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을 맞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객관성 조항을 앞세워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출연시킨 방송, 특히 시사를 주로 다루는 지상파 라디오 방송에 대해 잇달아 중징계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명진 스님(CBS-AM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과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김용민씨(SBS-AM <김소원의 SBS전망대>)를 출연시킨 라디오 프로그램들에 이어 최근엔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 진행자들이 출연한 CBS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에 대해 ‘주의’ 결정을 내렸다. ‘주의’는 방송 재허가 심사에서 감점 요인이 되는 법정 제재다.

<김미화의 여러분>에 중징계를 밀어붙인 쪽은 방통심의위원의 3분의 2를 점하고 있는 여당 추천 위원들로, 이들은 해당 방송에 출연한 <나는 꼽사리다> 진행자들이 소값 하락 사태와 정부의 물가·부동산 정책, 한미 FTA 등에 대해 일방적인 비판을 쏟아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물론 야당 측 위원들조차 ‘표적 심의’라며 반발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성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면 정부 비판 여론에 의도적으로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미화의 여러분>은 사회 현안에 대해 이해당사자들과 전문가 등으로부터 각각의 입장(해설)을 충분히 듣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다. 중간 중간 진행자가 반대 견해들을 토대로 질문을 하지만, 그 역시 출연자 입장에선 반론에 대한 반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인터뷰 형식의 프로그램에 대해 왜 일방의 주장만 방송하냐고 문제 삼는 것은 사실상 출연자에 대한 검열로 해석될 수 있다. 방송 편성·제작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방송법, 나아가 언론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위배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 <김미화의 여러분>에 중징계를 밀어붙인 쪽은 방통심의위원의 3분의 2를 점하고 있는 여당 추천 위원들로, 이들은 해당 방송에 출연한 <나는 꼽사리다> 진행자들이 소값 하락 사태와 정부의 물가·부동산 정책, 한미 FTA 등에 대해 일방적인 비판을 쏟아냈다고 주장했다. 사진= <MBC>제공

<김미화의 여러분>은 정부 비판 출연자만을 부르지도 않았다. <나는 꼽사리다> 진행자들 이전,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소값 하락 사태)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자동차협회 관계자 (이상 한미 FTA) 등을 초청해 정부 정책에 우호적인 입장 또한 충분히 들은 것이다.

더구나 <김미화의 여러분>에 대한 심의는 방통심의위 내부 모니터링에 의해 결정됐다. 그간 방통심의위의 정부 비판과 관련한 공정성 심의가 100% 민원에 의해 진행됐던 것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일이다. 농림부 장관과 <나는 꼽사리다> 진행자들 모두 소값 하락 사태에 대해 일방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나는 꼽사리다> 진행자들의 출연분에 대해서만 모니터링과 심의가 이뤄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방통심의위의 공정성 심의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방통심의위는 일제고사를 거부해 해임처분을 받았다가 복직한 교사들을 인터뷰한 MBC라디오 <박혜진이 만난 사람>과 유성기업 노조 파업을 다룬 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홍기빈입니다>, KBS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등에 대해 제재를 한 바 있다. 모두 일방의 입장만을 전달해 공정성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일련의 공정성 심의들엔 공통점이 있다. 정부 등 권력이 불편해할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직 방통심의위원인 박경신 고려대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지적한 것처럼 방송을 다른 매체처럼 시장에 맡겨 두지 않고 공적 통제를 하는 것은 시장에서의 힘의 불균형이 그대로 방송에 반영될 경우 도리어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되기 때문이다. 친(親)정부 성향의 방송사 수장들이 보도의 기계적 균형을 강조함으로써 공정성의 진정한 의미를 되레 퇴색시키고 있는 작금의 현실처럼 말이다.

현재 MBC·KBS·YTN 등의 언론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회사인 방송사들이 불공정 편파 방송을 하고 있다고 고백하며 유례없는 연쇄 파업을 벌이고 있다. 정치·경제 권력이 불편해 할 내용들을 ‘감시견’을 자처하는 방송들이 스스로 걸러내고 있다며 ‘부끄러운 현실’을 털어 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성 심의에 열심인 방통심의위는 공정성을 상실한 방송에 대한 언론인들의 아픈 자기 고백에 지금까지도 아무런 반응을 않고 있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방송 공정성에 대한 심의에 앞서 방통심의위 스스로 이에 대한 답을 내릴 때다.

김세옥 / <PD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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