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민감한 기계덩어리다. 그만큼 정비가 중요하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국 자동차 품질이 세계적인 수준이 됐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라’는 정비의 명언을 따르지 않더라도 소모품만 제 때 갈아주면 10년은 문제없이 탈 수 있다. 자동차 수명이 점점 길어지면서 각 완성차 정비공장이 바빠지고 있다. 자동차 정비 현장 노동자들의 살림살이는 어떤지 기아자동차지부 정비지회 전주분회장을 찾아가 들어보았다.

김종석 분회장. 올 해 마흔아홉 살이다. 김 분회장은 기아 입사 전 안양의 한 백화점에서 일했다. 부인은 같은 매장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타향살이에 고향이 옆 동네인 동료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의지하다보니 결혼까지 했다고. “처가에서 제 키가 작다고 반대했습니다. 하하.” 인상 좋은 신랑은 낮에 일하고 밤에 정비학원에서 꿈을 키우며 성실하게 사는 모습으로 보답했다. “90년대 들어 자동차 보급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자동차정비가 전망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딸들과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아빠

김 분회장은 둘째 딸이 태어난 1994년 기아에 입사하면서 전주로 왔다. “어느덧 두 딸이 대학생이 됐습니다.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죠. 한창 성장할 때 노조활동, 동아리활동, 현장 일로 바빴죠.” 대부분 중년의 금속노동자들이 겪었던 안타까운 시절이다. “아빠의 일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고 바르게 성장하게 도와준 부인에게 항상 고맙죠. 변변히 고마움을 표현할 재주가 없어서 고민했는데 이제 딸들이 커서 한 시름 덜었습니다.” 마침 인터뷰한 날이 김 분회장 부인의 생일이었다. 딸들에게 엄마 선물 살 돈을 보냈다고 한다. 아이들이 주는 남편이나 부인의 깜짝 선물. 금속 조합원들도 배우자들에게 점수 딸 만한 방법이다. 딸들에게 전해준 가훈을 물었더니 김 분회장은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딸들이 입시에서 벗어나고 저도 약간 여유가 생기면서 대화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요즘 카카오톡으로 자주 만납니다.” 시시때때로 깨알 같은 부녀간의 정을 나눈다고 한다.

▲ 김종석 분회장은 노조가 얘기하니까 조합원은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비 작업의 특성상 현장에서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노조에서 급히 처리할 일이 없다고 판단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분회장되고 아침 현장 순회한 뒤 조합원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토요일에 소비자를 찾아가 정비하는 비포서비스도 큰아버지 상을 포함해 두 번 빼고 2년 동안 모두 참여했습니다.” 신동준
김종석 분회장은 특이하지만 조합원들이 가슴에 새길만한 좌우명을 전한다. “인생의 좌우명이라기보다 제 인생지침입니다. ‘없는 사람 얘기하지 말자’를 입에 달고 삽니다. 여러 사람 모인 자리에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입에 올리면 흉보는 소리 밖에 않나옵니다. 모인 사람끼리 좋은 얘기해도 모자랄 판에 없는 사람 안주거리 삼으면 결국 모두 손해입니다.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런 소리하면 바로 제지합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 분회장의 보물 1호도 사람, 즉 친구다. “친구 같은 후배들이죠. 입사가 늦은 제가 나이 어린 선임들에게 반말을 비롯한 비인격적 대우를 받을 때 현장에서 저를 대변해준 후배들이죠. 퇴임 후 고향 정읍에서 집짓고 살기로 한 친구들입니다.” 부인도 이들과 한 잔 한다면 두 말 않고 전화 끊는다고.

김 분회장은 등산 마니아다. 전북 진안에 있는 노령산맥의 제 1봉 운장산을 추천한다. 운장의 정상에 올라 노령줄기를 바라보며 생각의 여유를 찾는다며 추천의 이유를 댄다. “동네 뒷산이라도 산에 오를 땐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어느 날 별로 높지 않은 산에 올랐는데, 전날 음주 상태를 고려하지 않아 탈진했습니다. 꼭 준비하고 올라야합니다.”

기아정비 전주분회 조합원은 81명이다. 기아 정비지회 전체 조합원은 1,740명이고 19개 서비스센터에 16개 분회가 있다. “금속노조 다른 현장도 비슷하겠지만 분회 활동의 가장 큰 애로 점은 조합원들의 고령화입니다. 평균나이 마흔 넘은지 오래입니다. 신입조합원이 없다보니 조직이 정체되고 나이를 먹다보니 조합원들 생각이 개인화로 흐르는 듯합니다.”

조합원들과 함께 일하며 소통

김 분회장은 노조가 얘기하니까 조합원은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비 작업의 특성상 현장에서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노조에서 급히 처리할 일이 없다고 판단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분회장되고 아침 현장 순회한 뒤 조합원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토요일에 소비자를 찾아가 정비하는 비포서비스도 큰아버지 상을 포함해 두 번 빼고 2년 동안 모두 참여했습니다. 처음엔 조합원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몇 번 오다 말겠지 하는 말도 들었고요.” 조합원들과 함께 땀 흘리고 대화하다보니 조합원들이 어느 순간 마음에 담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조합원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려 사업을 계획했습니다.” 한 예로 시동을 걸어놓고 작업해야하는 정비 현장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현장에 매연측정기를 설치하고 환기시설을 확대했다고 한다.

김 분회장은 “쟁의행위 찬반투표하면 우리 분회는 가끔 부결이 나왔습니다.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현장에서 함께 숨 쉬며 조합원들에게 충실히 설명했습니다. 판단과 선택은 조합원 스스로 하게 했습니다. 기아정비지회도 지속적인 현장순회로 조합원들의 신뢰회복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선거때 표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조합원들도 알게 된 거죠.” 김 분회장은 정비조직이 ‘강성’ 기아차지부 안에서 ‘노조 사각지대’라며 조직력 유지가 어렵다고 내뱉는다. “간부 위주의 활동이 현장 위주의 활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비 조합원들의 고용불안 심리도 잠재울 수 있습니다.”

김 분회장은 조합원 조직화에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조합원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노조에 적극 참여하라는 것이 아니다. 본인 의사에 반해 공장 떠나는 일이 없으려면, 정년까지 일하려면 우리가 단결해야 한다. 현장 작업 충실히 하고 어려운 동료 조합원 도와주면서 함께 가자. 노조에 대한 비판은 정면에서 하자. 모두 받아들이고 함께 당당히 토론하자. 그게 서로에 대한 예의다.” 현장 실천과 결합한 김 분회장의 울림은 조합원들에게 퍼져나갔다. 전주분회는 현장 조직 가리지 않고 운영위원회를 함께 건설해 교육시간을 확보하는 등 다음 싸움을 위해 한 걸음씩 준비하고 있다.

김종석 분회장은 노조와 지부에 한 가지 제안을 하며 인터뷰를 맺었다. “노조와 지부가 정치세력화에 더 노력해야합니다. 산별노조 법제화 등을 실천할 수 있는 노동자 국회의원과 정치인을 노조가 배출해야합니다. 이를 통해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중소공장 노동자들도 입법을 통해 혜택을 봐야 합니다.”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