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덩덩쿵따 덩기닥 쿵~따 덩따쿵따쿵 덩기닥 쿵~따’
일요일이었던 19일 오후 전남 목포 대불공단 공원 한 구석에 놓인 컨테이너 방 안이 장구와 북, 꽹과리 소리로 가득 찼다.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서남지역지회 풍물패 <서남풍> 회원들이 ‘풍류굿’을 연습하는 소리다.

“아~따 자꾸 새로운 걸 가르치면 지난번 배운 거시기 다 까묵는당께.”
“이정도면 잘 하고 있는 거요. 조금만 더 분발해 보쇼잉.”
가르치는 이는 욕심이 있지만, 한 달에 한번 모이다 보니 배웠던 가락이 가물가물하기 마련. 안정적인 일터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주 1회 동아리 모임이 어렵지 않지만 여기는 다르다. 풍물패 회원 대부분은 조선소 다단계하청 맨 밑바닥에 있는 일당제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족과 함께해야할 일요일에 굳이 시간을 쪼개 모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2월 19일 전남 서남지역지회 풍물패 <서남풍> 패원들이 컨테이너 실내에서 풍물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김상민
풍물패 상쇄를 맡고 있는 김환석 서남지역지회 사무장은 “최근 공단 내 일감이 줄어들어 동아리 활동이 더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일감이 줄면 시간이 더 많아질 텐데 왜일까? 여기에는 일당제 노동자들의 고충이 있다. 일감이 많으면 주중에만 일해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일감이 줄면 주말이라도 일을 찾아 조금이라도 일당을 더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같은 노동자들이 이정도 열정 가지고 풍물패 활동하기 쉽지 않을걸요.” 풍물패 회장인 진필순 합원은 쉽지 않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 열정 덕분에 풍물패 실력이 조금씩 꾸준히 늘고 있다고 자랑했다. 평소엔 월 1회 모이지만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땐 일손을 놓고 일주일에 2, 3일씩 연습하기도 한단다.

진 조합원은 “목포 대불공단뿐 아니라 광주전남지역 각종 집회와 행사에 공연 요청을 받고 있다”며 “우리 풍물패가 실력에 비해 지역에서도 제법 인기가 좋다”고 자랑을 덧붙였다. 공연 횟수는 1년에 약 다섯 번 정도. “불러주는 데 다 갈 수 있으면 좋은데 우리 처지가 워낙 힘들다보니 쉽지 않네요.” 진 조합원이 아쉬움을 토로한다. 풍물로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 왼쪽 북을 치고 있는 사람이 패장을 맡고 있는 전필순 조합원이다. 전 조합원은 <서남풍>이 지역에서 제법 인기가 좋다고 자랑한다. 김상민
서남지역지회 풍물패는 만들어진 지 2년밖에 안 돼 아직 ‘초보’ 수준인 이들이 많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떨리진 않을까? “그저 다 같이 신나게 놀면 되는 건디 뭐가 떨려? 내가 보기엔 풍물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신명이 핵심이랑께.” 김주재 조합원의 지론이다.

한시간반가량 실내에서 연습하다보니 썰렁했던 컨테이너가 후끈해졌다. 좁은 방 안에서 큰 소리를 내다보니 귀도 먹먹해진다. “좀 쌀쌀해도 밖에서 신명나게 한판 해 볼까나?” 누군가 제안에 주섬주섬 풍물을 챙겨 나온다. 길놀이 연습이 시작됐다. 온갖 시름을 다 잊은 듯 패원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진다. 스텝이 꼬이고, 장구 소리가 다소 어긋나도 덩실덩실, 신명만큼은 달아올랐다. ‘신명’이 중요하다던 김 조합원의 말 그대로다.

“서남풍이라는 이름에는 단순히 서남지역지회 풍물패란 뜻만 있는 게 아니요. 서남풍은 굉장히 시원한 하늬바람이거든. 저임금에 임금체불, 고용불안, 잦은 산재사고 등 대불공단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시원~하게 거시기해불고 우리 노동자가 대접받는 세상 만들자는 의미랑께.” 이들의 길놀이와 함께, 대불공단에 시원한 하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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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조직강화상 받은 사연
대불공단서 서남지역지회가 만든 작은 모범들

전남 목포시 남쪽 영산강 건너편에 위치한 대불공단은 조선소 하도급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다수는 다단계하도급 구조에 묶여 있는 일당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곳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금속노조 서남지역지회(지회장 장문규) 조합원 역시 3분의 2 가량이 일당을 받아가며 일하고 있다. 일감이 많고 적음에 따라 급여가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하도급 업체는 원청으로부터 기성(톤당 작업 단가) 삭감과 공사 기간 단축 압박을 받기 일쑤다. 이 때문에 임금체불은 물론이요, 회사가 아예 망하거나 돈을 들고 ‘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장 지회장은 “노동자들도 이런 일에 익숙하다 보니 악착같이 싸워 체불임금을 받아내기 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일감을 찾아 다른 곳에 가곤 한다”고 말한다.

▲ 덩실덩실 길놀이 연습이 시작됐다. 모든 시름을 잊은 듯 <서남풍> 패원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졌다. 김상민
이처럼 열악한 지역에서 서남지역지회는 조금씩 존재감 있는 조직이 돼 가고 있다. 최근 지회는 지난해 10월 발생한 대양중공업의 하청업체 임금체불문제를 수개월에 걸친 투쟁으로 해결했다. 또 얼마 전 서원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 35명의 임금체불 문제도 1주일간 농성투쟁을 벌여 회사와 임금전액을 보전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키로 합의해 냈다.

지회는 문화 활동으로도 지역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지회는 지역 시민사화단체들과 함께 3년 전부터 매년 가을에 ‘대불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제’를 개최해 왔다. 문화제 참가 인원은 계속 늘어 지난해엔 4백 명이 넘는 노동자 시민이 동참했다. 또한 지회는 <서남풍>과 함께 기타동아리를 운영 중이다. 이 동아리엔 조합원 뿐 아니라 지역주민, 노동자 자녀들까지 함께할 정도로 지역에서 인기가 좋다.

이 같은 모범활동에 힘입어 지회는 지난해 12월 열린 금속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조직강화상을 받기도 했다. 장 지회장은 “현장에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투쟁하고 공부하고 즐기는 조직이 바로 서남지역지회”라며 “2011년 작은 성과들을 바탕으로 올해는 지회의 힘을 한층 더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의지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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