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8일 SPP조선해양 사내협력사 HDM기업이 폐업했다. 조선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특히 경남 고성 통영지역의 중소 조선소에서 흔하게 겪는 일이다.

대부분 경우 업체가 폐업하면 체불임금이 발생한다. 잘 받으면 70%정도, 그도 아니면 반 토막 난 임금으로 해결하거나 거의 2달치에 이르는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가는 일상이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벌어진다. 소위 물량팀으로 불리는 조선소 2차하청 소속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 경남 SPP조선 사내하청업체에 물량팀으로 일했던 노동자들이 지난 5월 SPP조선 앞에서 체불임금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경남지부 제공

SPP조선해양 사내협력사 HDM기업의 경우 폐업 시 작업물량에 대한 기성금액과 공탁금 잔액으로 전체 80여명의 임금(2~3월분) 중 평균 40%정도가 지급된 상태다. 사내 협력사 이면서도 20여명만 본공(협력사 직영)이고 나머지 60여명은 이른바 2차 하청 물량팀 노동자들이다. 원청사는 협력사 대표와 담합해 나머지 미지급 임금에 대해서는 노동부에 체당금 신청 등을 통해 충당하기를 권고하는 형태로 대충 마무리한다.

이에 노동자들은 임금체불과 관련 노동부 통영지청에 찾아 갔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현행법으로 원청사에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노동부의 행정해석으로는 ‘물량팀장’을 사용자로 보기 때문에 물량팀 노동자는 팀장에게 임금청구를 해야 한다. 물량팀장도 법적으로 원청이 아닌 협력사에 임금청구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미 폐업한 협력사 사장은 임금을 지급할 의지나 능력도 없다.

조선소 임금체불…노동부는 “방법 없다”?

지난 5월 2일부터 HDM기업의 물량팀장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체불임금투쟁을 시작했다. SPP조선해양은 사천시 통영시 고성군에 3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통영 안정공단의 공장 앞에서 사천시 SPP조선해양 본관 앞에서 체불임금을 원청이 해결하라고 싸우고 있지만 원청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답변만 들려온다.

열심히 일 한 것도 죄라면 일한 죄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하늘로 붕 떠버렸다. 협력사가 폐업을 당해 임금 지급능력이 없으면 원청이 책임을 지는 것이 법 논리 이전에 사회적 책임일 것이다.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협력사와 도급 계약 시 공탁금을 받는 것 아닌가.

노동부 관료들도 법만 들먹이며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럼 내가 일하고도 임금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이상한 현실이 벌어진다.

위의 사내하청업체의 폐업을 통해 드러난 조선소의 실상을 보면 조선소의 산업재해와 사망사고 등은 제외하더라도 불법파견문제와 임금체불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조선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장 힘든 노동조건에서 장시간 일을 하는 막장 공장의 전형이다. 또한 노동부는 합법도급이라고 해석하지만 불법파견을 비롯해서 불법노동행위가 집결된 불법의 무풍지대다.

조선소는 불법의 무풍지대

최근 대법원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2년 이상 일을 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있었다. 조선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불법파견의 당사자로서 마땅히 정규직으로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 경남 SPP조선 사내하청업체에 물량팀으로 일했던 노동자들이 지난 5월 체불임금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경남지부 제공

 
원청의 정규직 노동자, 사내 하청회사의 노동자(본공)도 있고, 하청회사와 도급계약을 통해 일을 하는 물량팀 노동자들도 있다. 급한 물량의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한 돌관팀(공기 단축을 목적으로 밤낮없이 일을 시키기 위해 외부에서 불러온 인력 팀) 노동자 등 기형적인 고용형태들이 자본의 먹잇감으로 존재하고 있다.
원청 조선소는 합법도급처럼 위장을 하지만 불법파견에 해당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면 전체작업공정에 입각한 업무지휘 감독, 근무인원 및 근태관리, 물량팀의 운영, 돌관팀의 운영, 작업복 등 안정장비 원청 관리지급, 출입증 발급 관리 등이 있다.

