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찾은 유성기업 아산공장. 용역깡패도, 정문을 가로막던 컨테이너도 없어졌지만 정문 앞 세워진 천막과 가득 걸린 현수막이 여전히 투쟁이 계속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년 전 5월 18일, 유성기업은 합의했던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불법적인 직장폐쇄를 강행, 용역깡패를 투입했다. 그리고 2011년 8월 22일 법원 중재로 현장에 복귀하기까지 석 달이 넘도록 조합원들은 비닐하우스 농성 투쟁을 벌였다.

어느덧 1년을 맞았다. “32년 전 광주에서 민주화항쟁이 있던 날, 유성에서는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는 탄압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유성 노동자들은 아직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16일 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홍종인 유성기업아산지회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자신들의 투쟁을 얘기했다.

▲ 5월16일 점심시간에 유성기업 아산지회 조합원들이 올빼미라 불리는 지회 해고자들과 단체 줄넘기 시합을 하고 있다. 올빼미와 현장 조합원이 어울려 왁자지껄 즐거운 순간을 만들고 있다. 신동준

어느덧 1년

조합원의 현장복귀 직후 회사는 27명을 해고하고 세 차례에 걸쳐 지회 소속 조합원 대부분을 징계했다. 조합원들에게 일방적인 교육을 강요하고 기존에 하던 공정이 아닌 곳으로 부당 배치전환을 진행했다. 이런 회사의 탄압의 전면에는 금속노조 탈퇴자들로 구성된 기업노조가 있다. 투쟁 당시 일부 조합원들이 개별 복귀했고 기업노조가 만들어졌다. 지회 조합원들이 현장에 복귀한 이후 기업노조 소속 노동자와의 차별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예전에는 내가 할 일 하고나면 쉴 수 있었는데 요즘은 조금만 쉬어도 관리자들이 왜 쉬냐고 난리다. 저쪽(기업노조) 조합원들이 쉬는 건 정당하다고 하면서 우리만 못 쉬게 한다. 차별이 정말 심각하다.” 한 조합원이 현장 상황을 토로했다.

대규모 징계 이후에도 회사는 별 것 아닌 일도 트집잡아 지회 조합원들을 징계했다. 작은 일에도 지회 조합원들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 일쑤다. 홍 지회장은 “심지어 회사는 조합원들에 대해 개인별 관찰일지까지 작성하고 있다”며 “일하는 동안 기계를 몇 번 떠났는지, 담배를 몇 대 폈는지, 누구랑 얘기하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공장, 그 안에서 조합원들은 매일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 유성기업에는 두 개의 노조가 있다. 사무직 포함한 전체 조합원은 기업노조가 조금 많지만 현장 조합원은 유성기업지회가 더 많다. 지회 한 상집이 식당게시판에 선전물을 걸고 있다. 신동준

평화로운 공장 속 치열한 투쟁

“형제가 같이 다니거나 부녀지간인 조합원들이 많다. 회사는 이들에게 너 때문에 다른 사람 해고될 수 있다고 협박하거나, 조합원들 고향집까지 관리자들이 찾아가서 노조 탈퇴를 회유했다.” 홍 지회장의 설명이다. 지난해 말 회사 관리자들은 현대차에서 기업노조가 과반수가 안 되면 물량을 끊겠다고 했다며 위기감을 조성하거나, 일찌감치 임금교섭을 타결한 기업노조를 앞세워 회유했다. 그리고 결국 올해 1월 관리자 50여 명이 기업노조에 가입하면서 이들이 현행 노조법 상 교섭대표노조가 됐다.

‘금속지회’에 대한 탄압도 이어졌다. 복귀 초반 회사는 조합원 총회나 교육시간 등 단체협약에 명시된 내용도 보장하지 않았다. 올해 4월 2일 회사는 단협해지까지 통보했다. 지회 전임자가 현장순회를 하려고 하면 일과 시간이 끝난 뒤에나 하라면서 현장 출입을 막았다. 오랜 투쟁과 노동부의 시정지도 명령이 있은 뒤에야 노조 사무실이나 현장 출입을 하게 됐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동료들과의 갈등이다. 한 조합원은 “난 30년 동안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정말 가족처럼 지냈고 집안에 숟가락, 밥그릇이 몇 개 있는지까지 알 정도였다”며 “하지만 이제는 친목회도 다 깨지고 먼저 복귀해서 어용노조로 간 사람들하고는 인사도 잘 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조합원도 “공정이 아예 분리된 게 아니니까 같이 일해야 하는데 투쟁할 때 우리 괴롭혔던 기억이 생생하니 잘 지낼수가 없다”고 덧붙인다.

