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누릴 수 없는 노동자들, 노조에 가입했다는 낙인 때문에 살던 지역을 떠나야 하는 노동자들. 세계 1등 조선소 현대중공업, 그곳 사내하청 노동자들 이야기다. 현대중공업 최대주주 정몽준 후보에게 노조활동 보장과 하청노동자 권리보장을 요구하기 위해 지난 2일부터 상경투쟁을 벌인 하창민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을 5일 만났다. 하 지회장은 “노조활동 보장이 가장 중요한 요구며 그를 통해 하청노동자 스스로 힘을 키우는 것이 우리 목표”라고 강조한다.

“노조 활동 좀 드러내놓고 하고 싶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란 말조차 쉽게 할 수 없는 처지다. 이들을 탄압하는 것 중 하나가 이른바 ‘블랙리스트’다. 회사는 노조에 가입했거나 노조 활동 하는 이를 전산망으로 관리한다. ‘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회사 출입증조차 발급받지 못한다. 노조가입으로 한번 ‘찍히면’ 다른 조선소 어느 곳에서도 일할 수 없는 처지가 되기도 한다.

“노조라는 말조차 못하는 처지”

하 지회장은 지난해 해고됐다. 그리고 다른 곳에 취업하려했지만 어느 곳도 받아주지 않았다. 하 지회장이 블랙리스트의 실제 피해자가 된 것이다. 하 지회장은 “회사 내부 전산망으로 관리하는 것이니 우리가 실제 문서를 발견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에 명단에 오르면 현대 계열사는 물론 어느 곳도 취업할 수 없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덧붙인다. ‘전산클레임’ 방식도 있다. “회사 마음에 안 들거나 노조 활동을 하면 한 업체에서 해고돼도 기존 출입증을 전산해지해 주지 않아 다른 업체 취업도 막고 있다”는 것이 하 지회장의 설명이다.

▲ 하창민 지회장은 “회사 내부 전산망으로 관리하는 것이니 우리가 실제 문서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에 명단에 오르면 현대 계열사는 물론이고 어느 곳도 취업할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신동준
노조에 가입해 싸움을 벌이기라도 하면 업체를 폐업하거나 갖가지 이유로 해고하는 일은 다반사다. 2004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가운데 소지공 150여 명이 노조에 집단 가입해 싸움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들이 속했던 업체는 모두 폐업했고 다들 해고자 신세가 됐다. 그 뒤로 그들 중 울산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 울산에서는 어디가서도 먹고 살수가 없으니 거제도며 영암 조선소 곳곳으로 다 흩어졌다.” 하 지회장의 설명은 현대중공업 노조탄압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거제와 영암으로 흩어진 이들

이들 하청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으면 생활할 임금을 벌수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물량에 따라 유동적이다. 하지만 업체는 수시로 폐업하거나 변경해 늘상 고용불안을 안고 산다. 현대중공업이 수 조원 이익을 내도 성과급조차 받을 수 없고, 산재를 당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 하청노동자들에게 노조는 누구에게 보다 절실하다.

“현장 노동자들도 노조가 필요하고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퇴직금이나 해고, 산재은폐 등의 문제로 노조를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감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 노조하면 울산에서 밥 먹고 못 산다는 것을 회사가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하 지회장의 설명이다.

2003년 노조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6년에 딱 한 번 회사와 교섭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전체 조합원을 공개해야 교섭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회사를 어떻게 믿고 조합원들을 공개하냐.” 결국 그 해 교섭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공개적으로 활동했던 일부 조합원들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 상경투쟁을 벌이면서 지회는 정몽준 후보에게 다섯가지 요구안을 전달했다. 노동조합활동 보장과 산재은폐 척결, 성과급 동일지급과 사용자성 인정, 그리고 무급휴가를 없애달라는 것. 죽지않고, 다치지않고, 노동자의 권리라고 법에도 정해놓은 것 좀 보장받게 해달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다. 4월5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정몽준 사무소 앞에서 현중사내하청지회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신동준
2010년 3월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에 대해 “하청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라고 규정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하청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것이다. 하청노조와의 교섭의무 또한 원청인 현대중공업에 있는 셈이다. 그 뒤 2006년 지회는 법원에 노조활동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고 한 달에 여덟 번 현장 출입을 할 수 있다는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아직도 지회간부의 현장 출입을 막고 있다. 법이고 뭐고 회사는 막무가내다.

법 위에 현대중공업?

“법원 판결이 나오더라도 회사는 일체 무시하고 있다. 우리가 힘을 키우고 그 힘으로 스스로 바꾸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하 지회장의 생각이다. 이에 하 지회장은 “올해 지회의 목표는 현장에서 조직사업을 벌여 조합원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노조 활동을 하려면 해고를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니 쉽지 않다. 하 지회장은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금속노조의 노력과 지원을 강조한다.

하 지회장은 “현재 금속노조 사업을 보면 우리에게 실질적인 효과가 있거나 현장에서 노조를 믿고 뭔가 용기를 얻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조선소 하청노동자 중 노조 깃발을 꽂고 있는 곳도 우리밖에 없을 정도로 조직이 열악하다. 노조의 집중적인 조직화 사업이 필요하다.” 하 지회장은 이같이 덧붙인다. 이어 하 지회장은 “더 열악한 이들에게 노조가 더 지원하고 예산, 인력, 사업 등을 집중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며 “회사 안에서도 차별 받는데 노조에서까지 차별받아서야 되겠냐”고 말했다.

이번 상경투쟁 동안 지회는 정몽준에게 다섯 가지 요구안을 전달했다. 노동조합활동 보장과 산재은폐 척결, 성과급 동일지급과 사용자성 인정, 그리고 무급휴가를 없애달라는 것. 죽지않고, 다치지않고, 노동자의 권리라고 법에도 정해놓은 것 좀 보장받게 해달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 “하청노동자도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헌법에 보장된 권리 하청노동자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힘 키워 꼭 지금 현실 바꿔낼 거다.” 하 지회장의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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