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서울대병원의 소아과병동에 입원해 있는 소아백혈병환자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TV를 통해 방송될 때가 있다. 열 살도 안 된 어린이들이 도대체 어쩌다 저렇게 끔찍한 병에 걸리게 되었을까 다들 안타까워하면서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도대체 왜 암에 걸렸을까? 부모들은 자신이 잘못된 유전자를 물려주어서 아이에게 암이 발생되었다고 괴로워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소아암에 걸린 많은 어린이들 중에는 환경운동가들이 많다. 그들은 짧은 생애를 의미있게 보내기 위하여 유해물질을 없애기 위한 운동에 나섰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여러 가지 법이 제정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 클린턴 힐. 1989년 11세의 나이에 뇌암으로 사망. 죽기전까지 유해한 환경에 대한 운동을 전개. <지구를 지키는 아이들’이라는 클럽을 조직>. www.kidsforsavingearth.org
“너는 많은 발암물질들에 노출되고 있어. 그건 너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된 일이야. 하지만, 엄마를 욕하지는 마.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곳에 유해물질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 너의 엄마에게도 유해물질이 쌓인 것 뿐이야. 그리고 그게 너에게로 온거야.”

미국에서는 2005년에 9,500명의 소아암 환자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매년 1 %씩 소아암이 증가하는 추세다. 어린이들의 암은 어른들의 암과는 다르다. 소아암은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이 30 %, 뇌와 신경계통의 암이 21 %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암이 엄마 뱃속에서부터 결정되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소아암이 증가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연구되고 있다. 첫째는 부모로부터 태아에게 유해물질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관점이고, 두 번째는 유해물질에 노출된 부모의 유전자가 손상되어 암에 취약한 자녀가 태어나게 된다는 관점이다.

2004년 미국 환경단체인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에서 신생아 10명의 탯줄로부터 혈액을 분석하였더니, 총 287종의 화학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중에는 미국에서 많이 사용되는 유기염소계 농약이 7종, 이미 금지된 농약성분 14종, 브롬계열의 난연제 32종, 사용이 금지된 피시비(PCBs) 147종, 그 밖에도 다이옥신, 자동차 배기가스의 성분들 등 다양한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물질들은 산모가 섭취한 음식과 공기와 물을 통해서 태아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 3 kg 남짓한 몸무게를 갖는다. 몸이 작은 만큼 소량의 유해물질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모로부터 전달받은 유해물질은 태아의 암을 일으키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테오 콜번이라는 연구자는 기존의 연구결과들을 집대성하여, 어린이의 암은 태아 때에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래 표는 부모가 유해물질에 노출될 경우 자녀에게 언제쯤 백혈병이 발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결과이다. 농약의 예를 보자. 총 9개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부모가 농약에 노출될 경우 농약이 태아에게 전달되어 출생시점에서 이미 백혈병에 걸려있거나, 가장 늦은 경우 20세에 백혈병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해요인

인간에 대한 연구 수(개)

자녀에게 암이 발생된 시점

가장 빠른 시기

가장 늦은 시기

방사선

16

출생

47세

흡연/대기오염

5

영아

16세

농약

9

출생

20세

의약품

6

영아

16세

산업용 화학물질

7

어린이

18세

비소(중금속)

1

어린이

어린이

물/음식

5

영아

16세

High pregnancy hormones

8

영아

34세

질병

2

어린이

14세

유전적 변화

4

9년

33세

불법적 약물이나 알콜

3

출생

14세

총계

66

 

 

다른 연구에서는 임신중에 부모가 농약에 노출되면 아이의 백혈병 발생확률은 최대 9배까지 높아진다고 한다. 농약 뿐 아니라 흡연, 방사선이나 중금속, 그리고 산업용 화학물질들도 어린이에게 백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임신전에 아버지가 벤젠이나 알코올을 많이 사용하는 작업을 한 경우에는 자녀의 백혈병 발생위험이 6배 증가한다는 결과도 있다. 화학물질로 아버지의 정자가 손상되면서, 유전적으로 백혈병에 취약한 아이가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집안에 암의 내력이 있으면, 자녀가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암에 걸리면 조상탓을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DNA 염색체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마신 유해화학물질들이 고스란히 자식에게 이전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다가는 인류가 멸종될 위기에 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노동현장과 사회에서 발암물질을 없애려는 노력을 해야만, 우리의 아이들과 또 그들의 아이들이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김신범 /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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