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이렇게 많은 수련회는 처음이예요, 처음.”
대전 한 펜션 회의장에 50여 명의 여성이 모였다. 그게 뭐가 큰일이냐고? 여성조합원이 금속노조 전체 4% 밖에 되지 않고, 어디를 가도 모인 인원의 90% 이상이 남성인 상황에서 이번 일은 흔한 광경이 아니다. 이곳은 바로 1년에 한 번 여는 금속노조 여성노동자 수련회 현장. 참가자 중 남성은 다섯 명 뿐이다. 3월 23일 여성노동자들의 특별한 수련회 한 번 들여다보자.
아이 놀이방 있는 수련회
이날 첫 프로그램은 참여형 교육. 수련회에 오면서 오늘 아침 한 생각, 지난 시기 살아온 나의 모습, 여성간부로서의 고민, 그리고 10년 후 나의 모습 각각을 잡지에서 찾아 색지에 오려 붙이는 시간. 다른 조 잡지까지 빌려가며 다들 열심이다. 조별로 자신이 만든 색지를 들고 소개할 때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노조 활동 시작하고 5년 만에 이런 자리는 처음 왔어요. 여성이 가족 두고 이런 길 나서기가 쉽지 않은데 여행 오는 느낌이라 많이 설랬어요.” 많은 참가자들이 오랜만에 집을 떠나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에 신이 난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날마저 아이 학교 보내랴 집에 이것저것 챙기고 나오느라 화장은 버스 기다리며 1분 만에 후다닥 해치워야 했던 이들이다.이곳에 모인 여성노동자가 느끼는 노조 간부로서의 고민은 무엇일까. 한 참가자는 “아들 둘에 신랑까지 키우고 노조 일까지 하다 보니 내 삶이 스마트폰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토로한다.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 최근 노조에 가입하거나 새로 대의원을 맡으면서 일이 늘어 힘들다는 소리도 이어진다. 또 다른 조합원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예전에 비해 몸도 힘들고 고민도 많아졌다”면서도 “내가 생각하고 움직일수록 우리 사는 게 더 좋아지는거 아니겠냐는 생각에 행복하다”고 얘기한다.
“집, 회사, 노조까지. 몸 열 개라도 부족해”
이날 노조 여성 간부가 늘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현대차 울산공장 식당에서 일한다는 한 조합원은 “식당 조합원들은 다른 조합원들이 호랑이처럼 무섭다고 할 만큼 열심히 활동한다”면서도 “아직 나서서 끌어주고 활동하는 대의원이 많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조합원은 여성이 출산과 육아로 인해 지속적으로 노조 활동을 하기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면서 여성이 꾸준히 활동하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가정과 노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 노조 여성간부들, 올 한해 무엇을 할까. 이날 모인 여성들은 올 노조 활동에서의 목표도 세웠다. 여성 성희롱 철폐, 노조 여성간부 강화, 미니 체육대회, 대의원대회 참석, 교육선전 강화, 노조-지부-지회 상황 세세하게 전달하기, 선전물 배포 등. ‘먹고 모이고 만나자’라 목표를 적은 이도 있다. 목표를 하나씩 보고나니 여성노동자들이 앞장서 벌일 올해 활동이 더 기대된다. 김현미 노조 부위원장도 “노조에서 4% 밖에 안 되는 여성이지만 오늘 적은 활동만 다 실천하면 40%도 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녁 먹으면서도 얘기는 끊이지 않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노조에서 주최하는 어느 수련회를 가나 남성이 대부분이고 여성은 저 한 명일 때도 있어요. 여성들만 모이는 자리가 흔치 않은데 와보니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서 좋아요.” 한 조합원 얘기처럼 처한 상황이 비슷한 이들이다 보니 조금만 얘기를 나눠도 금새 친해진다. 다른 행사와 어떤 부분이 가장 다르냐고 물으니 “담배 피러 나가는 사람 적고, 딱딱한 분위기 없이 수다 떠는 거”라며 웃는다.“여성들 모이니 좋다”
“같은 지회에서 온 언니는 지회 회의 때 별로 얘기를 안 하는데 오늘은 정말 자기 얘기를 많이하더라.” 알게 모르게 남성이 대부분인 노조 각종 회의나 행사 때 잘 나서지 못하던 여성도 이 곳에서는 자신의 얘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게 된다. 김현미 부위원장도 “지역도 다르고 사업장도 다르지만 하는 고민이나 힘든 부분의 공감대가 크니 수련회 준비하면서도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서로 배려하는 것, 그것이 몸으로 크게 느껴지는 것이 여성수련회의 특징이다.” 김 부위원장이 덧붙였다.
“다음 수련회는 전국에서 더 많은 여성 간부들이 모였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자주 모여요.” 모이니 좋다. 내 얘기에 박수치고 고개 끄덕여 주는 이들이 많아서도 좋다. 앞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조합원들도 더 많아지도록 해 다시 모이자는 약속도 한다. 현장에서, 지역에서 여성노동자가 무엇을 해야 할 지 결의도 탄탄히 다지고 돌아간다. “올해 금속노조 투쟁에 여성노동자가 앞장설테니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