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또 봐도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몇 번이고 종이를 들춰보고 손으로 매만진다. 19일 코스파 음성공장에서 만난 황병윤 지회장은 18일 회사와 조인식까지 마친 임금 및 단체협약안을 그렇게 손에 쥐고 있었다. “우리는 대만족입니다. 단체협약 이것만 보고 있으면 안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코스파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가입 뒤 51일 만에 회사와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체결했다. 이제부터 인간선언 시작이라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단협을 체결하면서 가장 큰 성과가 뭐냐는 질문에 황 지회장은 두 가지를 꼽았다. 노조 활동을 인정받은 것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 회사는 초반 교섭에서 노조에 시설 지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곧 임시사무실에서 ‘코스파 음성지회’ 현판을 내건 사무실로 옮기게 됐다. 또한 이번 교섭으로 김천과 음성공장 비정규직 1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노조활동인정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성사

코스파 공장 곳곳도 달라지고 있다. “관리자들이 조합원들에게 함부로 폭언했었는데 지회 설립 보고대회 이후부터 바로 사라졌어요. 그동안 몇 번씩 얘기해도 바뀌지 않던 것들도 하나씩 개선되고 있구요.” 표태근 사무장의 설명이다. 현장서 조합원들도 “그동안 억울했던 것 이제는 다 얘기하고 뜻대로 이룰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말했다.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2층 작업장 창문이다. 공장 2층에 올라가면 후끈한 공기에 환기도 되지 않는데 창문은 열리지도 않는 고정창이었다.

▲ 코스파 공장 곳곳도 달라지고 있다. “관리자들이 조합원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폭언했던게 지회 설립 보고대회 이후부터 바로 사라졌어요. 그동안 몇 번씩 얘기해도 바뀌지 않던 것들도 하나씩 개선되고 있구요.” 표태근 사무장의 설명이다. 이전 현장에는 정수기 시설은 있지만 노동자들이 직접 생수통에 지하수를 떠다가 먹었어야 했다. 최근 들어 회사가 생수를 지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신동준
“지회 만들고 얼마 안돼서 창문 좀 뗐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바로 떼냈어요. 저 창문 떼는데 3년 걸렸어요.” 2층서 작업하는 여성 노동자 두 명은 이제야 바깥의 시원한 바람을 쐬며 일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단다. 얼마 전 선풍기도 새 것으로 교체했는데 바로 매직으로 이름도 적어놨다. 그전까지는 여성 탈의실도 없어 작업장 뒤편에 숨어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는데 조만간 여성 탈의실과 샤워실도 생긴다.

“이런 상황들이 그동안 코스파 노동자들은 인간이 아닌 그냥 돈 벌어주는 기계 부속품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황 지회장은 그간의 고통을 얘기한다. 현장 환경, 설비 교체, 편의 시설 등 어떤 것도 일하는 노동자들 의견을 듣거나 이들을 고려해 마련된 것은 없었다.

공장 곳곳이 달라지고 있다

“회사는 매 년 원가절감 계획을 내면서 인원을 줄이고 노동 강도는 강화해왔다. 두 명이 해야 할 일도 한 명이 하고 있고 현장 환경 자체도 매우 열악하다. 여기에 비인간적인 대우와 폭언, 인격체로 대우해주지 않는 회사의 태도는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다. 개인이 아무리 얘기해도 바뀌지 않는 회사 태도 때문에 단체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한 이유다.

▲ 황병윤 지회장은 18일 회사와 조인식까지 마친 임금 및 단체협약안을 그렇게 손에 쥐고 있었다. “우리는 대만족입니다. 단체협약 이것만 보고 있으면 안먹어도 배가 부릅니다.”황병윤 지회장(사진 왼쪽)이 지회 결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신동준
“지회 설립은 우리에게 인간선언이었습니다.” 황 지회장은 지회 설립을 반겼던 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래서 누구 하나 지회 설립을 반대하지 않았다. 설립 소식을 알리고 얼마 되지 않아 현장 조합원 전원이 가입원서를 적었다. 지회 설립 보고대회에는 다리 깁스를 한 조합원까지 참여할 정도였다.

변화는 회사 뿐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에도 나타났다. 황 지회장은 “대화가 없던 조합원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대화를 하면서 끊어졌던 인간관계가 회복되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전한다. 표 사무장도 “예전에는 업무가 힘들다보니 혼자 쉬기 바빴는데 이제 서로 먼저 다가가게 됐다”고 덧붙인다.

이전에 코스파 노동자들은 한 시간 주어진 점심 식사시간 동안 30분 밥 먹고 30분은 작업을 했었다. 하지만 지회 설립 후 작업하던 30분 동안 전체 조합원이 모여서 교육을 했다. 주간 조 조합원은 퇴근 후에도 매일 30분씩 모여 꾸준히 교육을 했다. “정말 유익한 교육이었다. 조합원들이 노조가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황 지회장의 설명이다.

끊어졌던 인간관계도 회복

코스파는 김천과 음성 두 곳에 공장이 있지만 두 곳 노동자들은 서로 만날 일도 없었다. 표 지회장은 노조에 가입한 뒤에야 김천 공장에 처음 가봤다. 그런 이들이 지난 6월에는 두 공장 합동 체육대회도 열었다. 조합원들과 가족들까지 김천에 모였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개인으로만 있던 힘이 하나가 되니 회사를 상대로 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 정말 희열을 느꼈습니다.”

▲ 표태근 코스파 음성지회 사무장이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작업 환경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신동준
코스파는 이직률도 높고, 지역에서는 임금도 적고 일도 힘든 회사로 알려져 있었다. 황 지회장은 이제 노동자들이 아프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일터로 바꾸겠다고 이후 각오를 밝힌다. 그러기 위해 조합원들 사이에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도 강조한다. “회사로 인해서 끊어졌던 관계를 회복하고 노조를 안정화해 현장을 개선하면 다들 평생직장이라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되지 않겠습니까?” 노동자들이 떠나고 싶은 일터가 아니라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만들겠다는 이들 노동자들의 꿈. 앞으로 승승장구 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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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회 설립부터 단체협약 조인식까지

코스파지회는 충북 음성과 경북 김천 두 곳에 있다. 음성공장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김천공장은 구미지부 소속이다. 코스파 노동자들은 지난 5월 13일 지회 설립 총회를 마치고 5월 29일 설립 보고대회를 열어 공식적으로 금속노조 조합원이 됐다. 현재 두 공장의 조합원은 60여 명이다. 코스파는 자동차부품과 완충포장재 등을 생산한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장시간 노동, 관리자들의 무시 등으로 고통받아온 이 곳 노동자들은 지회 설립 직후 회사에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요구안을 전달했다. 그리고 6월 14일 1차 교섭을 시작으로 7월 13일 7차 교섭까지 진행해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이후 7월 16일 지회 임시총회를 열고 전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해 임금 및 단체협약 합의안을 가결했다. 이어 코스파 노사는 7월 18일 김천공장에서 임금 및 단체협약 조인식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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