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은 각종 묘목으로 유명한 곳이다. 묘목을 가꾸고 포도 농사를 짓는 한적한 옥천에서 금속노조 지회를 꾸리고 지역의 유일한 ‘금속노조’로 자리 잡았다고 알려진 곳이 있다. 조합원 수 92명의 코스모링크지회(지회장 이석빈)가 그 주인공. 이석빈 지회장을 만나 지회설립 얘기부터 들었다.

코스모링크는 전력선 및 통신케이블을 생산하는 삼성그룹 계열사였다. 1994년 경기도 화성에서 이전해 오면서 직원 수 4백 여 명의 기업으로 옥천군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 됐다. 하지만 1998년 경제위기 때 삼성그룹에서 분리되면서 경영진은 삼성 출신 낙하산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회사 발전에 관심 없는 경영진의 무모한 투자와 경영실패가 이어졌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가 져야 했다. 야간 근무자를 새벽에 불러내 “너 나오지마” 하면 그걸로 해고였다. 매년 정리해고가 이어져 인원이 줄자 그 이후로는“부모가 죽지 않는 이상 회사에 나오라”며 ‘뺑뺑이’를 돌렸다.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은 2008년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2008년 금속노조 가입

“지회를 설립하자 회사는 노조파괴 전문 회사와 계약하고 용역깡패부터 불러들였어요. 20명에서 시작한 용역깡패는 지회가 직장폐쇄에 맞서 복지관 점거농성에 나서자 200명으로 늘어났죠.” 4년 전을 회상하던 이 지회장의 무뚝뚝한 얼굴에 분노의 빛이 보인다.

“농성 3일째 새벽,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사람들과 잠들어 있는데 그 큰 건물 강화유리창을 박살내며 구사대와 용역 깡패들이 들이닥치데요. 시너를 뿌리고 각목을 휘둘러 대니 좁은 공간에 몰릴 수밖에 없었죠.” 새벽 2시에 시작한 공격은 세시간여동안 이어졌다. 놀라 움츠러들었던 조합원들은 밖에 나가 한판 붙자고 부르짖었다. 분노한 조합원들이 일거에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가자 그 기세를 못 당한 용역들이 도망갔다.

▲ “나중에 들었는데 회사는 용역을 투입하면서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데요. 하지만 금속노조는 한번 싸우면 끝을 보잖아요. 우리는 ‘뭘 끝내. 금속노조가 우릴 포기하지 않는데’라고 오히려 큰소리쳤죠”라며 이석빈 지회장 목소리가 커졌다. 신동준
“나중에 들었는데 회사는 용역을 투입하면서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데요. 하지만 금속노조는 한번 싸우면 끝을 보잖아요. 우리는 ‘뭘 끝내. 금속노조가 우릴 포기하지 않는데’라고 오히려 큰소리쳤죠.” 당시를 회상하던 이 지회장 목소리가 커졌다.

이 지회장은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전 조합원이 낮에는 농번기 농사일을 돕고 밤에는 택배회사 알바도 하며 3개월을 버텼다”며 당시 고통을 회상했다. “매일같이 토론을 하며 파업투쟁 의견을 수렴했어요. 근데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때 갖게 됐어요. 소수의 회사 쪽 사람을 제외하고는 단 한명의 열외도 없이 농성에 결합하면서 오히려 조직력이 강해졌거든요.” 이 지회장은 이내 자랑을 늘어놨다.

“금속노조는 우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회가 생산을 멈추자 회사 쪽 타격이 커졌다. 더구나 회사 예상과 달리 파업이탈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회장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민주노총은 안 된다”며 노조탄압에 골몰했지만 결국 노조파괴 전문 회사와의 계약을 끊고 금속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3개월 만이었다.

▲ 이석빈 지회장은“현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절대 혼자대응 안 해요. 집단으로 토론해 대응하기 때문에 지침을 내리면 일사천리죠. 조합원들도 ‘우리가 이렇게 뭉치니 회사가 함부로 못하는구나’라고 말해요. 지금은 관리직 어느 누구도 조합원에게 함부로 못하죠. 소통을 통해 현장이 조직되고 서로 단결하다보니 자연스레 현장권력이란 게 생긴 셈이에요”라고 조직력 강화의 핵심인 소통을 강조했다. 이 지회장이 김형석 노조 선전부장에게 공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동준
그 뒤 새로 들어선 사장도 노조와 대립대신 대화를 택했다. “신임 사장이 들어서자 상황이 변했어요. 사장은 수시로 조합원의 행동을 관리자에게 고자질하며 갈등을 일으키던 직원들한테 오히려 이제 그만 좀 일러바치라며 나무라데요.” 이 지회장은 노조를 대하는 회사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2009년 채권단은 경제위기를 핑계로 조합원 3명 정리해고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에 지회는 이 때도 1주일 전면파업으로 맞섰다. “전 조합원이 한명도 빠짐없이 참여했어요. 한명이라도 해고하면 다 같이 싸운다는 분위기였죠. 결국 회사는 궁리 끝에 문제를 일으키던 노무팀장을 비롯한 구사대 간부들과 ‘고자질쟁이’들을 정리해고 시켰어요.” 이 지회장의 설명이다.

