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봉대와 잔업 농성조 조합원들은 지금 즉시 광장으로 집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11일 오후 3시 반, 생산 현장에 스피커 소리가 반복해서 울렸다. 방송이 나간 지 5분도 채 안 돼 노동자들이 집결했다. 이들은 팔뚝질과 함께 올해 임단투를 승리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약식 집회를 열었다.

공장 입구 옆에는 천막 농성장이 꾸려졌다. 현장 곳곳엔 ‘파업투쟁 승리’, ‘구조조정, 노동탄압 중단’, ‘역수입 반대’ 등이 적힌 종이로 만든 작은 깃발 수십 개가 부착돼 있다. 아직 쟁의 절차도 밟지 않았고, 교섭도 6차례밖에 진행되지 않았지만 경기 안산 에스제이엠 공장엔 벌써부터 전운이 감돌고 있다.

▲ 6월11일 에스제이엠지회 선봉대와 잔업농성조 조합원들이 약식집회를 하고 있다. 신동준

수년간 큰 마찰 없이 노사관계를 유지해 왔던 에스제이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11일 오후 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정준위 에스제이엠지회 수석부지회장은 A4 열장짜리 문서를 보여줬다. 회사가 지회에 제출한 무더기 단체협약 개악안이었다. 노조활동 보장뿐 아니라 각종 복지, 조합원 징계절차까지 망라해 총 51개 조항을 후퇴시키는 내용이다. “어이가 없죠? 회사는 예년에도 교섭 때마다 단협 10여개 조항을 후퇴시키자고 했지만, 지회가 투쟁에 나서면 철회하곤 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요.” 정 수석부지회장의 설명이다.

단협조항 51개 개악안 들이민 에스제이엠

이뿐이 아니다. 지회는 최근 회사가 국내 1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노사 협의 없이 중국공장에서 대량 역수입해 납품한 증거를 포착했다. 지회에 따르면 3공장에서는 노사 사전 협의 없이 물량을 외주화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두 단협 위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합원 고용을 위협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현장엔 3공장 분리 매각설, 공장 이전설 등이 돌기도 한다. 지회가 ‘구조조정 의도’라며 긴장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회사는 교섭 석상에서 절대 구조조정은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지회 간부들뿐 아니라 조합원들도 회사 말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예전에 노사 관계가 안 좋을 때도 노사간 최소한의 신뢰관계는 있었습니다. 약속은 지킨다는 분위기였죠. 하지만 최근엔 말 그대로 신뢰가 바닥났어요.” 3공장에 일하고 있는 조호준 조합원은 “회사가 3공장 물량 외주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공문하나 보내 놓고 노사협의를 거쳤다고 우기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최근 회사의 현장통제가 강화된 것도 신뢰가 바닥난 또 하나의 이유다. 조 조합원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 ‘기초질서 확립’이라는 명분 아래 식사시간이나 출퇴근 시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현장의 반발을 샀다. 회사는 또 과거 5년 전 근태기록가지 뒤져 조합원들을 대거 징계위에 회부하기도 했다.

▲ “예전에 노사 관계가 안 좋을 때도 노사간 최소한의 신뢰관계는 있었습니다. 약속은 지킨다는 분위기였죠. 하지만 최근엔 말 그대로 신뢰가 바닥났어요.” 3공장에 일하고 있는 조호준 조합원은 “회사가 3공장 물량 외주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공문하나 보내 놓고 노사협의를 거쳤다고 우기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신동준

회사의 공격적 행보, 노동자들의 파업, 이를 핑계 삼은 직장폐쇄와 용역 투입, 그리고 조합원 분열을 통한 어용 복수노조 설립. 경주 발레오만도에서 시작돼 KEC,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전형적인 기획 탄압이 에스제이엠에서도 벌어지는 것일까? 김영호 에스제이엠지회장은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한다.

“기획된 노조탄압 가능성 높다”

“수년 전부터 준비했던 칼을 올해 회사가 빼 든 거라고 봅니다. 3년 전에 회사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노무관리자를 교체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단순 노무관리자가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 컨설팅 경력이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김 지회장에 따르면 그 이후로 회사의 현장통제가 서서히 강화되고, 지회를 무시한 일방통행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본격적인 공격이 개시됐다는 것.

그렇다면 이 같은 회사의 공세에 대해 지회는 맞설 준비가 돼 있을까? 김 지회장은 “일찌감치 대비를 해 왔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 지회장에 따르면 지회는 이미 전 조합원 대상으로 간담회를 진행, 회사 도발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싸워야 이길 수 있는지를 공유했다. 또한 전 조합원을 소규모 분임조로 나눠 비상연락망을 구축했다. 11일부터는 선봉대와 조합원들이 순환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지회가 공장 안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는 것은 7년만이라고 한다.

▲ 6월11일 잔업농성조 약식집회를 마친 뒤 지회 교섭위원들이 농성 프로그램을 상의하고 있다. 신동준

조합원들 분위기도 뜨겁다는 게 지회의 설명이다. 정준위 수석부지회장은 “예년엔 지회 지침에 억지로 동참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지만, 올해는 조합원 모두 지침 하나하나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조호준 조합원도 “고용문제가 직결돼 있다 보니 올해는 회사에 우리 힘을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들이 많다”며 “한 동안 큰 싸움이 없었는데 이제는 한 판 붙어볼 때가 됐다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승리를 확신하는 이유

김 지회장은 특히 지역 내 타 지회의 연대가 현장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강조한다. 지난달 30일 에스제이엠 공장에서 열린 집회에 경기지부 소속 지회 간부들이 대거 동참해 한 몸처럼 맞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일로 지회 조합원들은 큰 힘을 받았다고 한다. 경기지부는 최근 운영위원회에서 에스제이엠 문제를 공동 대응하기 위해 쟁의조정신청을 애초 일정보다 앞당기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아무리 지회 조직력이 튼튼하다 하더라도 회사가 돈과 물리력을 동원해 작정하고 탄압하면 지회 혼자선 대응하기 힘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경기지부가 함께 맞선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올해 금속노조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지회장이 승리를 확신하는 또 하나의 이유, 바로 지역 노동자들의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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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제이엠의 이례적인 도발, 왜?

에스제이엠지회는 회사가 중국공장을 확대하는 대신 국내 공장을 축소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플랜트 배관 부품을 생산하는 3공장을 자동자부품을 생산하는 1공장과 분리 매각하는 것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처럼 1~3공장이 하나의 법인이 될 경우 3백인 미만 중소기업이 얻을 수 있는 각종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회사는 지난 2010년 에스제이엠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어 구조적인 준비를 마친 상태다.

1, 3공장 분리 후 회사는 3공장을 플랜트 건설 현장과 가까운 곳에 두고, 1공장도 안산에 비해 입지조건이 좋은 곳으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자연스럽게 이직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회사는 빈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 이미 최근 지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이례적으로 현장에 계약직을 신규채용하기도 했다.

지회가 예상하고 있는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회사는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지만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아울러 지회는 둘로 쪼개지고, 전체 조합원 수도 줄어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현재 이 시나리오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노동조합이다. 에스제이엠 현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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