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탁. 탁.”
9월 26일, 에스제이엠지회 한 조합원이 직장폐쇄 62일만에 에스제이엠(SJM) 안산공장에 불을 켰다. ‘야만의 새벽’이라 일컬어지는 끔찍한 용역깡패의 폭력이 있던 7월27일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현장이다.

▲ 9월26일 에스제이엠지회 조합원들이 지회 사무실에 들렀다. 회사는 직장폐쇄 동안 지회사무실 창문과 출입문을 용접해 봉쇄했다. 신동준

지회는 25일 회사와 △직장폐쇄 철회 △회사는 용역폭력사태에 대해 회장 명의의 사과문 발표 및 게시 △단체협약 해지통보 철회 및 단체협약 준수 △지회의 자주적인 노조활동 보장 △회사는 노조탄압과 관계된 단체와 단절 및 거래 금지 △직장폐쇄에 따른 시설물 원상복귀 △추석 이후 2주간 현장 복구기간을 평화기간으로 설정하고 이후 단체교섭 재개 등에 합의했다.

▲ 9월26일 작업현장을 둘러 보던 한 조합원이 7월27일 새벽 용역깡패들이 조합원들에게 던진 벨로우즈 부품을 들어보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신동준

에스제이엠 노동자들은 9월26일 두달 만에 공장으로 출근했다. 이날 아침 공장 정문 철문을 열고 들어오던 길, 조합원들의 벅찬 가슴에 눈물이 흘렀다. 한 조합원은 출근 20년 만에 울어보기는 처음이라며 “민주노조를 지키고 민주광장에 다시 서니 감회가 새롭다”고 출근길 심정을 전했다. 이날 회사 대표는 민주광장에서 조합원들에게 공개사과 했다.

62일만에 직장폐쇄 철회

두달 만에 들어온 공장은 낯설었다. 특히 지회 사무실은 아직도 회사의 탄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정문을 막은 회사는 직장폐쇄 기간 동안 공장 담벼락을 헐어 지회사무실 출입용 ‘개구멍’을 만들었다. 사무실 바깥 벽에는 창살을 만들었고, 조합원들이 일하는 현장이 보이던 창문을 철판으로 가렸다. 공장과 연결된 지회사무실 문도 용접해버렸다. “이게 감옥이지, 예전처럼, 아니 더 좋게 잘 만들어놓으라고 해.” 지회사무실 모습을 본 조합원들은 다시 한 번 분노했다.

▲ 9월26일 에스제이엠 안산공장은 아빠와 아이들의 미소와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신동준

26일 공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의 모습은 어느때보다 밝았다.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날 저녁 지회는 공장 민주광장에서 조합원들과 가족, 같이 투쟁했던 지역 동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추석맞이 대동한마당’을 열었다. 노랫소리에 춤이 절로 나왔고, 막걸리도 한 잔씩 주고받으며 “투쟁” 소리에 어느 때보다 힘이 실렸다. 오랜만에 공장 가득 조합원들의 웃음소리와 투쟁가가 울렸다.

에스제이엠 조합원들의 지난 두달간 투쟁의 원동력과 승리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조합원들은 한목소리로 ‘단결’이 그 이유라고 말했다. “직, 반장같은 현장 관리자들도 같이 싸웠어요. 곧 퇴직 앞둔 형님들이나 여성조합원들 누구 하나 빠지지 않았고요. 들어가서 일해도 하나 이상할거 없는 비정규직 다섯 명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싸웠어요. 다들 각자 자리에서 자기 역할하면서 똘똘 뭉쳤던게 가장 큰 힘이었죠.” 지회 조합원 2백 여명은 별 이탈 없이 같이 싸웠다. 또 다른 조합원도 “‘뭉치면 산다’는 기본 원칙을 지켜서 이길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정말 서로를 믿었고, 매일 아침에 공장 앞에서 다시 얼굴 보면서 힘을 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 9월26일 ‘에스제이엠지회 투쟁승리 보고대회-추석맞이 대동한마당’을 준비하는 조합원들이 웃고 있다. 신동준