이 회사에서 난 이익을 엉뚱한 계열사에 투자하다 큰 손해를 입힌 이전 경영진들. 이들은 그 손해가 노조 파업 때문이라며 노조에게 뒤집어씌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와 달리 신임 사장은 경영정상화에 힘을 쏟으며 노조와의 관계를 개선하자 회사의 경영 상태는 급속히 호전됐다. 2011년엔 예전 수준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회복했다.

3명 해고에 전조합원 1주일 파업

코스모링크 지회는 최근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회는 최근 매주 수요일 주야 교대시간에 전 조합원이 구역모임을 진행한다. 1주일간 일어난 일을 토론해 요구사항을 대의원이 수렴하면서 서로 간의 차이와 구역별 특성을 존중하는 조직 문화도 생겼다. 대의원들은 매주 한 시간가량 모임을 갖는다. 이러다 보니 지회 간부 수련회를 하면 조합원들이 고생한다며 먹을 것을 들고 찾아오기도 한다.

지회에서 진행하는 모든 회의 결과는 현장 곳곳에 붙여 공개한다. 인터뷰 때문에 현장을 방문한 날에도 조합원이 모이는 현장 곳곳에는 지회의 공지문과 노조신문을 스크랩한 게시물이 보였다. 지회 간부의 노력이 엿보였다.

▲ 초대 지회장인 박경수 조합원도 “노조 운영원리는 조합원의 힘 아닙니까. 2008년 파업 때 집에 쌀이 떨어져 괴로워하던 조합원도 있었지만, 노조의 필요성을 전체가 인식하고 공유했기 때문에 단결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소개하며 “민주노조의 상징성은 소통이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고여 있지 않고 흘러야죠”라고 힘겨운 지회설립투쟁 이후 지회장직을 물러난 이유를 설명했다. 신동준
“현장조직력은 관리자와 노상 싸워 생기는 게 아니라 지회가 조합원과 얼마나 소통하고 대화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현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절대 혼자대응 안 해요. 집단으로 토론해 대응하기 때문에 지침을 내리면 일사천리죠. 조합원들도 ‘우리가 이렇게 뭉치니 회사가 함부로 못하는구나’라고 말해요. 지금은 관리직 어느 누구도 조합원에게 함부로 못하죠. 소통을 통해 현장이 조직되고 서로 단결하다보니 자연스레 현장권력이란 게 생긴 셈이에요.” 이 지회장은 노조운동의 핵심으로 ‘소통’을 강조한다.

“조직력은 싸움만으로 생기는 게 아니야”

“노조 운영원리는 조합원의 힘 아닙니까. 2008년 파업 때 집에 쌀이 떨어져 괴로워하던 조합원도 있었지만, 노조의 필요성을 전체가 인식하고 공유했기 때문에 단결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노조의 상징성은 소통이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고여 있지 않고 흘러야죠.” 지회 설립 당시 초대 지회장이었던 박경수 조합원이 옆에서 거든다.

코스모링크지회는 노조의 일상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지회는 봄이면 전 조합원 가족이 체육대회를 한다. 가을이면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도 간다. “이런 게 소중한 것 같아요. 노조라고 돈만 많이 갖다 주는 게 아니라 조합원의 삶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 지회장이 강조한다.

지역사회에서의 지회 역할도 소개됐다. 지회는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모금을 해 인근 초등학교에 결식아동 급식비도 지원한다. 지역 진보단체와의 교류에도 열심히라는게 이 지회장의 설명이다. 이 지회장은, 경영실패로 물러난 옛 회장이 회사에 노조가 생겼다며 지역에 손을 벌리자 “너네가 지역에서 한 게 뭐 있냐”라며 외면당했다는 일화도 들었다. “이제는 노조가 중심이 되어 회사 이미지를 올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지역 주민들이 채용계획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연락이 오기도 할 정도에요.” 이 지회장의 말이다.

금속노조에 바라는 것을 물었다. “금속노조는 노동자를 위해 꼭 필요한 산업노조잖아요. 아무리 서로 생각이 틀려도 금속노조 한 깃발 아래서 토론했으면 좋겠어요. 나누고 가르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이 지회장은 조심스레 이렇게 말했다. 이곳 옥천에서 싹을 틔우고 자란 묘목이 전국으로 보급돼 뿌리를 내리듯 싱싱하고 건강한 코스모링크지회 기풍이 전국으로 퍼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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