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자본의 횡포로 공장을 빼앗기고, 길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마지막 선택, 원정투쟁. 최근 들어 이런 투쟁방식이 늘고 있다. 발레오공조코리아와 콜트악기-콜텍 조합원들이 새해부터 프랑스와 미국으로 각각 원정길에 올랐고, 2월에는 경기지부 승림카본분회 조합원들도 독일 원정투쟁에 나선다. 산넘고 물건너 타국으로 투쟁을 떠나는 노동자들의 마음은 절박하기만 하다.

인천의 콜트악기와 대전충북의 콜텍지회는 지난해 3월 뮤직메세 악기쇼(Frankfurt Musikmesse 2009)가 열린 독일과 10월 요코하마 악기쇼가 열린 일본원정에 이어 세번째로 지난 6일 미국 남쇼(The NAMM Show 2010)를 찾아 원정투쟁을 다녀왔다. 해외 판매가 95%에 이르는 콜트악기-콜텍의 박영호 사장에게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가 악기쇼임을 착안, 악기쇼에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알려내기 위함이다.

콜트악기-콜텍 원정투쟁만 세번  

지난해 3월 투쟁에서는 “그 기타는 버리세요”라는 문구의 선전전과 문화인들의 불매 캠페인 등을 벌여, 그 공간에서 콜트악기-콜텍과 거래하지 않겠다는 확인도 받는 성과를 얻었다. 함께 쇼에 참가한 박영효 사장은 급하게 노동자들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 일본 원정투쟁 때는 일본 콜트기타 총판인 이시바시 사장 이름으로 박 사장에게 항의공문 전달을 약속받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특히 당시 투쟁은 일본 미디어와 시민단체 등에게 호응을 얻어 상황을 취재하는 취재단이 형성되고 현재도 활동 중이기도 하다.

이번 미국 원정투쟁단 역시 큰 선물을 안고 돌아왔다. 이미 2차례의 악기쇼에서 유명해진 이곳 노동자들이 나타날 때마다 많은 지지와 지원이 잇따르고 있는 것. 미국 현지 뮤지션들의 주도하에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콜트 행동연대 콘서트 : 기타의 밤’ 콘서트가 열리고, 기자회견과 거리투쟁에 함께 했다. 또 미국의 한 뮤지션은 이 회사의 70%를 수주하고 있는 미국의 기타제조사 ‘휀더’에 직접 항의메일을 보내, ‘콜트콜텍 문제가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했다. 콜텍지회 장석천 사무장은 “악기쇼에 참가한 바이어들도 한국노동자를 버린 채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고 있는 악기의 질에 대해 큰 불만이 있었다면서 노동자들을 지지했다”며 “원정투쟁에서의 큰 성과는 사측에 대한 대외적 신뢰도를 낮춘 것”이라고 밝혔다.

발레오공조도 세 번째 원정길…해외진보정당과의 국제연대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역시 절박함 심정을 가지고 또다시 원정투쟁 길에 올랐다. 프랑스 자본 발레오는 2004년 공장을 인수한 후 수년간 흑자인 한국공장에서 브렌치지급수수료(발레오 본사가 매달 가져가는 수수료)만 챙겨가다, 어느 날 갑자기 공장을 철수한 전형적인 먹튀 행태를 보였다. 고용보장만 담보된다면 모든 것을 열고 대화하겠다는 지회의 요구에도, 발레오 자본은 지난 10월 문자와 퀵서비스로 180명 전원 해고시킨 것.

텅 빈 공장에서 발레오지회는 공장을 지키며 전국 발레오 자본과 거래하고 있는 공장 앞에서 이 같은 만행을 알리고 투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에 발레오 지회는 본사면담을 요청하며 지난 11월 일본원정투쟁을 시작으로 12월 프랑스 원정투쟁, 그리고 지난 19일 프랑스 원정투쟁에 나선 것이다.

발레오사측은 지회가 일본원정 투쟁계획을 발표했을 때, 한국책임자가 나서서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프랑스 원정투쟁에서는 현지 노동단체 및 진보단체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공동투쟁을 벌이는 성과를 얻었다. 이번 원정투쟁 역시 프랑스의 노동자 및 진보정당과의 국제연대를 통해 발레오 자본의 실체를 프랑스에 알려 본사를 압박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떠났다. 출발 전 이택호 지회장은 “이번 프랑스 원정에서도 본사가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어 놓지 않으면 발레오 자본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며 이번 원정투쟁에 대한 결의를 밝힌 바 있다.

