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할 수 있을까? 집회 참여하거나 현장에서 싸우는 것 말고도 내가 할 수 있는 좀 더 특별한 역할이 없을까?’ 2010년 7월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법판결 직후 금속노조에 가입한 이희천 현대차전주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의 고민이 깊어졌다. 노조에 대해 잘 모르고 거리를 뒀던 자신의 과거가 미안해서라도 무언가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는 밴드를 만들자.’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다뤘던 이 조합원은 이렇게 마음먹었다. 뜻이 맞는 동료들을 모았다. 그리고 올 1월 18일 금속노조가 전국 곳곳에서 개최한 ‘투쟁사업장 승리 결의대회’ 호남권 행사 때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큰 박수를 받았다. 이후에도 공연 요청이 있을 때마다 나섰다. 결성된 지 두 달밖에 안 된 ‘밴드’지만 벌써 네 번이나 무대에 올랐다.

▲ 연습중인 현대차전주비정규직지회 밴드 동아리 회원들. 왼쪽부터 김태윤, 김경문, 이희천, 이동근, 김형우 조합원이다. 김상민
그런데 다른 패원들이 다 이 조합원 같이 적극적으로 무대에 서고자 하는 건 아니다. “저희 동아리 두 번째 무대가 지난 2월 11일 쌍용차 포위의 날 때였어요. 충분히 연습도 못했는데 솔직히 무리였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수 천 명 앞에서 노래 부른다고 생각하니 잔뜩 긴장이 돼, 그 탓에 결국 체해서 고생 좀 했죠.” 지회 사무실 옆 연습실에서 만난 김태윤 선전부장이 웃으면서 당시를 떠올렸다. 김 부장은 밴드에서 노래(보컬)을 맡고 있다.

이동근 조합원은 아예 웬만해선 무대에 서질 않는다. 이 조합원은 “완벽하게 연습하지 않으면 사람들 앞에 서기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 조합원은 거의 매일 연습실에 들러 기타를 친다. 패원들은 이 조합원이 밴드에서 가장 열심히 연습하는 조합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패장인 이희천 조합원은 무대를 부담스러워하는 조합원들 태도에 불만이 살짝 있다. “연습도 중요하지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자꾸 무대에 서 봐야 되요. 그래야 부족한 부분을 함께 평가하면서 고쳐나갈 수 있거든.” 이 조합원이 패원들을 타이르듯 말했다. “항상 완벽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자꾸 부딪쳐 봐야 실력이 느는 거죠. 우리 비정규직 투쟁도 마찬가지잖아요. 싸우다 깨지기도 하면서 전진해왔잖습니까.”

하지만 패원들에 대한 불만보다는 역시 고마움이 크다. “사내하청 신분에 쉽지 않은 게 많지만, 그래도 다들 동아리 때문에 출근할 맛이 난다며 열심입니다.” 이 조합원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정적으로 활동한다며 패원들을 자랑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 지 물었다. “솔직히 사내하청 비정규직 입장에서 문화패 활동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안정적인 연습 공간도 없고, 시간을 쪼개기도 쉽지 않죠. 공연이라도 하려면 잔업을 빼야하는데 잔업수당도 문제지만 아무래도 정규직에 비해 회사 눈치도 많이 봐야하고요.” 이 조합원의 설명이다.

현재 이들의 연습 장소는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문화관. 전주위원회와 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밴드 동아리에 양해를 구해 일주일에 두 번 빌려 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배려가 고맙고, 누가 특별히 눈치를 주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셋방살이 신세다보니 맘 편히 사용하지는 못한다.

또한 지회 재정여건 상 동아리 활동에 대한 지원이 힘들다보니 다들 자기 돈으로 악기를 마련해야 했다. 마이크나 앰프 등 음향장비 구매는 아직 꿈도 꾸지 못하고 실정. 강습료를 주고 강사를 모셔와 실력을 키우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이 역시 같은 이유로 쉽지 않다.

▲ 22일 연습실에서 만난 현대차전주비정규직지회 밴드 동아리 회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상민
어려운 여건이지만 동아리 활동에 대한 기대는 크다. 김형우 조합원은 “아직 연습이 부족해서 그렇지 실력들이 좋다”며 “올해엔 이용석 가요제에 창작곡을 들고 출전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용석 가요제는 2003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집회 도중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한 이용석 열사를 기리기 위해 매년 11월경에 열리는 행사다.

“날이 좀 풀리면 사내에서 선전전 곁들인 공연도 하고, 패원들도 더 모집해야죠. 베이스기타랑 하모니카, 타악기 파트도 구성해야하고요. 투쟁 잘 해서 지회 힘이 세지면, 안정적인 연습공간이랑 음향장비도 마련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희천 패장도 동아리가 발전할 거란 기대에 차있다.

그나저나 최근 이들 모두는 밴드 이름을 바꿀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기대도 키우고 있다. 만든 지 2달밖에 안됐는데 이름을 왜 바꾸냐고? 이들의 동아리 이름은 ‘하청 종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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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종지부>의 실력은?

패장인 이희천 조합원은 기타실력과 더불어 작사 작곡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다. 비틀즈의 팝송까지 민중가요로 만들 수 있는 실력이다. 보컬을 맡은 김태윤 선전부장은 3단 고음을 소화해 낼 수 있다. 김형우 조합원은 기타 실력도 좋지만 구수한 목소리가 일품이다. 이동근, 김경문 조합원도 어디 내 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파 기타리스트다. 여기까진 이희천, 김형우 조합원이 한 말이다. 못 믿겠다고? “이용석 가요제 때 우리 나올 테니 지켜보세요. 실력 확실하게 보여줄 테니까.” 김 조합원의 자신감이 만만찮다. 과장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관심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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