조선소 역시 컨베이어 벨트를 통한 작업공정처럼 배를 건조한다. 수많은 사내하청 회사들이 각각의 불럭들을 제작하고 사상하고 도장을 해서 도크장에서 마지막 조립을 한다. 어느 한 공정도 제때 제작하지 않으면 배가 완성되는데 지장이 있다.

따라서 원청사는 하청사를 지휘 감독을 해서 제때에 배가 완성되도록 감독하고 지시하고 명령을 일상적으로 한다. 원청은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면하기 위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하지만 실은 원청의 일상적인 지휘 감독 하에 배가 만들어 진다. 불법파견의 명백한 정황이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실태조사는 고사하고 법 타령만 늘어놓으며 비정규직 양산과 그에 따른 피해에 대해 눈만 끔벅끔벅 거리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큰 조선소에는 그나마 정규직들이 다소 있지만 고성 통영지역의 중소 조선소들은 관리파트에 일부 정규직이 있을 뿐 거의 90%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대우조선의 경우 협력사와 도급계약 체결 시 2차 하청 즉 물량팀을 두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중소 조선소는 물량팀(다단계 하도급)없이는 작업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의 전 공정에 물량팀이 존재한다.

노동부에 정중히 권한다. 제발 ‘노동’이란 개념을 탑재한 부서로서 최소한의 사명의식을 가지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분한 눈물을 닦아 주기 바란다. 당장 SPP조선해양을 비롯 전 조선소에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일선에 있는 노동부 관료에게 문제 제기를 하면 윗선의 지시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고 하는 태만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버리고 현장의 상황을 조사해야한다. 일선에 있는 공무원이 실태를 파악하고 정보를 취합해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해야 할 것 아닌가? 당신들이 받는 월급에 비정규노동자가 낸 세금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기 바란다.

비정규노동자들이 낸 세금은 어디로?

또한 2차 하청 물량팀의 임금체불에 대한 즉각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물량팀은 없어지는 것이 일차적인 문제지만 백번 양보해서 기왕에 존재하는 물량팀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건설업에 적용되는 법 즉 ‘근로기준법상 직상수급인의 하도급인에 대한 임금지급 의무규정’(2008.1월 시행)의 법을 수정 보완해서 조선소에도 시급히 적용되도록 입법화해야 한다. 건설업의 경우도 조선소의 물량팀의 경우처럼 다단계하도급이 일반화 되어있고 그 과정에서 임금체불 문제가 심각했다. 그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법을 개정해서 건설 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19대 국회가 개원을 앞두고 있다. 새누리당 1호 법안의 내용 중 ‘사내하도급 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제정’안이 있다. 요약하면 현재 만행되고 있는 사내하도급을 적법한 것으로 인정한 전제 위에 하도급 근로자의 차별 시정을 신청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사내하도급이라는 비정규직 영역을 만들어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다.

사내하도급법에 따라 사내하도급 계약을 체결하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차별처우 금지만 적용받을 뿐이다. 따라서 원청은 불법파견의 멍에를 벗을 수 있게 된다. 사장들을 위한 법인지 비정규노동자들을 위한 법인지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비정규직 보호가 아닌 착취구조의 안착을 위한 법안은 즉시 폐기 되는 것이 마땅하다.

민주당 또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통해 ‘비정규 보호법’이 아니라 실상은 ‘비정규 착취법’을 확대하고 고착화 시킨 원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근본적 해결은 아니지만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조선소 물량팀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라도 확보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새누리당의 법안 제출에 따른 각 정당이나 노동계와의 치열한 논란이 막을 열었다. 그 와중에 오늘도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폐업에 따른 임금체불이나 고용의 문제로 분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중 어느 사안 하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없겠지만 조선소의 실상은 참담하다. 서둘러서 조선소의 다단계 하도급의 불법 구조 속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분한 눈물을 닦아 주길 바란다.

이승호 / 금속노조 경남지부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

* 노동부를 찾았다 실망하고 돌아온 노동자들은 결국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문을 두드렸다.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5월초부터 이들과 함께 SPP조선을 상대로 체불임금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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