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사내하청노동자 대법원 승소 소식에 우리는 모두 환호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판결 이후 바로 기자회견을 진행해 현대자동차의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은 적법한 도급이 아닌, 파견이므로 직접생산공정에 파견노동자를 투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파견법에 의해 위법”이라는 것이 이번 대법 판결의 요지다.

이로써 실제 원청의 지배구조에 있고,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진행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물론 현대자본은 이러저러한 잔꾀를 부리며 정규직화를 최소화하거나 나머지 위법사항을 요리조리 피해가려 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투쟁은 한껏 힘이 실리고 자신감이 붙었다. 해볼만한 싸움이다.

그런데 2월 23일 판결 이후 덩달아 바빠진 집단이 있다. 바로 검찰과 노동부다. 대법 판결 나흘 뒤인 2월 27일, 수원지검 평택지청(지청장 유상범)은 경기 충청 일대에서 사내하도급으로 위장해 노동자를 불법파견한 31개의 무허가 파견근로업체를 적발했다. 파견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직접 생산공정에 노동자들을 파견하면서 마치 이들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자신들에게 있는 것처럼 사내하도급으로 꾸며 운영해왔다는 것. 하지만 아직 멀었다. 10년 전부터 시작된 근로자파견은 그간 파견법을 피해가기 위해 각종 간접고용의 적법한 형태로 위장변형되어 왔고, 현재 3백인 이상 기업의 사내하청 비율은 54%를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해볼만한 싸움이다

하지만 훨씬 심각한 것은 300인 이하, 특히 전기전자업종과 조선업종 실태다. 일례로 영풍그룹 계열사 현황만 봐도 알 수 있다. 삼성에 80% 이상을 납품하고 있는 영풍그룹 내 다섯 개 반도체 공장 생산라인은 전체가 하도급, 즉 사내하청으로 이뤄져있다. 지난 2월 15일 토론회에서 계열사 일부 현황을 공개했듯 이들 사내하청은 실질적으로 자본이나 영업이 독립적이지 않고, 노동자들은 직접적으로 모회사에 작업지시, 근태관리를 받고 있다. 명백한 위장하도급, 불법파견인 것이다.

▲ 영풍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시그네틱스 노동자 직접고용 촉구를 위한 금속노조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동준
그러나 이를 시정할 방법이 없다. 지난해 9월 금속노조는 국정감사를 통해 노동부에 영풍그룹에서 진행되고 있는 불법하도급 실태를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부 조사는 형식에 그쳤고 결과는 모두 적법 하도급으로 나왔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꼈다.

법으로 다퉈 승리하지 않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엄두를 낼 수가 없는, 투쟁하지 않으면 그 실상을 외부로 알려내지 조차 못하는 중소사업장의 무수한 사내하청 노동자들. 공장 전체가 사내하도급으로 이루어져 비교할 정규직이 없어 그저 체념하며 살아가는 대다수 중소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노조 내 조직률이 2%에도 미치지 못해 실태조차 정확하게 파악되지 못하고 있는 저임금, 산업안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어떻게 환기시킬 수 있을까.

나는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근간이 되는 사업으로 금속노조가 이들에 대한 조직화 사업을 전면에 배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금속노조는 지금까지 지역의 활동가집단이나 지역지회, 일반노조에게 맡겨두었던 중소영세, 비정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사업에 예산과 사람을 배치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8년을 투쟁한 최병승씨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전국에 있는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었다면 이를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희망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은 금속노조의 몫이다.

중소영세사업장 문제를 어찌할까

판결의 한계는 명확하다. 법원 판결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투쟁이 있어야 한다.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단 하나도 거저주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투쟁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그 실탄이 바로 조직된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가장 근간의 사업은 조직화사업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지역으로, 업종별로 조직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이후 산업 내 노동유연화 정책에 가장 앞서 총알받이가 됐던, 그래서 이제는 만신창이가 됐지만 아무도 주목하고 있지 않은 산업역군, 조선-전기전자업종 2, 3차 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

얼마 전 시그네틱스 투쟁에 대한 글을 쓰다가 “두 번 해고된 그녀들이 다시 승리하고 현장에 돌아간다고 한들 다시 해고되지 않을 보장이 없다”는 표현을 했다.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없는 한 구미의 KEC, 부산의 풍산마이크로텍 모두 시그네틱스, 영풍그룹의 10년 투쟁, 2번 해고의 전철을 밟지 않을 법이 없다. 반복해서 당하지 않으려면 더 크게 대항해야 한다.

3월부터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이 한국비정규센터와 함께 ‘금속산업 고용구조 변화와 비정규직 조직화 촉진을 위한 정책 연구’를 진행한다. 또한 금속노조는 2012년 미조직비정규사업으로 조선업종과 전기전자업종 조직화에 대한 사업계획을 내놓았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이번 조사사업이 연구논문을 내놓는 것에 그치지 않기를, 조선전자업종 조직화 사업이 2년이라는 노조의 회기 중 사업으로 국한되지 않기를 바란다.

엄미야 /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수석부지회장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