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발표 준비 해 오셨죠?” 권명숙 인천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이 교육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굳이 시키면 하긴 하겠는데…. 대충 준비는 하긴 했지만….” 어째 대답이 시원찮다. 그런데 웬걸. 괜한 엄살이었다. 사진, 동영상에 프리젠테이션 자료까지, 다들 대충 준비해 온 게 아니다. 발표자도 듣는 사람도 진지하고 적극적이다.

“자동차 도어트림을 만드는 데 드라이버 진동과 무게 때문에 손목터널증후군에 걸린 조합원이 있습니다. 어떻게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요?” 최문회 금속노조 인천지부 동광기연지회 부지회장이 현장에서 직접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 2일 인천지역 금속노조 소속 단위들이 공동으로 마련한 노동안전보건 교육에서 최문회 금속노조 동광기연지회 부지회장이 동영상과 함께 현장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김상민
“저희도 비슷한 공정이 있는데, 값을 설정하면 입력된 힘에 맞게 자동으로 볼트를 박아주는 기계가 있어요. 그걸 이용하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도르래를 설치해 드라이버를 매달아 놓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최 부지회장의 질문에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에서 온 참가자들이 진지하게 조언을 해줬다.

김진영 한국지엠지부 안전부장은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줬다. 허리를 90도 이상 숙여 엔진에 볼트를 박는 일인데, 누가 봐도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공정이다. 게다가 라인 이동 속도가 너무 빨라 라인을 따라 뒷걸음질 치면서까지 일 해야 할 지경이다. 동영상을 본 참가자들은 라인 높이 조정, 유압식 의자 설치, 작업 완료 후 라인 이동이 되도록 공정 개선 등 다양한 대책을 제안했다.

금속노조 인천지부와 한국지엠지부, 현대차지부 정비위원회 인천지회, 그리고 지역의 노동안전보건 단체인 <건강한 노동 세상>이 함께 마련한 ‘노동안전보건 실무역량 강화교육’ 마지막 강의 풍경이다. 4월 3일 저녁 민주노총 인천본부 강의실에서 열린 이 강의는 강사와 청중으로 나뉘는 일방적 주입식 교육이 아니다. 참가자들이 직접 노동자 건강권과 관련된 주변의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해 보는 방식의 참여형 교육이다.

주입식이 아닌 참여형 교육

현장에서 자신과 조합원들이 직접 겪고 있는 일을 바탕으로 발표하다보니 생생하고 흥미롭다. 또한 서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현장에 돌아가 반영할 수 있다. 이 교육은 다른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잘 몰랐던 어려움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김현섭 현대차지부 정비위원회 인천지회 노안부장은 자동차 정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힘든 점들을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통해 소개했다.

▲ 김진영 한국지엠지부 안전부장이 2일 인천지역 노안교육에서 자신이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며 현장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김상민
“우리는 심야노동도 없고, 노동강도도 그리 세지 않습니다. 다만 고객을 상대하다보니 스트레스가 문제에요. 탈모, 과민성 장애, 경직, 발작 등에 시달리는 조합원들이 많아요.” 발표를 들은 참가자들은 다음부터 자동차 정비소를 갈 때, 정비 노동자의 고충을 배려해야겠다고 마음먹는 분위기다.

참가자들은 향후 소속 단위의 틀을 벗어나 노동안전보건 분야에서 함께할 수 있는 일들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영수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장은 “노동안전보건 문제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힘을 모으면 좋겠다”며 “안전교육을 함께 받는 것을 추진해 보자”고 말했다. 한국지엠지부에서 온 참가자는 현대차 정비위원회 소속 참가자에게 정비 조합원들이 서로의 사업장을 방문해 노동 환경을 견학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제안했다.

같은 노동안전보건 분야 활동가들이 모이다 보니 서로 공통의 고민을 나누고 의기투합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지기 마련. 한국지엠지부에서 산업안전위원을 맡고 있는 안규백 대의원이 “현장에선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성과급 좀 더 받기 위한 카드로 활용되곤 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하자 다른 참가자들도 공감을 표했다. 안 대의원은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돈 몇 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조합원들뿐 아니라 간부들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일 인천지역 노동안전보건 마지막 교육에 참석한 조합원들과 '건강한 노동 세상' 회원들. 기업 울타리와 비정규직 정규직 차이를 넘어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힘을 모으자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상민
기업 울타리 넘어 의기투합

이번 교육은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가 인천지부에 제안해 지역공동사업으로 마련됐다. 예산은 기업지부와 지역지부가 함께 모은 ‘지역공동사업비’를 사용했다. 지난 2월 13일부터 이날까지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됐는데, 매번 스무 명 넘게 참석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고 한다. 교육내용은 △산재보상 실무교육 △근골격계질환 평가 및 예방활동 △안전 보건 점검 실무 △현대차 아산공장 안전보건활동 답사 △발암물질 없는 현장 만들기 △심야노동과 과로 및 스트레스 등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강의가 이날 진행된 발표수업이다.

권명숙 인천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은 “한국지엠지부, 현대차정비위원회 등 인천지역에 있는 기업지부 소속 단위들과 함께 노동안전보건 교육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권 부장은 “그간 같은 지역에 있음에도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 교육을 통해 친분을 쌓고 의기투합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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