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아들이 봄에 군대에 갑니다. 제 나이 마흔입니다. 결혼을 일찍 했거든요.” 가족에 대한 얘기를 묻자 쑥스럽게 웃는 박창훈 지회장. “우리 큰 아이는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아 고교에 이어 대학에서도 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박 지회장은 두 아들에게 틈나는 대로 스킨쉽을 시도하고 사회 돌아가는 얘기를 해주며 점수를 딴다고 한다. “사회에 발 딛는 나이가 되니 비정규직과 고용문제에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토론 많이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보통 아빠들처럼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 거짓말 하지마라. 노력하는 인간이 돼라” 등 좋은 말은 많이 해줬는데 정작 얼굴 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안타깝다는 박 지회장. “올해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집안에 좀 더 신경 쓰며 노조활동하는 건데…….” 말끝을 흐린다.

박창훈 지회장은 자신의 좌우명이 따로 있다고 한다. “단결과 실천입니다. 실천이 없으면 쟁취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회와 지부 활동 중 실천을 가장 중심에 두고 움직이다 보니 시간이 늘 부족합니다.” 4기까지 지회장으로 지회를 책임진 뒤 현장에서 일하던 박 지회장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자동차업계 물량이 줄고, 원청에서 부품도입선을 2원, 3원화 하는 위기를 목격했다. 지회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고 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는 무너져 갔다. 더 큰 위기는 지회활동가들이 현장의 위기를 평가하며 서로 상처 주고 지회에 등 돌리는 상황이었다. 박 지회장은 “가슴이 정말 아팠습니다. ‘이러다 노조 무너진다’는 생각이 들어 7기 지회장을 결단했습니다.”

노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현장상황에서 가장 시급하건 조합원과 소통이었다. 취임 즉시 선거구별, 조별 간담회를 시작하며 조합원들을 만났다. 조합원들의 말문이 틔우고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당선 뒤 지회대의원대회에서 현안에 대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 꽉 막혀 있던 무언가가 터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날 나온 의견들을 모아 현장 토론에 부쳤습니다. 조합원들이 토론을 통해 안건 내용을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 결론을 맺게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내린 결론은 곧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박 지회장은 취임 뒤 5개월 동안 이런 방식으로 현장과 지회체계를 다시 세우고, 현안을 하나하나 돌파하고 있다. “노조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제 조합원사이 화합과 단결을 위한 사업을 시작할 때입니다. 현장 단결력이 떨어지면 현장 조직력이 무너지고 그 노조는 무력화 됩니다.” 박 지회장은 전 조합원 개별 면담부터 시작한다. 전직 지회장들부터 만날 계획이다. 나아가 인천 TRW지회와 관계도 회복할 예정이다. 2004년 6월 박 지회장이 기업노조 위원장 시절 두 번 부결 끝에 울산과 인천이 동시에 금속노조로 전환했다고 한다. 한 식구인 셈이다.

▲ 박창훈 지회장은 올해 총선과 대선보다 금속노조는 15만 공동투쟁 성사가 더 중요하다면서 “15만 공동투쟁으로 희망의 불씨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불씨를 전국에 퍼뜨리고, 싸워 이기는 모습을 조합원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신동준
박창훈 지회장은 15만 공동투쟁에 대해 긴 시간 열띤 의견을 털어놓았다. “현재 노조에 대한 현장의 신뢰가 떨어진 상황이지만 조합원들은 기대 섞인 시선도 보내고 있습니다. 15만 공동투쟁 성사가 금속노조의 기풍을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박 지회장은 올해 총선과 대선보다 금속노조는 15만 공동투쟁 성사가 더 중요하다면서 “15만 공동투쟁으로 희망의 불씨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불씨를 전국에 퍼뜨리고, 싸워 이기는 모습을 조합원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이어 박 지회장은 4만 금속노조 시절, 울산지부가 단결해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각고의 노력 끝에 금속노조로 전환한 상황을 상기하며, “토론은 힘들었어도 결정하면 실천했습니다. 현재 기업지부와 중소지회 간의 불신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15만 공동투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아가 그 힘으로 기업지부를 해소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지회장은 노조가 시급히 실천할 사업에 대해 제안했다. 15만 공동투쟁을 위해 선전홍보도 강화해야하지만 교육원을 세워 간부, 나아가 전 조합원 의무교육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노동자의 건강한 의식을 만들고 이를 신념으로 무장시키려면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패배, 불신에 절어 있는 조합원들의 생각을 교육으로 걷어내야 합니다.” 특히 간부들이 달라져야 한다며 “지회는 지회장의 의지대로 따라옵니다. 간부들의 부정적인 시각은 바로 현장에 투영됩니다. 조합원들은 간부들이 마지못해 떨어진 지침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신뢰를 버립니다.” 박 지회장은 15만 공동투쟁이 제대로 진행되면 간부들부터 달라질 거라고 확신했다.

박창훈 지회장은 1993년부터 현장에서 일했다. 1999년 기업노조 위원장이 간부활동을 권유해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노동자 세계관에 눈 뜬 뒤로 세상이 달라 보여 지금까지 숨 막히게 활동해 왔다. 보물 1호를 묻는 질문에 노조활동하며 욕심이 없어졌다고 답하고, 취미도 별 것 없다고 말하고, 변변한 가족여행도 못 가봤다고 그러고.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 주변 활동가들이 인생 허무하니 취미라도 만들라고 권유를 자주 한다고. “저는 노조 활동에서 재미를 찾습니다. 일, 노사관계에 빈틈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자본에 뒤지지 않으려면 공부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지회 상집들에게 “박 지회장이랑 같이 일하려면 힘들지요”라고 물으니 빙긋이 웃을 뿐이다. 울산지부 활동과 울산지역 연대투쟁 현장에서 한국TRW지회와 박창훈 지회장을 보지 못한 사람은 울산 노동자가 아니다.

* [나는 지회장이다]는 일선 금속노조의 핵심 활동가이자 지휘자인 지회장들을 ‘인간적’으로 소개하는 연재꼭지입니다. 전국을 돌며 각 지회장들의 일상과 고민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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