뭉치면 산다는 것, 실감한 투쟁

김영호 에스제이엠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주체가 된 투쟁이었다고 평가했다. “처음 투쟁 시작할때 노조가 그냥  망가지는 꼴은 못본다고, 싸우자고 결정한 것이 조합원들이었다. 깡패 들어온다고 어떻게 할까 물으니 공장 지켜야 한다고 했다. 참담하게 쫓겨났던 그 날도 다시 싸우자고 조합원들이 스스로 결정했다.” 직장폐쇄 이후 매일 아침 지회는 1시간씩 조합원 총회를 진행했다. 어제 투쟁에 대해 평가하고 어떻게 싸울지 의견이 끊이지 않았단다.

▲ 9월26일 ‘에스제이엠지회 투쟁승리 보고대회-추석맞이 대동한마당’에서 김영호 지회장이 지회, 경기지부 조합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신동준

조합원들은 지역 동지들에 대한 고마움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김 지회장은 “에스제이엠과 지역노동자들이 함께 싸웠다”며 “집회 참여 이외의 지속적인 연대를 보면서 조합원들이 정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직장폐쇄 기간 내내 경기지부 조합원들은 매일 밤 공장 앞 철야농성을 진행했고, 지역의 많은 동지들이 에스제이엠 투쟁에 발벗고 나섰다.

▲ 잊지 말자. 20120727. 신동준

경기 지역 뿐 아니라 전국에서 이어진 연대를 경험한 조합원들의 생각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단다. 한 여성조합원은 “회사에 당하는게 남 일인줄 알았다. 모두 내 일이더라”며 “더 어렵고 힘든 사업장에 연대할 일 있으면 진심으로 달려가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노조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고. 김 지회장은 “금속노동자들이 가슴으로 달려올 준비가 돼있고 얼마든지 같이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했다”며 “노조가 하나의 조직으로서 투쟁을 조직하는 구심체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뿐 아니라 노조탄압으로 아직도 힘들게 싸우는 동지들이 있다. 노조가 성과를 따지지 말고 실제로 이 사업장들을 모아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인다.

“잊지 않는다. 2차 투쟁이다”

한 조합원은 “7월27일, 그 끔찍했던 날을 잊지 않기 위해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친했던 사람이든 아니든 깡패한테 맞고 피를 흘리면서 나오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 또 다른 조합원은 “결국 이번 투쟁과 오늘 승리는 내 동지들의 핏 값”이라며 “이 두 달 싸움, 그날의 기억을 절대 잊지 않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9월26일 열린 ‘에스제이엠지회 투쟁승리 보고대회-추석맞이 대동한마당’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다. 신동준

“직접 경험하는 것 만큼 좋은 공부가 없잖아요. 이번에 제대로 느낀거죠. 이번 싸움 잊어버리면 회사는 언제든지 또 공격해올 겁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더 탄탄하게 뭉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동한마당을 준비하던 한 조합이 힘주어 말했다. 김 지회장도 “회사는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자신들이 만든 어용노조로 계속 조합원들을 흔들 것”이라며 “불법적 직장폐쇄를 철회시켰지만 우리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대동한마당도 앞으로 이어질 2차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지회는 이날 오후 진행한 총회에서 조합원 단 한명의 반대 없이 투쟁기금을 모으기로 결의했다. 이 기금은 직장폐쇄, 용역폭력에 맞서 싸우는 사업장들을 위해 쓸 예정이다.

▲ 9월26일 ‘에스제이엠지회 투쟁승리 보고대회-추석맞이 대동한마당’에서 지회 조합원들이 ‘연대투쟁가’를 부르고 있다. 신동준

이번 투쟁에서 에스제이엠 노동자들이 얻은 것은 자신감이다. “우리는 싸웠고 승리했다. 회사의 탄압을 확실히 깨부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김 지회장이 결의를 밝힌다. 조합원들도 “우리 흩어지지 말고 더 똘똘뭉치자”고 서로를 격려한다.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공장, 조합원들 모두 2라운드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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