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철수와의 첫 만남에서 뚱한 표정으로 비딱하게 다리를 흔들며 앉아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오래지 않아 점심시간에 몰래 PC방에 나갔다가 눌러앉아 오후 수업을 빼먹거나 지각하거나 수업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저를 당황케 했습니다.

급식시간에 고기반찬을 더 달라고 합니다. “그래, 고기 좋아하는구나? 더 먹고 싶구나”(익숙한 반응 : 야, 너만 입이냐?) “근데 어쩌니? 나도 더 주고 싶지만 양이 정해져 있어서 친구들 주고 남으면 제일 처음 부를게”(익숙한 반응 : 야, 참아. 안 돼! 너만 생각하냐?) “에이 씨 영철이는 더 많잖아요, 저만 만날 차별해요” “영철이보다 네가 더 적은 것 같아?”(익숙한 반응 : 뭐라고? 밥 먹지마, 자꾸 귀찮게 할래) “미안. 내가 똑같이 나누는 게 힘들어. 남으면 널 제일 처음 부를게”(익숙한 반응 : 너 계속 이럴래, 안 돼. 자꾸 같은 말 시키지 말고 들어가).

몇년전 철수이야기

교실로 들어가긴 하지만 영 못마땅한 모습입니다. 더 먹고 싶은 사람 나오라 해서 남은 고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 약속 잘 지키지” “먹고 싶은데 더 안 줘서 섭섭했지”(익숙한 반응 : 다음부턴 그러지마 내가 알아서 줄게). 이것이 제가 관계를 깨지 않고 마음을 열수 있게 아이들을 낯설게 야단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아이들도 서서히 제 욕구에 관심도 갖고 때론 자기들 마음엔 안 들어도 들어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이 아파 수업 중에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면 아이들이 조심합니다. 고맙게도. 다음날도 조르고 그 다음날도 조르더니 일주일쯤 후엔 “제가 일빠에요” “당근이지”. 이 주일 쯤 후엔 차라리 나중에 밥을 먹는 게 고기 양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곤 나중에 받습니다. 심심한지 배식도 도와주면 “고마워, 너 땜에 배식하는 친구들이 편했어”.

▲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배식하고 있다. <교육희망>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각은 왜 하며, 아침밥을 굶는다는 거며, 무단 결과하고 어디 가는지, 왜 못 들어오는지,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드디어 3월 4째 주쯤 되자 관계가 조금 맺어졌습니다. 고기를 더 달란 것은 배고픈 이유도 있었습니다. 내가 너만 입이야 이런 식으로 몰아붙였으면 어찌 되었을까요? 모든 행동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큰소리로 야단맞던 아이들은 큰소리가 나야 편안하고 익숙한가 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왜 이렇게 설명이 길어요.” “그냥 야단치세요” 오히려 큰소리칩니다. 때론 “좀 무섭게 하세요, 저런 아이는 야단 좀 치세요, 그래야 잘못을 안 하지요” 합니다. 그럴 때 “무엇이 잘못인지 알고 내 걱정 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만날 야단맞았을 텐데도 저러잖아, 그러니 어쩌니?”하면 아이들이 어이없어 합니다.

모든 행돈엔 이유 있습니다

저의 야단은 지금 그 아이 행동과 말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생각하고 도와주고 변화를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무조건 비난하고 야단치는 것보다 훨씬 더 아이가 자신의 행동이나 말에서 변화 성장하는 기쁨을 봅니다.

철수의 경우는 제가 볼 때 욕구를 참고 기다릴 줄 알고 다른 사람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울 기회와 그동안 어른들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통해서라고 그런 관계를 새로이 맺어볼 기회를 제 나름대로 서툴지만 시도(?)해 본 것입니다.

아침에 늦게 오면서도 복도 끝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면 “철수야, 수업 종쳤어, 시속 백키로로 달려봐"(익숙한 반응 : 야 빨리 못 뛰어. 너 지금 몇 신데 그렇게 어슬렁이야). 사실(수업 종 울린 것)만 이야기 하고 고쳤으면 하는 행동(걷는 것)을 할 때 비난하기 보다는 대안(달리기)을 주고 무엇이 바람직한지 스스로 알게 하기 위해 달리면 “그래 늦었을 때는 그렇게 하자”(익숙한 반응 : 너 또 늦으면 청소야. 부모님 오시라 해) 또는 “그래도 3분밖에 안 늦어서 다행이야” “내일은 8시 10분에 출발하는 것보단 8시에 출발해보자” 격려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한 두 달 후에 그 아이에게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부하라는 부모님과 음악을 하고 싶은 아이의 갈등이 그만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 후 이야기는 지금 그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그 다음해 스승의 날에 글쓰기를 싫어하던 아이가 편지를 보내 저를 감격시켰습니다.

