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에 한번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에 여러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하지만 광고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각 대선후보 캠프에 포진해 있는 ‘광고홍보 전문가’가 누가 있는지, 그들이 어떤 슬로건과 콘셉트, 그리고 TV광고를 만들어 내는지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누가 더 국민들 마음을 얻는지가 최대 관심사다.

故노무현 대선 당시 TV를 타고 나온 <상록수편>이나 <눈물편> 광고는 단 15초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간 노무현 삶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 광고가 노무현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故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정반대 전략을 펼쳐서 더욱 대조됐다.

노무현 후보측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클로즈업해 유권자 감성을 자극한 반면 이 후보측은 위기에 처한 나라 상황을 추락 위기에 처한 버스에 비유한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 당시 이 광고를 만들었던 기획자들은 웰콤에서 부사장과 사장으로 재직했던 송치복과 이근상의 대결이었고 승리한 송치복은 결국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명박의 <욕쟁이 국밥집> 대선광고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욕쟁이 할머니는 광고 배경이 된 종로 낙원동 국밥집이 아닌 강남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할머니다. 또한 광고에서 할머니는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지만 실제 고향은 충청도다. 이 점에서 ‘위장 광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이 광고가 얼마나 화제가 된 광고였는지 보여주는 지표였다.

▲ 민주통합당 손학규 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손낙구 민주노총 전 교선실장. 신동준
이제 2012년 대선으로 넘어와 보자. 새누리당의 대선후보인 박근혜 캠프에는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 변추석 국민대 디자인대학원장(캠프 미디어홍보본부장) 등이 합류해 있다. 조 본부장은 오리콤 출신으로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세를 탄 후 TTL캠페인을 성공시킨 화이트 사장을 지냈다. 또한 변 원장은 LG애드 출신으로 실버블렛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 공식 포스터를 제작한 공인된 비주얼 전문가다.

이들이 만들어낸 첫 번째 공식 작품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과 말풍선에 ‘ㅂㄱㅎ’을 넣은 소통을 상징하는 비주얼코드다. 보수진영에서 금시기 되어왔던 RED칼라를 중심적으로 사용하면서 박근혜의 의상까지 기획하는 등 소위 PI전략(President Identity)까지 확장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이후 전체 대선 캠페인을 어떻게 연결시켜 갈지 흥미롭다.

이에 맞서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민주통합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문재인후보다. 문재인 후보 측에는 TBWA 대표를 지낸 최창희가 홍보고문으로 합류했다. 초코파이 정, 고향의 맛 다시다, 2002 한일월드컵 ‘Be the Reds’ 길거리응원 캠페인 등을 성공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여기에 카피라이터 정철이 슬로건과 심볼 개발 작업을 도왔다. 최종 마무리 단계에서 도종환 대변인도 함께 참여해 슬로건 확정에 일조했다. 이들이 개발한 슬로건과 비주얼코드는 민중의 끝없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담쟁이 넝쿨과 신용복교수의 글씨체를 활용한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이다.

각 유력 대선후보 캠프에 소위 유명 광고회사의 기획자들, 즉 주류인사들만 포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번 대선후보들의 슬로건 전쟁에서 가장 먼저 포문을 터트린 민주통합당의 손학규 고문의 “저녁 있는 삶”은 노동계의 가장 첨예한 이슈를 가장 대중적이고 공감 가는 슬로건으로 풀어낸 걸작이다. 문재인 후보마저 공개토론회에서 진담반 농담반으로 자신이 대선후보가 되면 빌려달라고 요청할 정도니까.

사실 ‘저녁 있는 삶’은 ‘사람이 먼저다’,‘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보다 훨씬 친노동적이다. 이런 슬로건 배경에는 이쪽에서는 유명한 민주노총 정책국장 출신 손낙구 특보가 있다. 반월공단에서 직접 노동운동을 했던 손낙구는 민주노총 교선실장, 민주노총 대변인,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보좌관,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 등을 역임한 '정통파'이고 ‘정통파’답게 가장 친 노동적인 슬로건을 개발했다. 다만 ‘정통파’답게 슬로건만 있고 국민들이 쉽게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칼라나 로고 등 비주얼코드가 부족한 게 좀 아쉽다. 사실 그것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정통파 기획자들의 한계지점이다. 어쨌든, 과연 누가 더 국민을 울리고 웃기며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지. 이번 대선 캠페인의 뒤에 숨은 기획자들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

김범우 / 어느 광고회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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