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이렇게 많은 수련회는 처음이예요, 처음.”
대전 한 펜션 회의장에 50여 명의 여성이 모였다. 그게 뭐가 큰일이냐고? 여성조합원이 금속노조 전체 4% 밖에 되지 않고, 어디를 가도 모인 인원의 90% 이상이 남성인 상황에서 이번 일은 흔한 광경이 아니다. 이곳은 바로 1년에 한 번 여는 금속노조 여성노동자 수련회 현장. 참가자 중 남성은 다섯 명 뿐이다. 3월 23일 여성노동자들의 특별한 수련회 한 번 들여다보자.

▲ 3월 23~24일 대전에서 금속노조 여성노동자 수련회가 열렸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50여 명의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강정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다른 수련회와의 차이점이라면 어린 아기가 있다는 것. 이날 수련회에 참석한 한 조합원은 작년에도 참가했다. 올 해 꼭 참석하고 싶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태어난 지 11개월 밖에 되지 않은 딸이었다. “수련회는 참석하고 싶은데 누구한테 맡겨야 하나 고민했죠. 못 올 뻔 했는데 놀이방 운영한다고 해서 맘 편히 왔어요.”

▲ "우리는 올해 노조 강화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 수련회 참가자들이 자신의 올해 활동 목표를 적어 게시판에 붙이고 있다. 강정주
하룻밤 아이를 맡길 곳을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노조 여성수련회 때는 보육교사가 있는 놀이방을 운영한다. 조합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동안 아이들은 놀이방에서 교사와 시간을 보낸다. 이날도 아이를 돌봐주는 교사 덕에 11개월 아기 엄마도 수련회 프로그램에 맘 편히 참여할 수 있었다. 어린 아이를 맡길 곳 없어 수련회 참석을 망설이는 여성들이 있다면 꼭 기억하시라. 여성수련회는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행사라는 것을.

아이 놀이방 있는 수련회

이날 첫 프로그램은 참여형 교육. 수련회에 오면서 오늘 아침 한 생각, 지난 시기 살아온 나의 모습, 여성간부로서의 고민, 그리고 10년 후 나의 모습 각각을 잡지에서 찾아 색지에 오려 붙이는 시간. 다른 조 잡지까지 빌려가며 다들 열심이다. 조별로 자신이 만든 색지를 들고 소개할 때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 색지에 자신이 살아온 모습, 여성 간부로서의 고민, 10년 후 나의 모습 등을 잡지로 오려 붙인 뒤 참가자들에게 발표하고 있다.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자기 얘기를 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강정주
“노조 활동 시작하고 5년 만에 이런 자리는 처음 왔어요. 여성이 가족 두고 이런 길 나서기가 쉽지 않은데 여행 오는 느낌이라 많이 설랬어요.” 많은 참가자들이 오랜만에 집을 떠나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에 신이 난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날마저 아이 학교 보내랴 집에 이것저것 챙기고 나오느라 화장은 버스 기다리며 1분 만에 후다닥 해치워야 했던 이들이다.

이곳에 모인 여성노동자가 느끼는 노조 간부로서의 고민은 무엇일까. 한 참가자는 “아들 둘에 신랑까지 키우고 노조 일까지 하다 보니 내 삶이 스마트폰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토로한다.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 최근 노조에 가입하거나 새로 대의원을 맡으면서 일이 늘어 힘들다는 소리도 이어진다. 또 다른 조합원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예전에 비해 몸도 힘들고 고민도 많아졌다”면서도 “내가 생각하고 움직일수록 우리 사는 게 더 좋아지는거 아니겠냐는 생각에 행복하다”고 얘기한다.

▲ "요즘 나의 고민은 무엇일까." 잡지며 신문을 찾아가며 수련회 첫 참여형 교육에 다들 열심이다. 강정주
“집, 회사, 노조까지. 몸 열 개라도 부족해”

이날 노조 여성 간부가 늘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현대차 울산공장 식당에서 일한다는 한 조합원은 “식당 조합원들은 다른 조합원들이 호랑이처럼 무섭다고 할 만큼 열심히 활동한다”면서도 “아직 나서서 끌어주고 활동하는 대의원이 많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조합원은 여성이 출산과 육아로 인해 지속적으로 노조 활동을 하기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면서 여성이 꾸준히 활동하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가정과 노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참여형 교육 색지를 꾸민 참가자들이 조별로 모여 자신이 작성한 내용을 조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강정주
이들 노조 여성간부들, 올 한해 무엇을 할까. 이날 모인 여성들은 올 노조 활동에서의 목표도 세웠다. 여성 성희롱 철폐, 노조 여성간부 강화, 미니 체육대회, 대의원대회 참석, 교육선전 강화, 노조-지부-지회 상황 세세하게 전달하기, 선전물 배포 등. ‘먹고 모이고 만나자’라 목표를 적은 이도 있다. 목표를 하나씩 보고나니 여성노동자들이 앞장서 벌일 올해 활동이 더 기대된다. 김현미 노조 부위원장도 “노조에서 4% 밖에 안 되는 여성이지만 오늘 적은 활동만 다 실천하면 40%도 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수련회 두번째 선동 교육 시간. 한 참가자가 선동 교육 실습을 하고 있다. 강정주
저녁 먹으면서도 얘기는 끊이지 않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노조에서 주최하는 어느 수련회를 가나 남성이 대부분이고 여성은 저 한 명일 때도 있어요. 여성들만 모이는 자리가 흔치 않은데 와보니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서 좋아요.” 한 조합원 얘기처럼 처한 상황이 비슷한 이들이다 보니 조금만 얘기를 나눠도 금새 친해진다. 다른 행사와 어떤 부분이 가장 다르냐고 물으니 “담배 피러 나가는 사람 적고, 딱딱한 분위기 없이 수다 떠는 거”라며 웃는다.

“여성들 모이니 좋다”

“같은 지회에서 온 언니는 지회 회의 때 별로 얘기를 안 하는데 오늘은 정말 자기 얘기를 많이하더라.” 알게 모르게 남성이 대부분인 노조 각종 회의나 행사 때 잘 나서지 못하던 여성도 이 곳에서는 자신의 얘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게 된다. 김현미 부위원장도 “지역도 다르고 사업장도 다르지만 하는 고민이나 힘든 부분의 공감대가 크니 수련회 준비하면서도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서로 배려하는 것, 그것이 몸으로 크게 느껴지는 것이 여성수련회의 특징이다.” 김 부위원장이 덧붙였다.

▲ 여성수련회에서는 놀이방을 운영한다. 11개월된 아이도 수련회에 엄마와 같이 왔다. 참가자가 수련회 프로그램을 참여하는 동안 보육교사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강정주
“다음 수련회는 전국에서 더 많은 여성 간부들이 모였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자주 모여요.” 모이니 좋다. 내 얘기에 박수치고 고개 끄덕여 주는 이들이 많아서도 좋다. 앞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조합원들도 더 많아지도록 해 다시 모이자는 약속도 한다. 현장에서, 지역에서 여성노동자가 무엇을 해야 할 지 결의도 탄탄히 다지고 돌아간다. “올해 금속노조 투쟁에 여성노동자가 앞장설테니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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