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번뜩였다. 단식 10일째인 22일 오후 충북 청원군 콘티넨탈 오토모티브 일렉트로닉스 공장 앞에서 만난 박윤종 콘티넨탈지회장은 심신이 지쳐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지난 7월말 만도와 에스제이엠 직장폐쇄로 떠들썩할 때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같은 시기 이 회사에도 금속 지회에 대한 비슷한 탄압이 벌어졌다. 회사는 지회가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파업을 벌였다며 불법파업으로 몰아붙였다. 지회 임원들을 징계위에 회부하고 파업에 참여한 전 조합원에게 경고 조치를 했다. 곧이어 회사엔 복수노조가 생겼다. 8월 초 여름휴가 이후 조합원들이 대거 탈퇴해 기업별 노조에 가입했고 지회는 소수노조로 전락했다.

▲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번뜩였다. 단식 10일째인 22일 오후 충북 청원군 콘티넨탈 오토모티브 일렉트로닉스 공장 앞에서 만난 박윤종 콘티넨탈지회장은 심신이 지쳐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신동준

다만 콘티넨탈에서는 만도나 에스제이엠처럼 직장폐쇄와 용역 투입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 같은 결과가 초래된 데에는 만도의 영향이 컸다는 게 박 지회장의 설명이다. 콘티넨탈 오토모티브 일렉트로닉스는 과거 만도가 부도가 나면서 분리돼 나온 기업. ‘고향’겪인 만도에서 여름휴가 기간 복수노조가 설립돼 다수 조합원을 확보한 소식이 알려지자 조합원들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특히 콘티넨탈에서도 만도처럼 전직 노조 간부들이 기업 노조로 대거 옮겨 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350여명이던 조합원 수는 22일 현재 70여명 수준으로 줄었다. 지회가 소수노조가 되자 회사 관리자들이 지회 간부의 선전물 배포를 막는 일까지 벌어졌다. 회사는 지난 16일 지회에 단협해지를 통보했다. 또 21일부터 새로 경비용역을 투입해 금속노조 및 대전충북지부 간부들의 회사 출입을 저지했다. 24일에는 지회 임원들에 대한 징계해고 단행될 예정이다. 금속노조 지회에 대한 노골적 탄압이 개시된 것.

▲ 박 지회장은 노조 만들었던 초심을 강조했다. 콘티넨탈지회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업장의 경우엔 비슷한 탄압으로부터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꼭 치열했던 처음의 마음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신동준

공장 안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22일 박 지회장과의 인터뷰는 공장 밖 차량 안에서 진행됐다. 박 지회장은 단식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소수 노조가 돼 남은 조합원들도 위축된 상황인데다 지회 간부들도 많지 않아 단식 말고는 조합원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줄 방법이 별로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 지회장은 “회사가 관리자들을 동원해 회유와 협박으로 조합원들의 지회 탈퇴를 종용했다”며 “몸은 갔어도, 마음은 금속 지회에 있는 조합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아무리 회사가 거짓을 떠들어도 진실은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조합원들이 돌아올 집을 지키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박 지회장은 노조 만들었던 초심을 강조했다. 콘티넨탈지회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업장의 경우엔 비슷한 탄압으로부터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꼭 치열했던 처음의 마음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아래는 박 지회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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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10일째다. 몸은 좀 어떤가?
어제 단식으로 인한 저혈압 증세가 와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재보니 좀 괜찮아졌다. 회사가 대전충북지부 동지들의 동조단식 방문을 막았는데, 그것 때문에 열 받아서 혈압이 다시 올랐나보다(웃음). 교섭 때도 신경 쓸 게 많고 바빠서 하루에 한 끼밖에 안 먹었다. 그래서인지 단식기간 몸무게가 2kg밖에 안 빠졌다.

단식에 나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민주노조 사수와 노동탄압 분쇄다. 조합원 수가 많고 지회에 힘이 있다면 파업이라도 했을 텐데 쉽지 않다. 선전물을 돌리는 것도 회사가 막곤 한다. 소수 노조가 돼 남은 조합원들도 위축된 상황인데다 지회 간부들도 많지 않아 단식 말고는 조합원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줄 방법이 별로 없었다.

