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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복직꿈 묵힌 고추장 한 통[여성노동자 열전-6] 콜텍지회 세 여성 조합원
강정주 편집부장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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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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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밖을 보면 딴 생각을 해서 안 된다.” 그래서 창문 하나 없던 공장.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기타에 노동자들의 설움이 가득했던 곳. 2007년 한마디 통보도 없이 공장 안 돌리겠다고 문 닫아 버린 사장 때문에 아직도 빈 공장을 지키는 노동자들.

대전충북지부 콜텍지회 여성조합원들을 만나러 간 3월 13일. 이들의 터전은 공장이 아니라 시골 한적한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3년 전부터 시작한 고추장, 된장, 장아찌 등 장류 사업 ‘산들바람’을 시작했기 때문. 기타 만들던 손으로 이제 고추를 심고, 장을 담그는 최정진, 문희, 김정심 조합원을 세 명을 만났다.

   
▲ 최정진 조합원과 문희 조합원이 장독대에서 된장을 포장 전 중간용기에 담고 있다. 작업장으로 옮긴 된장을 포장용기에 담아 밀봉 처리해 발송한다. 신동준
“우리가 장 담그는 법을 알게 될 줄 알았나 어디. 예전에야 다 마트에서 사다 먹었지.” 2009년 장기간 투쟁이 계속되면서 조합원들 생계와 투쟁기금, 그리고 조합원들이 모일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이 사업이었다. 세 조합원은 그때부터 지금껏 산들바람 사업을 도맡아 오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 손끝에서 나는 장맛이 보통이 아니다.

기타 만들던 손으로 담그는 고추장

최 조합원은 “좋은 재료로만 만들다보니 가격도 만만치 않고 판매도 아직 잘 안되서 조합원들 생계 꾸리기는 힘들다”면서도 “그래도 우리가 같이 모여 있고 뭔가 할 일이 있다는게 좋다”고 말한다. 최 조합원이 오랜 투쟁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몸보다도 마음의 상처였다. ‘언제나 끝날까,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늘 불안하고 걱정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이 사업을 시작하고 자연을 벗 삼아 지내면서 마음의 치유도 많이 됐다.

이 일도 힘든거야 말도 못한다. “남들이 보면 전원생활 한다고 좋은 줄 알지만 밭일이 해야하는 것도 많고 조합원들 생계가 걸린 문제다보니 아유 힘들어요.” 문 조합원 말처럼 장 담그는 것만 처음이 아니라 밭일도 처음 해봤다. 고추도 직접 키우고 깻잎 장아찌 담글 깨도 심는다. 날씨에도 예민해지고, 비가 많이 와서 한 해 농사 지은 것 수확 못할 때는 속도 상한다. 농사꾼 다 됐다.

이들이 밭일을 하고 장을 담가 파는 이유는 단 하나다. 억울하게 공장 밖으로 쫓겨났지만 멈춘 공장 문을 다시 열고 당당히 돌아가기 위해서다. 기타를 만들 때는 수작업으로 섬세하게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공장에도 40대 여성들이 많다. 공장 다니던 때를 생각하면 힘들었던 기억뿐이다.