마음의 문 연 철수

어른들도 아이들도 얼굴 붉히고 큰소리치고 비난의 말이 오가는 야단에 익숙합니다. 컵을 깼을 때 어른들의 반응을 볼까요? 상담에서 우스개로 하는 말이 내 자녀를 이웃집 아이로 대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집 아이가 컵을 깨면 ‘다친데 없냐?’는 말부터 나가는 것에 비해 우리집 아이한테는 ‘얘가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냐, 이게 얼마짜린 줄 아느냐, 엄마가 쉴 틈을 안 주는구나’라며 아이가 컵을 깨고 지금 무척 놀라고 당황했을 거라는 마음은 전혀 읽어주지 못합니다. 물론 위험하기 때문에 조심하도록 야단칠 때 과장되게 말씀을 하실 겁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부모의 마음을 알까요? 내가 다친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삐칩니다. 자기 욕구(감정)가 부정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아이는 자기가 소중한 사람이 아니란 느낌으로 좌절과 두려움을 갖게 될거라 생각됩니다.

▲ 한 선생님과 학생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대화나누기를 하고 있다. <교육희망>
그러므로 아이들을 야단칠 때는 우선 아이들은 하찮은 사건(실수)을 통해 많은 가치있는 일을 배울 수도 있으므로 하찮은 일(실수)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여 컵을 깬 것이 만약 하찮은 실수라고 생각되면 아이의 당황한 마음을 “놀랐지”읽어주시고 가볍게 여깁니다.

다음으로 마음속에 반항심과 분노와 미움이 생기고 아이에게 잘못된 자아상을 갖게 할 수 있는 ‘그깟 컵 하난 제대로 못 드니? 너 바보 아니니? 정말 멍청해’ 등 거친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절제합니다. 셋째로 잘못된 행동에만 한정해 지적하고 대안을 만듭니다. “유리컵은 잘 깨지니까(플라스틱컵을 내주며) 다음부턴 이 컵을 쓰면 어떨까?” “빵 먹던 손(물 묻은 손 등)은 미끄러지기 쉬우니 손을 씻거나 아니면 두 손을 이렇게 쥐면 더 안전할 거야”, 아니면 컵이 깨지면 위험하니 발을 움직일 때 조심하라거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줄 기회로 삼는다면, 아이들은 혼날 줄 알았는데 엄마 아빠의 따스한 말에 울음으로 놀란 마음을 시원히 풀어내고 스스로 미안하고 부모님의 말에 더 귀기울일 것입니다.

익숙한 야단치기

주의할 것은 실제로 부모가 화를 낼인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참으면 아이는 부모가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는 컵을 깨고 놀라서 당황하는데도 “걱정마, 저리가, 됐어, 괜찮아” 말과 얼굴 표정과 행동이 다르게 되면 얼굴의 비언어적 메시지를 통해 부모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 화나면 화난다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컵이 깨져 네가 다칠까 봐 불안하고 속상해”

성적이 떨어진 아이에게 “공부하라 할 때 그렇게 말 안 듣고 놀더니 당연하지, 머리가 모자라면 열심히 해야지” 에서 “에구 많이 속상하지, 어떤 문제가 그렇게 어려웠니”로 시작해 자존감을 해치지 않으면서 문제 해결을 해보는 겁니다.

잘못을 한 아이에게 어떻게 마음부터 읽어줄 수 있냐고 하실 수 있겠지만 잘못을 한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어줘야 부모의 말에 경청할 마음이 열리거든요. 아이들 마음을 읽지 못하고 늘어놓는 걱정되는 마음이나 주의 사항은 그저 아이들에게 잔소리로만 들릴 뿐입니다. 잘못에 비해 과한 비난을 듣거나 인격을 비난받는 아이들은 자기에 대해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반응를 하지 못합니다. 무슨 일을 하려는 의욕도 없고 비난이 두려워 자신감과 생동감을 잃습니다. 이제부터 익숙한 야단치기에서 낯설게 야단치는 방법을 조금씩 사용해보세요.

이명남 / 서울 영서중학교 교사

* 필자 이명남 선생은 26년째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좌충우돌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중학교 교사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금속노조 조합원과 자녀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대화의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자녀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키우고, 동시에 부모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태도를 가르치는데 도움을 되길 기대한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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