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하청업체가 밀집한 전남 영암 대불공단. 둔탁한 쇳소리로 가득한 이 곳 공단에 19일 저녁 풍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불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조직된 금속노조 전남서남지역지회 풍물패가 문화제 시작을 알리는 길놀이를 시작한 것.

▲ 9월19일 전남 영암 삼호읍 종합공원에서 열린 제4회 대불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제에서 전남서남지역지회 노동자들이 만든 풍물패가 행사에 앞서 길놀이를 하고 있다. 신동준

퇴근 시간이 지나자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이 대불공단 근린공원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우리말이 서툰 외국인 노동자들도 보였다. 대불공단 노동자의 배우자와 자녀들, 조선업 외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도 참여했다. 올해로 4회째인 이 대불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제는 이미 지역의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한 듯했다. 

▲ 9월19일 전남 영암 삼호읍 종합공원에서 열린 제4회 대불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제에 참여한 노동자, 주민들이 공단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신동준

대불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조선업 다단계하도급 구조에 묶여 있는 일당제 비정규직 처지. 일감이 많고 적음에 따라 급여가 들쭉날쭉한 것은 기본이요, 임금체불에 부당해고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쇠쟁이 밑바닥 인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날 문화제에 앞서 진행된 1부 행사에서 조선소 하청으로 20여년을 일했다는 한 노동자가 무대에 올라 이 같은 현실을 증언했다. “툭하면 60~70%, 심하면 30%밖에 임금 못 받았습니다. 몇 년 전엔 일을 마치고 조금 일찍 갔다고 부당해고까지 당했어요. 그래도 어디에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었습니다.” 노동자의 절절한 하소연에 참가자들이 조용해졌다.

“그런데 그런 제가 몇 년 전 금속노조 조합원이 되고 나서 상상할 수 없는 큰 힘이 생겼습니다. 노조로 뭉쳐서 싸워 이겼습니다. 예전엔 금속노조 얘기하면 웃어넘기던 친구들 대여섯 명을 제가 가입시켰습니다. 이제 우리 노동자들이 똘똘 뭉쳐 살기 좋은 대불공단을 만듭시다.” 노동자의 말이 끝나자 참가자들의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 9월19일 전남 영암 삼호읍 종합공원에서 열린 제4회 대불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제에서 장문규 노조 광주전남지부 전남서남지역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신동준

장문규 금속노조 전남서남지역지회장도 무대에 올라 지회의 사업성과를 보고했다. “우리는 싸웠다하면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 이길 때까지 싸우니까요. 이제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금속노조 이름으로 협상과 투쟁을 하게 됐습니다. 또 우리 싸움으로 임금 체불을 원청이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단에 정착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우리 스스로 더 큰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장 지회장은 이 자리에서 대불공단 노동자 3천명 조합원 가입과 공단 차원의 단체협약 체결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천명했다. “싸워서 매번 승리하고 있지만, 고질적인 임금체불과 부당해고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낼 길은 대불공단 공장주들과 단체교섭을 열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3천명이 노조에 가입해 함께하면 가능합니다.” 장 지회장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 9월19일 전남 영암 삼호읍 종합공원에서 열린 제4회 대불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제에서 전남서남지역지회 노동자들이 만든 합창단이 노동민중가요 합창공연을 하고 있다. 신동준

1부 행사가 지회 조합원들의 단결의 장이었다면 2부는 축제의 자리였다. 첫 무대로 조합원들의 합창 공연이 있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라는 노래와 노동가요 메들리를 화음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두 달간 고된 노동을 마치고 퇴근 후 짬짬이 연습한 성과라고 한다. 장기자랑과 초청가수 공연들이 이어지자 문화제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 9월19일 전남 영암 삼호읍 종합공원에서 열린 제4회 대불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제에서 한 노동자가 춤을 추며 장기자랑을 하고 있다. 신동준

대불공단 ‘쇠쟁이 밑바닥 인생’들이 직접 만든 문화제는 막을 내렸다. 행사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대형 현수막에 각자의 소원을 적는 상징의식을 했다. 한 참가자가 힘이 느껴지는 글씨로 “노동자 살맛나는 대불공단 쟁취”라고 썼다. 가정으로 뒤풀이로 흩어지는 노동자들 얼굴엔 살맛나는 공단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번졌다.

▲ 9월19일 전남 영암 삼호읍 종합공원에서 열린 제4회 대불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제에서 장문규 전남서남지역지회장이 금속노조 가입, 체불임금 투쟁 승리, 조직화 사례를 발표한 조합원에게 경품으로 자전거를 전달하고 있다. 신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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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공단 비정규직 문화제는?
2009년부터 시작…“문화로 지역사회와 하나 되기 위함”

“노동자의 삶이 지역사회와 떨어질 수 없잖아요. 노동자가 지역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수록 우리 투쟁의 연대도 확산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문화로 지역사회와 하나 되기 위해 2009년부터 이 같은 행사를 시작하게 됐죠.” 행사장에서 만난 장문규 금속노조 전남서남지역지회장이 이날 문화제 취지를 설명했다. 지회는 매년 열리는 문화제 뿐 아니라 노래패, 풍물패, 기타동아리 등을 운영하며 일상적으로 지역사회와 호흡하고 있다. 문화제 참가 인원은 3~4백여명 정도. 4회째인 이날 문화제도 노동자 시민 3백여명이 참가했다.

▲ 9월19일 전남 영암 삼호읍 종합공원에서 열린 제4회 대불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제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어깨를 걸고 민중가요 노래공연을 즐기고 있다. 신동준

장 지회장은 “특히 올해 행사는 그간 조합가입 성과를 확인하고 향후 공단차원의 단체협약 체결을 결의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회는 지속적인 선전전과 소식지 배포를 통해 대불공단 노동자들에게 지회 단체협약 체결의 중요성을 알려내고 있다. 또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3천명 노조 가입이라는 목표도 내걸었다. 현대삼호중공업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제외한 대불공단 조선업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약 6천명. 이중 절반 정도를 조직하자는 게 목표다.

한편 대불공단에서 지회의 영향력이 커져가자 최근엔 사용자들이 노조 가입을 이유로 입사를 거부하는 등 노조 무력화에 나서는 분위기다. 또 조선업 불황도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은 꾸준히 늘고 있다. 장 지회장은 “지회가 한번 싸움 붙으면 반드시 이긴다는 전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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