승림카본 노동자도 2월에 독일 원정 

2월엔 승림카본분회 조합원들이 독일 다국적 기업인 슁크 자본과 면담을 성사하기 위해 원정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분회에 따르면, 한국자본 승림카본금속과 슁크가 50:50 지분을 나눠 갖고 있음에도 승림카본금속은 독인자본 입장만 대변하며 2006년 분회를 건설하자마자, 해고 및 고소고발 등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사측은 “독일자본이 복직을 수용하면 복직 시키겠다”며 발뺌하고 있는 상태.

분회는 수개월 본사 앞 천막농성과 수차례 독일대사관 면담 등 질기고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해진 수석부분회장은 “3년간의 긴 싸움동안 우리 노조는 소수 조합으로 전락했다”며 “노조 일일보고까지 받으며,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슁크와 직접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원정투쟁 길의 절박함을 전했다.

지난 2005~6년 원정투쟁은 일국적 투쟁으로 해결되지 않는 거시 경제 문제, 주로 신자유주의 무역체계인 WTO(세계무역기구)나 FTA(자유무역협정) 등 협상저지 투쟁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2008년에 들어서면서 한국시티즌정밀지회(08년 5월), 한국산연지회(08년 5월), 기륭분회(08년 10월),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08년 11월), 콜트․콜텍지회(09년 3월), 발레오공조코리아(09년 11, 12월), 콜트콜텍지회(2010년 1월), 발레오공조코리아(2010년 1월), 승림카본분회(2010년 2월)(금속 사업장) 등 원정투쟁은 이제 외국기업 노조 투쟁방식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원정투쟁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먹튀자본이 원정투쟁을 양산한다

원정투쟁이 이처럼 늘고 있는 것은 외국투기성 자본의 국내진출이 늘었고, 이윤추구만 지향하는 해외자본의 공장청산, 기술과 물량 유출 등 그 횡포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여 진다. 특히 지분 인수 후 경영에만 참가하고 있는 기업일 경우, 향후 이윤창출이 불투명하거나 적대적 노조가 설립되면 대화를 단절하고 철수하는 등 극단적 조치를 취해 외투자본과 노동자들의 싸움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해외 투기성 자본에 대해 혜택만 줄뿐, 토착화와 국내환원에 대한 강제조항을 만들지 않아 외투자본의 횡포를 부추기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노조 이정희 정책국장은 “국내 지사는 재정만 관리하고, 물량이동이나 인력관리에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아, 본사 철수결정이 내려지면 더 이상 싸울 대상조차 없다”며 투쟁의 어려움을 전했다.

해당자본의 국적을 따라 해외로 떠났지만 원정투쟁은 쉽지 않은 투쟁인 것이 사실이다. 콜텍의 이인근 지회장은 “지난 9일 동안 원정단 투쟁은 현지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해외투쟁인 만큼 현재 단체와의 연대를 강조했다. 노조 이 정책국장도 역시 “콜트콜텍 지회는 현지주체와 미리 연대해 계획을 세운 좋은 사례”라며 “현지에서 본사와 협상테이블을 만들고, 함께 싸워줄 동력이 마련되지 않으면 원정투쟁에서 성과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평가한다. 즉 각국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단체 등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대가 밑받침되어야 한다는 것.

금속노조, 3월초 해외투기성자본 대응 메뉴얼 제작배포

이에 노조 김호규 부위원장은 원정투쟁이 성과를 낳기 위해 ‘글로벌 그룹의 글로벌 노조대표자회의 체계’를 제안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원정투쟁은 이슈를 만들고 본사를 압박한다는 의미로 떠나지만, 문화적 차이로 이슈가 되기 쉽지 않다”며 “본사결정 후 떠나는 것도 사실 뒤늦은 대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부위원장은 “글로벌 그룹의 경영방침과 그에 따른 대응 등을 논의하는 각국 노조대표자 회의 체계를 통해 노조가 사전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상적인 국제연대 강화가 관건이라는 뜻.

한편,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는 이런 상황을 극복해보고자 올해 정책 사업의 일환으로 외국투기자본 구조조정 대응 매뉴얼 제작에 나선다. 메뉴얼을 통해 해외자본의 현황과 노조의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본다는 것. 메뉴얼은 3월 초 제작을 완료해 배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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