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제위기, 그리고 반노동·친자본을 추구하는 이명박정부의 출범으로 불가피하게 장기투쟁으로 몰리는 사업장이 급증했고, 결국 지난해 여름부터 노조의 장기투쟁대책기금(아래 장투기금)은 바닥나고 말았다. 특히 쌍용차에서 해고돼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조합원 중 169명(비정규직지회 포함)이 기금 지급 대상자로 포함되면서 올해 장투기금 마련을 위해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한 상황. 이에 노조는 전조합원 특별결의 추진을 결정, 27일 26차 정기대의원대회에 이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안건 검토를 위해 노조 중앙위원회가 열린 20일, 쌍용차 투쟁의 근황과 장투기금에 대한 쌍용차 해고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평택의 쌍용차지부(아래 지부) 사무실을 찾았다.

“77일, 79일…벌써 2백50일 다돼간다”

작년 여름 정리해고에 맞서 쌍용차 노동자들이 벌인 77일간의 평택공장 옥쇄파업 투쟁. 줄여서 ‘77투쟁’이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우고 있는 동지들에게 ‘77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박금석 지부장 직무대행은 “78, 79일을 지나 250일이 다돼가는 지금까지도 정부와 회사의 탄압에 맞서, 그리고 77일 기간 못지않은 지옥 같은 현실에 맞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 1월15일 쌍용차지부 정리해고자특위 조합원들이 평택공장 앞에서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다. 가대위가 농성하던 공터는 사측이 철조망을 둘러 막아 놓았다.
쌍용차 노동자에 대한 정부와 회사의 탄압 역시 계속되고 있다. 작년 11월 회사는 파업투쟁에 참가한 130여명의 노동자를 징계하고 이중 34명을 징계해고 시켰다. 대타협 당시 비정규직 재취업과 분사 철회에 대한 약속 역시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또한 지난 18일 검찰은 한상균 지부장에게 징역 7년, 함께 구속된 간부 및 조합원들에게 2~5년이라는 비상식적으로 가혹한 구형을 결정했다. 더불어 파업이 끝난 지 5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조합원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다.

물론 이러한 직접적 탄압은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작년 11월 징계 해고를 당한 홍성백 조합원은 “지부에서 징계자 간담회를 하는 등 함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징계해고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지부 원성재 선전부장도 “남은 조합원 대부분 탄압에 굴복할 만큼 나약하지는 않다”며 “다들 어떻게든 공장으로 돌아가 투쟁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징계와 구속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것.

“어떻게든 투쟁의 정당성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생계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원 부장은 “대부분이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처지”라며 “미안해하면서도 생계비 마련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투쟁을 접으려 하거나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한 “자녀 학원 끊어가며 씀씀이를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이미 많은 조합원들이 보험과 적금을 해약하거나 수천만원씩 빚을 내 생활하고 있다”고 조합원들의 처지를 소개했다. 정리해고자이자 정특위 카페지기인 정준호 조합원은 “어디든 취업해 보려고 입사지원서를 내봐도 ‘쌍용차’라는 이력 때문에 퇴짜 맞고 있다는 동료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이력서에서 ‘쌍용차’를 빼도 업체에서 조회해 거부당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 박금석 지부장 직무대행은 “78, 79일을 지나 250일이 다돼가는 지금까지도 정부와 회사의 탄압에 맞서, 그리고 77일 기간 못지않은 지옥 같은 현실에 맞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1월7일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이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다.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라는 지적도 있었다. 대부분의 해고자들이 3~5월에 실업급여가 끊기기 때문. 정 조합원은 “대출 받은 돈도 다 떨어져 가는데, 실업급여마저 종료되면 최악의 상황이 올 것”이라며 “얼마 전 일가족이 카드빚 때문에 자살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남 일 같지가 않다”고 걱정을 토로하고 있다.

“대출받은 돈 다 떨어져가”

상황이 이처럼 심각하다보니 노조의 장투기금에 거는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원성재 부장은 “장투기금이 지급되면 투쟁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계문제로 위축된 사람들이 활동을 재개할 여지가 생긴다”며 “쌍용차 투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리해고자인 이길재 조합원도 “기금 지원이 된다면 가정 운영에 상당부분 숨통이 트일 것”이라며 “투쟁에 열심히 복무해야 한다는 노조 규정을 떠나, 대부분은 고마워서라도 투쟁을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족한 장투기금 확보를 위해 추진되는 전조합원 특별결의도 고무적으로 바라봤다. 이 조합원은 “개인으로 봤을 때는 작은 힘일지 모르나, 모아 놓으면 엄청난 힘이 될 것”이라며 “정리해고 사업장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뭉쳐야 산다’는 노동자의 기본 원칙을 다시금 세워내는 계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서맹섭 지회장도 “결의금이 현재 투쟁 중인 사업장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 전체를 위한 것”이라며 “자본과 정권에게 15만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쌍용차 77투쟁에 두고 금속노조에 대한, 나아가 노동운동 전체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가 적지 않다. 하지만 77일로 끝나지 않고 250일 다되도록 싸우고 있는 동지들이 있기에 이에 대한 평가 역시 아직 마무리되어서는 안 된다. 과연 쌍용차 투쟁에 대한 평가가 ‘힘겨운 싸움이었지만 결국 15만 금속노조의 힘으로 승리했다’는 결론으로 끝맺음 할 수 있을 것인가. 특별결의와 장기투쟁기금이 그에 대한 완벽한 답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승리를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단일 산별노조다운 15만의 하나 된 ‘결의’가 성사될 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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