여름휴가 직후엔 기업노조 수가 과반을 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갑자기 금속노조를 탈퇴한 조합원이 많아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휴가 직후 전직 지회 간부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차선 지도부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부탁을 했었다. 그런데 전직 간부들이 기업별 노조로 옮겨 타는 일이 벌어졌다. 현장엔 지회 집행부가 사퇴할 거라는 거짓 소문도 돌았다. 이 때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져 조합원들이 급속도로 이탈한 것 같다. ‘고향’겪인 만도에서 여름휴가 기간 복수노조가 설립돼 다수 조합원을 확보한 소식이 알려진 것도 조합원 마음이 흔들린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

▲ “선전물을 돌리는 것도 회사가 막곤 한다. 소수 노조가 돼 남은 조합원들도 위축된 상황인데다 지회 간부들도 많지 않아 단식 말고는 조합원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줄 방법이 별로 없었다.” 신동준

회사의 개입은 없었나?
회사가 관리자들을 동원해 회유와 협박으로 조합원들의 지회 탈퇴를 종용했다. 관리자가 조합원에게 하루에 세 번씩 전화해 회유했다는 얘길 들었다. 따로 불러놓고 승진할 때도 됐는 데 잘 판단하라고 말하기도 했다더라. 말 안 듣는 조합원에겐 ‘지금은 웃고 있지만 어디 계속 웃을 지 한번 보자’며 협박한 일도 있다. 이보다 많은 사례들이 있겠지만 대부분 알리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쉬쉬하는 분위기다.

노동위원회에서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쟁의조정 과정에서 행정지도를 내렸다. 회사는 이를 빌미로 불법파업이라고 몰아 붙였다. 산별노조인데다 사업장 내 다른 노조가 없었음에도 창구단일화 절차를 강제한 노동위원회의 결정이 탄압의 빌미가 된 셈이다. 이에 대해서도 원망이 클 것 같은데?
언제 노동부나 노동위원회가 노동자 편인 적이 있었나? 노동위원회 결정이 없었더라도 어차피 회사는 직장폐쇄라도 해서 이번에 (기획 탄압) 버튼을 누를 계획이 있었다고 본다. 유성기업 탄압 이후 조만간 우리한테도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현재 70여명이 남아 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는 어떨 것 같은가?
일시적으로는 더 줄어들 수도 있다고 본다. 아직 회사의 탄압은 시작 단계다. 향후 금속노조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차별을 본격화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대부분 자의보다는 회사의 회유 협박과 분위기에 휩쓸려 간 경우가 많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몸은 갔어도, 마음은 금속 지회에 있는 조합원들이 많다. 한 조합원이 현장에 ‘가만히만 있으면 민주노조를 지킬 수 있는 데 왜 가려고 하느냐’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그걸 보고 흐느끼는 사람을 봤다. 기업노조로 가면서 전화해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조합원들도 있다. 분위기 때문에 탈퇴했다며 재가입 의사를 밝히는 조합원들도 있다. 기업노조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면 다시 생각을 바꾸는 이들이 있을 거라 믿는다.

▲ 한 조합원이 현장에 ‘가만히만 있으면 민주노조를 지킬 수 있는 데 왜 가려고 하느냐’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그걸 보고 흐느끼는 사람을 봤다. 기업노조로 가면서 전화해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조합원들도 있다. 분위기 때문에 탈퇴했다며 재가입 의사를 밝히는 조합원들도 있다. 기업노조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면 다시 생각을 바꾸는 이들이 있을 거라 믿는다. 신동준

앞으로의 계획과 다짐을 밝혀 달라.
우선은 회사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남은 조합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 법적 대응으로 교섭권을 확보하는 등 유리한 지회에 기회를 만들 계획이다. 조합원들이 끈끈하게 뭉칠만한 자리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설사 더 많은 이들이 떠나 사태가 장기화되더라도 결국 민주노조의 필요성은 증명되게 돼 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이 돌아올 집이다. 아무리 회사가 거짓을 떠들어도 진실은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조합원들이 돌아올 집을 지키겠다.
그리고 노조 만들던 초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 지회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업장의 경우엔 비슷한 탄압으로부터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꼭 치열했던 처음의 마음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금속노조의 역할을 주문하고 싶은 게 있다면?
회사나 기업노조는 금속노조,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삶과 상관없는 정치파업이나 연대파업에 치중한다며 악선전을 하곤 한다. 우리 사업장뿐 아니라 다른 곳의 많은 조합원들이 이런 선전에 공감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공감하는 이유는 정치파업이나 연대파업 자체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법개정 투쟁 제대로 해서 성과내고 연대투쟁 함께해서 승리하는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 사업장에서 지회 역할도 중요하지만 금속노조가 산업별 노조다운 모습을 보여야 조합원들도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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