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기획하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모델’을 누구로 할 것인가의 고민이 80%를 차지할 만큼 ‘모델’은 중요하다. 모델은 광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화자, 즉 말하는 사람이고 그 말하는 사람의 신뢰감이 있고 없느냐에 따라 전체 광고의 신뢰성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금 한참 방송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업이 있습니다”라는 현대중공업의 기업PR광고의 모델 안성기나 LPG주유소 E1의 모델인 김연아가 혹시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 되는 순간, 그 광고는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사실 거창한 사회적 물의뿐 아니라 정말 별 것 아닌 사소한 이슈가 SNS를 통해서 확산되는 경우도 많다. 과거 삼성전자 애니콜의 한 모델은 일상생활에서 LG전자 사이언을 사용하는 모습이 스포츠신문에 나서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최근에 르노삼성자동차 SM3모델인 유지태가 실제로는 다른 차량을 이용한다는 사실로 이슈화되기도 한다. 또한 소주 ‘처음처럼’의 모델인 이효리는 경쟁소주가 놓여 있는 술자리에는 얼씬도 안하는 것도 유명한 일화.

▲ S-oil 캐릭터 모델 '구도일'.

그런데 문제는 ‘기획자’가 이런 광고모델을 24시간 밀착감시하며 사생활까지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특히 요즘 일어나는 ‘사회적 물의’라고 하는 것들이 사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마약이나 도박 등 정말 죄질불량의 행위뿐만 아니다. 무심코 찍은 사진 한 장, 유명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술자리에서 뱉은 말 한마디가 SNS를 타고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기획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통제불능의 상태’에 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히 예측된 상황을 원하는 ‘기획자’들은 요즘 ‘캐릭터 모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마약과 도박은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술도 한잔 하지 않는다. 은밀한 사생활이 노출될 것을 걱정할 필요 없는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모델, 바로 캐릭터 모델인 것이다. 최근 S-oil은 ‘구도일’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적극적인 광고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금호타이어도 지난해부터 ‘또로’라는 캐릭터를 개발해서 광고활동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히어로’라는 캐럭터 4명을 등장시켰고 대우건설도 ‘정대우밴드’ 캐릭터 밴드를 결성해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스타모델에 식상함을 느끼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해서 선호도가 많이 좋아졌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스타모델처럼 막대한 모델비를 주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그래서 완벽한 기획이 완성될 수 있는 모델이라는 점이 큰 매력이라는 점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캐틱터 모델 광고는 ‘광고 기획의 최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대우건설 캐릭터 모델 '정대우밴드'.

최근 통합진보당 내분사태 관련해서 일부 보수언론에서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의원에 대해서 ‘경기동부연합의 기획상품’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이를 진보진영의 일부 인사들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기획상품’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 단어의 이면을 보면 김재연 의원이라는 개인의 내용은 전혀 없는데 미모의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즉 대중들이 좋아할 만하니 그쪽 정파에서 내세운다라는, 비하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그래도 그쪽은 ‘기획’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콘트롤타워가 있다는 점이다. 콘트롤 타워가 전체 판을 보고 지형을 보면서 정치정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는 콘트롤타워, 즉 기획자들이 있다는 점이고 다른 쪽은 토론 좀 잘하고 정책능력이 있는 몇몇 유명인은 있을지 모르지만 뒤에서 전체 판을 보고 5년 앞을 내다보면서 기획을 하는 ‘기획자’들이 없다는 점, 아니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진보시즌2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그러한 ‘기획 없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때가 왔다. 이제 ‘모사가’가 되고 ‘마키아밸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 말자. 모두 진보시즌2의 기획자가 되자. 이번이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기회이지 않겠나.

김범우 / 어느 광고회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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