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신문을 펼쳤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19대 국회의 시끄러운 현안들로 채워진 1면을 훑은 뒤 2면으로 넘기자 한국계 입양인 중 처음으로 장관직에 오른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중소기업·디지털경제 장관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파리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지난 5월 31일 진행한 인터뷰로, 역시나 한국계 입양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펠르랭 장관은 이 질문에 “한국에 가더라도 친부모를 찾고 싶지는 않다”고 답했다.

개인적으로는 펠르랭 장관에게 한국계 입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질문하는 것이나, 이를 기사의 제목으로 뽑은 게 그리 편히 읽히진 않는다. 그러나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그런 질문을 하고 제목을 뽑은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순 있다.

▲ 프랑스 새 정부에서 중소기업·디지털 경제장관에 발탁된 한국계 입양인 플뢰르 펠르랭.(파리=로이터/뉴시스)

프랑스 대선 과정에서 펠르랭이란 인물이 화제가 되면서부터 상당수 한국인들의 관심은 우리가 버린 핏줄이 선진국에서 멋지게 자랐다는 데 맞춰졌고, 언론 또한 이를 무시할 순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읽히는’ 기사로 만들어야 하는 부분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았음에도 선진국에서 성공한 핏줄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지나친 관심은 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그 배경이 된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만큼, 유의미한 관찰의 대목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남는 아쉬움이 있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한국계 입양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관심을 받는 펠르랭 장관과 그와 같은 입양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펠르랭 장관의 인터뷰들을 보면 그는 정체성과 관련한 한국 언론들의 질문에 “태어난 곳이 한국”이며 “얼굴만 한국인”일 뿐 자신은 프랑스인이라고 짧게 강조하는 것으로 답을 끝낸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PD저널>의 프랑스 통신원인 이지용 PD에 따르면 대선 전후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펠르랭 장관은 공개가 가능한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유독 입양에 관한 질문에 있어선 원론적 답변으로 끝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펠르랭 장관의 친구이자 국립행정학교 동기인 마리 도데는 “플뢰르에게 입양 문제는 문을 닫아놓은 정원과도 같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걸 숨기진 않지만 그 문제로 오랜 시간 얘기하지도 않는다”며 한국과, 한국 언론의 배려 부족을 에둘러 지적했다는 후문이다.

정부 수립 이후 2011년 말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수출된 아이들의 수는 16만 명이 넘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이를 가장 많이 수출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더 이상 이 땅엔 전쟁이나 기근도 없지만 말이다.

최근 간행된 『인종 간 입양의 사회학』(뿌리의 집)을 편집한 제인 정 트렌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 대표에 따르면 “성공한 입양인은 소수이며, 살아남는 것 자체가 성공”인 입양인이 훨씬 많다. 성공한 입양인들 또한 입양인으로서 삶의 무게를 견뎠을 터다. 그러나 펠르랭 장관과 같은 특별한 ‘스토리’가 있지 않고서야, 한국 사회와 언론은 수출된 아이들의 삶은 물론 그들을 수출한 이 사회의 시스템에도 일회적인 관심 이상의 것을 보이지 않는다.

최근 언론에선 할리우드의 브란젤리나 커플이나 한국의 연기자 부부인 차인표-신애라 씨의 공개입양을 칭송하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자신의 생부모와 함께 살 권리가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언론이 해외로 수출된 아이들의 성공 스토리나, 아이를 입양한 유명인들의 삶을 칭송하는 데 앞서, 싱글맘 등이 아이와 생이별을 하지 않고 이 땅에서 당당히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편견을 없애고 관련 제도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하는 이유다.

세계 최대 입양 국가라는 트라우마의 극복을 위해 입양아의 신화를 포장하려는 사회 분위기에 묻어가기 보단 비판의 메스를 들이대는 일, 그것이 바로 올바른 의제 설정과 확산의 의무를 안고 있는 언론으로서의 첫 걸음이 아닐까.

김세옥 <PD저널> 기자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