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에 몇 안 되는 조선소 사업장. 현대중공업 계열 조선소 중 유일한 금속노조 사업장인 현대삼호중공업 황의규 지회장을 만나 조선소 지회장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황의규 지회장은 마흔여섯 살이다. 부인과 아들, 딸 네 식구다. 많은 아빠들이 고등학생 딸 아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요즘, 황 지회장은 아들과 축구로 대화한다. 아이와 함께 조기축구회에 나가 땀 흘리며 소통한다고. “제가 고등학교 1학년까지 축구선수였어요. 그 덕분에 아들과 공감할 거리가 있는 거죠.” 축구 솜씨가 대단하겠다고 추임새를 넣었더니, 웬걸 조합원 중에 대학 때까지 축구선수로 뛴 사람들도 있다며 손사래를 친다. 정작 본인은 나이 많은 축에 끼여 뛸 기회도 잘 주지 않는다며 웃는다. 현대삼호중공업 사내 축구대회는 거의 전쟁터 수준이라고 덧붙인다.

황 지회장은 두 아이의 출산을 지켜보지 못했다. 두 아이가 태어난 동안 회사 인수 합병 등으로 싸우느라 안타까운 경험을 했다. 황 지회장은 딸의 질병을 얘기하며 목소리가 낮아졌다. “크론병 입니다. 희귀 질환이지요. 완치가 힘들고 평생 약 먹고 음식조절 해야 하는 병입니다.” 크론병은 소화관 전체에 염증이 나타나는 병이다.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고 면역체계 이상이 불러 온 질병이라고 보고되고 있다. “우리 딸 씩씩합니다. 병에 주눅 들지 않고 이겨내고 있습니다. 음식 조절과 피로 때문에 멀리 못가지만 딸과 자주 여행 가려고 노력합니다.” 딸이 좋아하는 곳이 있다고 알려준다. 전남 장흥에 있는 ‘우드랜드’라고. ‘우드랜드’는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편백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나무집, 흙집, 한옥 등 친환경 건축물 체험도 할 수 있다.

씩씩한 난치병 딸과 듬직한 아빠

황의규 지회장에게 인생의 지침이 되는 말과 보물 1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저의 인생 목표이기도 합니다. 저의 보물은 가족입니다. 특히 부인이죠. 노동운동, 노조의 길을 걸어온 저를 이해하고 지금도 응원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로, 아이들 엄마로, 노조와 일자리를 지키는 남편 대신 가장으로 두 몫, 세 몫을 해낸 열혈 여성이다.

▲ 황의규 지회장은 세 가지 목표를 세우고 7기 지회를 건설했다. 첫째, 노동안전 확보 둘째, 비정규직-정규직 임금차별 줄이기 셋째, 2년 임기 동안 조합원 손 네 번 잡기 등이다. 신동준

황의규 지회장은 세 가지 목표를 세우고 7기 지회를 건설했다. 첫째, 노동안전 확보 둘째, 비정규직-정규직 임금차별 줄이기 셋째, 2년 임기 동안 조합원 손 네 번 잡기 등이다. “올해 네 분이 일하다 돌아가셨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죽었습니다. 지회 최우선 과제는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하는 현장 만들기입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는 지금부터 준비해 차기 집행부 우선 과제로 넘기고, 지금 집행부는 임금 격차 해소부터 요구하기로 했다. “회의, 출장 빼고 매일 오전 두 시간, 오후 두 시간 현장을 돕니다. 사탕이나 껌을 주면서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2,530명 조합원을 네 번 만나려면 부지런히 돌아야죠.” 한 없이 넓은 현장에 흩어져 있는 조합원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게 조선소 현실이다. 황 지회장은 기초적인 노조활동을 성실히 수행해야 조합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회장이 현장을 휘젓고 다니니 회사와 가까운 대의원들이 긴장하고 싫은 눈치를 준다고 귀띔한다.

요즘 황 지회장은 2000년 이후 입사한 600명 정도 되는 젊은 조합원들과 어떻게 더 가까이 지낼지 고민이다. “젊은 조합원들과 어울릴 거리가 적어서 힘들어요. 쉬는 시간에 현장 가서 말을 나누려 해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조합원 카카오톡 망 구축이라도 할 생각입니다.” 황 지회장은 조합원 탓만 하지 않았다. “활동가들이 관성에 빠져있고 위축돼 있습니다. 한 마디로 현장활동을 하지 않는 거죠. 옛날에 이렇게 했으니 이렇게 하자고 하면 조합원들에게 먹히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솔선수범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현대삼호중공업 일자리 수호신

올해 임금 단체협상 진척상황에 대해 물었다. “우리 지회 교섭위원 선임은 지회장이 합니다. 승인은 운영위원회에서 하고요. 아직 교섭위원 승인 절차가 남아 있어 교섭 진행이 더뎌지고 있습니다.(인터뷰 한 5월1일 현재).” 게다가 회사는 조합원들이 실비를 내고 살고 있는 사원아파트를 사라는 복지축소 개악안을 들고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황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억대가 넘을 수도 있는 큰 돈을 갑자기 어디서 구하겠냐며 이것만은 꼭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사장이 소통하자고 지회에 찾아오기도 하지만 단협안 30일 검토 기간을 내세우며 시간 끌기 수순에 들어간 것 같다고 황 지회장은 분석했다. “회사에 그랬습니다. 알아서들 해라. 그렇게 늘어지면 금속노조, 민주노총 총파업에 발 맞출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금속노조 사업 방향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조선업종 전체가 불황입니다. 조선분과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조선소 노조들도 있고요. 이럴 때 금속노조가 조선업종 불황을 떨칠 대책 을 정부에 촉구하고 끌어내야 합니다. 조선분과 강화를 위한 사업도 배치해 조직도 넓혀야 합니다. 중국은 국가가 나서서 노력하고 있는데,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진중공업, 신아SB 등 금속노조 소속 조선소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다. 수주 부진, 경영 판단 미숙, 세습 경영, 경영진 비리 등 자본가들의 실패를 노동자들이 떠안는 현실이다.

황의규 지회장은 1999년 현대중공업 인수 시기에 노조가 고용승계 등을 요구하며 72일 동안 파업투쟁을 벌일 때 사수대장이었다. 2001년 음성공장이 폐쇄될 때 지부장으로서 고용승계를 내걸고 18일 옥쇄 파업을 이끌었다. 황의규 지회장을 ‘삼호중공업 일자리 수호신’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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