥 실행되지 않는다. 노조가 압박해야 실제 이행될 수 있다. 금속노조가 투쟁하는 곳을 모두 모아야 한다. 이에 앞서 노조 중앙이 현장에 먼저 다가가야 한다. 지금 현장에서 노조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중앙으로 모이자고 하더라도 또 다시 자신들은 들러리가 되거나 노조 성과위주로만 투쟁할 거라는 우려가 분명히 있다. 노조가 먼저 사업장에 다가가고 사업장, 지역에서부터 투쟁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마음에 노조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집중된 투쟁도 더 힘이 실린다.

사실 이건 지회도 마찬가지다. 현장이 소위 ‘자판기 노조’처럼 됐다. 지회장과 간부 위주로 활동하다 보니 현장 투쟁이 없어졌다. 이런 상황을 보고 사측도 노렸을 것이다. 현장을 조직하고 현장에서부터 투쟁하면서 새롭게 출발해야 할 때다.

농성 돌입 이후 회사와 경찰 쪽의 반응은?

-어제 아산경찰서에서 국토해양부가 고소했다면서 나에게 출석요구서를 갖고 왔다. 이후에 2차 출석요구서를 갖고 오겠다고 했다. 국토해양부는 10월31일까지 고공농성장을 자체적으로 철거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처음 이 곳에 올라오면서 간부들에게 목줄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느슨해질지도 모르는 나에 대한 각오이기도 하고, 침탈을 대비한 것이기도 했다. 조합원들도 행여 목줄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많이 걱정한다. 만약 정말 저들이 철거하러 온다면 그때 상황에 따라 나도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 홍종인 지회장이 농성천막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동준

농성 시작하면서 사측에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교섭을 하자고 공문을 보냈다.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 투쟁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사측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더 강도 높은 투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지회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출근할 때마다 조합원들이 차 세워두고 쳐다보면서 인사하고 서로 얘기하느라 회사 앞 도로가 마비돼 주차장이 될 지경이다. 술먹고 안타까워하며 연락하는 조합원들, 차마 이 곳을 쳐다보지 못하는 조합원들도 있다. 조합원들 모습 보면 정말 눈물나게 고맙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수그러들면 사측은 또 역습해올 것이다.

현장에서 한 명 한 명 투쟁하면 그 투쟁이 한 과의 투쟁으로, 유성지회 전체 투쟁으로 확대되고 결국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 지금 내 목에 걸린 줄은 민주노조의 마지막 끈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놓게되면 사측의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노동자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하나된 마음, 정말 한 가족으로 다시 뭉쳐 승리하는 그 길을 위해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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