   
▲ “공장 다니기 전에는 기타 브랜드가 뭔지, 뭐가 유명한건지 하나도 몰랐죠. 그런데 다니다보니까 콜트 기타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더라구요. 명품 기타 만든다는 자부심이 얼마나 컸는지 몰라요.” 문희 조합원. 신동준
문 조합원은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일만 했죠. 매일 야근이니 친구들 모임 갈 시간도 없고 매일같이 별보고 출근해서 별보고 퇴근했었죠”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일이 많을 때는 정해진 출근시간 보다 한 시간 일찍 나가 무급으로 일하기도 했다. 유기용제 등 화학물질을 다루다보니 목이며 병드는 곳이 늘어가고 나무 먼지가 너무 날려 한동안은 눈이 시려 고생도 했다. 최 조합원도 “처음에는 진동 기계로 나무를 하루종일 다듬었는데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손가락이 굽혀지질 않더라니까요”라며 힘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지역에는 특히 여자들이 일할 곳이 마땅치 않아요. 아무리 일이 힘들고 월급 적어도 일할 곳 있고 제때 월급 나오는 것으로도 행복하다 생각했었죠.” 아이들 키우며 한참 돈 들어갈 일 많고 집안 생계도 생계다보니 열악한 환경이라도 이들에게는 소중한 일터였다. “공장 다니기 전에는 기타 브랜드가 뭔지, 뭐가 유명한건지 하나도 몰랐죠. 그런데 다니다보니까 콜트 기타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더라구요. 명품 기타 만든다는 자부심이 얼마나 컸는지 몰라요.” 문 조합원은 TV로 음악회를 보다가도 기타 브랜드를 찾게 되고 콜트 기타를 발견하면 아이들에게 엄마가 만든 기타라고 자랑도 했다고 덧붙인다.

“자부심으로 견딘 세월”

요즘 들어 콜트 기타가 예전만큼 많이 안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는 이들. “사장이 저러니 기타가 잘 팔릴 리가 있나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니 여전히 콜트 기타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최 조합원은 “우리 싸움하는데 뮤지션들이 참 많이 도와줬어요. 다시 공장 문 열면 우리 손으로 좋은 기타 만들어서 그 분들이 연주하는 모습 봤으면 좋겠어요”라고 소망을 말한다.

   
▲ 최정진 조합원이 오랜 투쟁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몸보다도 마음의 상처였다. ‘언제나 끝날까,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늘 불안하고 걱정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장류 사업을 시작하고 자연을 벗 삼아 지내면서 마음의 치유도 많이 됐다. 신동준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싸워 온 것이 어느새 5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두세 달만 열심히 싸우면 다 해결될 줄 알았어요. 살림하고 애 키우고 일하러 다니는 아줌마들이 노조며 투쟁이며 뭐 알았겠어요. 1~2년씩 투쟁한 사람들이 와서 얘기해 줄 때도 그냥 저 사람들 무용담이려니 했지 우리가 그렇게 될 줄 알았나.” 하루아침에 공장 밖으로 쫓겨난 것이 억울해 시작한 투쟁이었고 정말 열심히 싸웠다고 말한다.

밤새 잠도 자지 않고 대전부터 서울 본사까지 쫓아다니고,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며칠씩 농성도 했다. 최 조합원은 “유치장에서 이틀씩 자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면서 웃는다. “40대 주부들이 아직 애들도 어려서 다 봐줘야 하는데 3일씩 집 비우고 나와있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집에서도 그만두라고 해서 갈등도 많았고.” 김정심 조합원은 행여나 자신 때문에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자식들 앞 길 막는건 아닌지 미안하고 걱정된다는 마음도 내비쳤다.

“올해 농사 다시 시작한다”

2월 23일, 이들이 그렇게도 기다렸던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판결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고 날짜가 잡혔다는 연락 받고서도 어찌나 심장이 두근두근 했는지 몰라요.” 최 조합원은 당시 심정을 설명했다. 질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않았다. 문 조합원은 “이번 판결 나오고 공장 돌아가게 되면 올해는 농사 안지어도 되겠다 생각했었죠”라며 가족들도 모두 기대에 차서 판결 시간이 되기도 전에 결과를 묻는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고등법원의 해고무효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다시 올해 농사를 짓기로 했다. 날씨가 풀리면서 밭을 갈고 고추와 깨 심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쉽긴 하지만 끝은 아니잖아요.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포기해요. 공장 문 여는 건 꼭 봐야겠어요.” 세 조합원은 얘기를 나눈 뒤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에서 주문한 된장을 보내기 위해 통 가득 정성스레 담았다. 행여 배송 중에 사고라도 생길까 포장도 열심이다. 이들이 만든 장에는 5년간 잘 묵힌 복직에 대한 염원과 노동자의 뚝심이 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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