▲ 5월16일 유성기업 아산공장에서 지회 조합원들이 중식집회를 하고 있다. 해고자들과 현장조합원들이 함께 참여한 집회다. 유성지회는 "흩어지면 노예되고 뭉치면 주인된다"는 구호를 주로 외친다. 신동준

가족같은 동료를 적으로 만든 회사

“회사에서 늘 우리더러 가족이라고 했다. 그런 가족한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사람이 어디있냐. 아무리 우리 앞에서 웃고 잘해주는 것 같아도 자본의 본질이 뭔지 제대로 알았다. 회사에 대한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조합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홍 지회장은 이 때문에 조합원들이 무엇보다도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투쟁을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뜻을 모으고 있다고 강조한다.

해고자인 이재윤 조합원도 민주노조 사수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년을 3년 앞둔 이 조합원은 지난 해 10월 18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5월 18일이면 해고된 지 딱 7개월이 된다. 이 조합원은 “해고되고 가정은 엉망이 됐고 개인적으로는 많이 힘들다”면서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복직이 아니라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조합원은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모든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며 “회사는 법적으로 질 것을 알면서도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간부들, 활동가들을 해고했지만 현장 조합원들이 잘 버티면서 노조를 지키고 있다”고 덧붙인다.

매주 수요일. 해고자들과 현장 조합원들이 한데 모이는 날이다. 수요일 점심시간 약식집회를 하고 해고자와 현장조합원이 족구, 단체줄넘기 등을 한다. 이날도 100여 명의 조합원이 모여 중식집회를 하고 단체줄넘기를 했다. 이기고 지는 것 상관없이 조합원들 웃음소리가 연신 터진다. 현장에서 매일 관리자와 기업노조에 맞서고, 해고자들은 백방으로 뛰며 힘든 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모이기만 하면 더 힘이 난단다.

▲ “지난 해 유성기업 투쟁으로 주간연속2교대제 문제가 사회쟁점으로 확산됐다. 이제는 복수노조, 자본의 지배개입으로 인한 노조탄압이 얼마나 극심한지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올해 노조법 재개정 투쟁, 민주노조 사수 투쟁을 중심으로 벌여나갈 것이다.” 홍종인 지회장이 이같이 강조한다. 신동준

매주 수요일

지회는 회사와 2011년 마무리 짓지 못한 임금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는 어용노조와 이미 지난해 11월 ‘일 1.500원 인상, 상여금 지급’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지회에는 최종안이라면서 상여금을 뺀 일급 인상만 제시하고 있다. 결국 지회는 지난 3월 쟁의행위찬반투표를 진행했고, 결과는 93%라는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홍 지회장은 “그렇게 당하고도 또 투쟁하겠다고 찬성한 조합원들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며 “우리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 노조를 지키기 위한 조합원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한다.

지회는 5월 18일 조합원 하루 파업을 벌인다. 홍 지회장은 “사실 농담처럼 회사가 또 직장폐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그 날은 지난해 아산, 영동의 모든 조합원들이 직장폐쇄에 맞서 한 자리에 모였던 날이다. 다시 5월 18일을 기점으로 노조탄압을 자행하는 회사에 반격하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지난 해 유성기업 투쟁으로 주간연속2교대제 문제가 사회쟁점으로 확산됐다. 이제는 복수노조, 자본의 지배개입으로 인한 노조탄압이 얼마나 극심한지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올해 노조법 재개정 투쟁, 민주노조 사수 투쟁을 중심으로 벌여나갈 것이다.” 홍 지회장이 이같이 강조한다. 이날 점심집회에서 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하나다. “흩어지면 노예되고 뭉치면 주인된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5월 18일. 그 투쟁,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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