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효율적이다’라는 주장의 기본 전제인 ‘수요가 공급을 만든다’는 원칙은 이미 ‘공급이 억지로 수요를 만든다’는 역설로 바뀐 지 오래다. 그렇기에 광고를 통해서 조장하는 소비는 대부분 더 화려하고 더 세련되고 더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사람들의 이미 노출된 소비욕구뿐만 아니라 잠재되어 있는 혹은 필요 없는 소비욕구까지 자극해서 주머니에 숨겨져 있던 동전까지 탈탈 털어 모두모두 소비의 장으로 나오게 해야 겨우겨우 굴러갈 수 있는 시스템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의 본질이다.

그래서 우리가 TV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광고들은 세련되다 못해 화려하고 멋지다. 맥주 광고에 등장하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주인공은 1년365일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파티를 즐긴다. 누군가는 1천만원 등록금에 허리가 휘든 말든 알바 없다는 듯 말이다.

이번에는 최근에 방송된 삼성생명 광고를 보자. 광고에 나오는 자녀 세 명의 다둥이 아빠는 푸른 잔디밭이 깔린 마당에서 토끼같이 귀여운 아이들을 품어 안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은 아빠입니다”라며 행복에 겨워한다. TV광고의 화면을 유추해 보면 큰 아이가 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니 아빠의 나이가 40대 초반일 테고, 집에서 아내가 다른 아이를 데리고 나오니 맞벌이는 아니고 외벌이 가족인데 건물은 빼고 족히 건평 20평은 되어 보이는 그네가 마련된 잔디 깔린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면서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퇴근하는 ‘저녁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이 남자. 이 남자는 도대체 한 달에 월급을 얼마나 받기에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현실에서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10%나 될까? 더구나 100만원 훌쩍 넘는 고급 강아지 ‘비글’과 함께 말이다.

▲ 현실은 <장기하밴드>의 노래 ‘싸구려 커피’에 나오는 것처럼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자취방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라도 맥주 한잔 손에 들고 김수현이 되어 가슴 파진 드레스를 입은 미녀들과 밤새워 파티를 하는 꿈을 파는 것이 바로 광고다. 사진 <오비맥주> 홈페이지

그래서 광고산업은 사실 꿈을 파는 산업이다. 현실은 <장기하밴드>의 노래 ‘싸구려 커피’에 나오는 것처럼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자취방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라도 맥주 한잔 손에 들고 김수현이 되어 가슴 파진 드레스를 입은 미녀들과 밤새워 파티를 하는 꿈을 파는 것이 바로 광고다. 한 달에 60만원이 훌쩍 뛰어넘는 아이들의 유치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잔업과 특근을 밥 먹듯이 하다가 겨우 녹초가 되어 한밤중에 들어와 잠든 아이들 얼굴에 입맞춤 한번 하고 골아 떨어지는 이 땅의 아빠, 엄마들에게 ‘그림같은 초원 위의 푸른 집과 토끼 같은 아이들과의 행복한 가정생활’이라는 꿈을 파는 것이 광고다. 꿈을 파는 것이 광고이기에 광고는 화려하고 멋있고 세련되고 ‘쿨’하다.

하지만 전혀 세련되지도 않고 멋도 없는 즉 ‘쿨’하지도 않지만 주목을 끄는데 소기의 성공을 거두는 광고 캠페인들이 있다. “남자들한테 정말 좋은데, 이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어눌한 사장님의 말 한마디로 건강보조식품 산수유를 거의 비아그라급의 의약품으로 상승시킨 천호식품의 산수유 광고가 대표적이다. 대형 제약회사들의 광고비와 제작비의 1/10도 쓰지 않고 그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소위 빅스타를 모델로 광고를 운영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는 은행권 광고에서도 촌티 나는 광고가 성공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이승기․김연아를 모델로 쓰고 있고 신한은행은 음악가 박칼린, 하나은행은 유준상 등 최소 모델비 3~4억 원짜리 빅모델들의 전쟁에 IBK기업은행은 전국노래자랑의 최장수 MC인 송해 선생을 모델로 한판 붙었다. 송해 선생의 모델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경쟁사 모델들 보다 한참 아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고의 구성과 메시지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IBK기업은행,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거래할 수 있는 은행입니다.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립니다”라는 메시지를 특별한 카메라 없이 그냥 전달한다. 아무런 포장도 없고 광고적인 장치도 없다. 약간 무모해 보일 정도로 직접적이고 정직한 광고. 그런데 이 광고가 소위 터졌다. IBK기업은행의 TOM(최초 상기도) 즉, ‘은행하면 어디가 떠오르세요?’라는 질문에 첫 번째로 기업은행을 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9.6%에서 31.7%로 급격하게 상승한 것이다. (아래 표 참조)


도대체 이런 촌스러운 광고가 터지는 이유가 뭘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혹시 ‘진정성의 힘’이 아닐까 한다. 사실 ‘진정성’은 국어사전에 아직 없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 많이 등장하고 이슈가 되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인데 명사 ‘진정(眞情)’ 뒤에 ‘성질’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성(性)’이 붙어 만들어진 말로 그 뜻은 ‘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화려한 수식어나 겉모습에 쉽게 속지 않는 것 같다. ‘진심 어리고 절박한 마음’의 전달에 움직이고, 이런 힘이 바로 ‘진정성의 힘’이다. 비록 아무것도 없더라도 ‘진실하고 절박한 마음’만 있다면 그 뜻이 세상에 통할 수 있을 것이다. 봐라 저 투박한 진심을! 여담이지만 이런 맥락에서 안철수 후보의 캠프 이름도 <진심캠프>라고 한 것은 아닐까?

김범우 / 어느 광고회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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