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협 9개월 옥쇄 파업.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이 기록의 주인공은 노조 역사가 오래된 대기업 노동자들이 아니다. 조합원 수 1백여 명에 불과했던 충남 아산 대성엠피씨 노동자들이 지난 2004년 벌인 투쟁이다. 그것도 금속노조 가입 직후 3개월 만에. 당시 한 경제지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 회사 노조는 신출내기답지 않게 과감한 투쟁성과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신출내기답지 않은 전투력?

이들 노동자들의 금속노조 가입은 근로기준법 위반을 회피하기 위해 회사가 기본급을 깎아 수당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것이 발단이었다. 안 그래도 저임금에 주60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근무, 더위와 추위뿐 아니라 각종 유해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된 작업 현장 등 열악한 노동 조건에 시달려왔던 노동자들이었다.

▲ 2월 14일 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조성철 대성엠피씨지회장. 조 지회장은 270일 파업투쟁의 가장 큰 성과물을 '동지애'로 꼽는다. 김상민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죠. 우리도 보는 게 있고 듣는 게 있는데 기본급을 깎다니요.” 14일 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조성철 대성엠피씨지회장이 당시를 회상했다. 그 해 4월 10일 대성엠피씨 축구회 모임에 참석한 노동자 44명이 노조에 가입하기로 결의, 다음날 바로 금속노조 충남지부 사무실을 찾아 전원 가입원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13일, 이들은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가입원서를 받아 현장 노동자 대부분을 노조에 가입시켰다.

작은 우여곡절도 있었다. 초기 지회장을 하기로 했던 사람이 갑자기 금속노조가 기업노조로 가자고 말을 바꿨다. 회사도 “금속노조만은 안 된다”는 입장을 내비쳤던 터였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고 느낀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여 총회를 열고 지회 집행부를 새로 꾸렸다.

그러나 새내기 지회 앞에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가 작정하고 노조를 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지회는 5월말부터 회사와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에 들어갔지만, 회사는 좀처럼 노조의 요구들을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지회는 2004년 7월 15일부터 3일간 4시간 부분파업을 벌였다. 지회는 같은 달 20일부터 전면파업을 시작했다. 노동자와 회사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270일 파업의 첫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역사적인 270일 파업의 시작

“처음엔 한 4일 정도 파업하면 회사가 수용할 줄 알았죠. 세상일 참 모르는 겁디다. 우리도 회사가 그렇게 나올 줄 몰랐지만, 회사도 우리가 그토록 질기게 싸울 줄 알았겠어요?” 고경일 지회 사무장이 앨범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사측 공고문을 찍은 사진이다. 공고문에는 ‘2004년 7월 26일 12시부로 직장폐쇄한다’고 적혀 있다. 지회 전면파업 7일 만에 회사도 전면전을 선포했다.

▲ 고경일 대성엠피씨지회 사무장이 지회 투쟁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앰범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고 지회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진엔 지난 2004년 7월 회사가 붙인 직장폐쇄 공고문이 찍혀 있다. 김상민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특히 당시 다른 사업장 같으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유니온샵 인정 문제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왜일까? “우리 회사는 회사 쪽과 친인척 관계이거나, 학연 지연 등으로 묶인 사람이 대다수에요. 심지어 지회장인 저도 회장과 먼 친인척 관계입니다. 유니온샵으로 강제하지 않을 경우 회사가 마음먹고 탄압 회유하면 조합원들이 줄줄이 떨어져 나갈 게 뻔했거든요.” 조 지회장의 설명이다. 회사도 이 지점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것은 몰라도 유니온샵 요구만은 수용하지 않았다.

회사는 이른바 노조 파괴 전문 노무사도 고용했다. 회사는 회사 밖에서 이들이 노조 파괴 기획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사무실도 따로 마련했다. 이 사실을 안 노동자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무슨 탐정이나 경찰도 아닌데 잠복근무까지 해봤다니까요. 온갖 수를 써서 사무실 위치를 파악한 다음, 근처에서 잠복하다 놈들이 나오면 선봉대가 나서서 혼을 내 줬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혼을 내줬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고 조 지회장이 웃으며 말한다.

기약 없이 길어지는 점거 파업에도 이탈자는 많지 않았다. 투쟁 경험도 없었던 새내기 지회가 그렇게 긴 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답을 기다렸는데 조 지회장이 쐐기를 박는다. “경험도 없던 우리가 뭉치는 거 말고 뭐 아는 게 있겠어요. 싸움 길어지면서는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리만 죽을 수 있나요? 우리 이렇게 만든 회사도 그냥 두지 않겠다는 ‘악’으로 똘똘 뭉쳤어요.”

“우린 다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금속노조 충남지부가 우리 문제를 가지고 두 번이나 연대 파업을 했어요. 조합원들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지회 설립 초기에 금속노조를 고집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조 지회장이 “우리 지회 힘만으로 버틴 게 아니”라며 연대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 금속노조에 가입한지 8년이 된 2012년 현재, 대성엠피씨 노동조건은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됐다고 한다. 한 노동자가 금속 인쇄에 사용되는 염료를 배합하고 있다. 김상민
노동자들이 ‘같이 죽자’는 결의로 질기게 버티자 회사는 결국 한 발 물러섰다. 지회 전면 파업 270일째였던 2005년 4월 15일, 노사는 핵심 쟁점이었던 유니온샵에 대해 ‘입사와 동시에 조합에 자동 가입하며, 탈퇴 시 직원 자격을 상실하지 않는다’는 수준으로 뜻을 모았다. “지회도 한 발 물러섰죠. 하지만 이미 굳이 유니온샵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어요. 긴 투쟁 과정에서 조합원들 사이엔 친인척관계나 학연 지연보다 더 끈끈한 정이 생겼거든요.” 조 지회장이 당시 합의 배경을 설명했다.

대성엠피씨 노동자들은 통조림이나 분유통, 캔 등 금속 철판에 디자인된 그림과 글씨를 인쇄하는 일을 한다. 필름이나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과 달리 금속에 직접 인쇄를 하면 벗겨지거나 찢어지지 않기 때문에 잘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270일 파업 투쟁을 겪은 대성엠피씨 노동자들 가슴에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게 있다. 조 지회장이 말하는 가장 큰 투쟁 성과물. 바로 ‘동지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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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일 파업 그 후
정리해고 철회시키고 노동 조건도 향상

270일 파업의 후과는 컸다. 조성철 대성엠피씨지회장은 “1년의 3/4이 생산이 중단됐으니 회사가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한다. “지회 잘못은 없었지만 현실적으로 일정부분 어려움을 감수할 생각이 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회사는 모든 책임을 노동자 탓으로 돌렸다.

회사는 2005년 9월부터 회사는 강제 휴업을 실시하더니 12월 급기야 조합원 27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이에 맞서 지회 간부들이 철야 농성을 벌이자, 회사는 지회 사무실에 용역 60여명을 투입해 폭력을 유발했다. 당시 부지회장이었던 조 지회장은 지회 사무실을 지키다 용역을 몰아내기 위해 싸움을 벌였는데, 이 때문에 다음해 3월 당시 지회장과 함께 구속됐다.

회사는 2006년 1월 전면휴업을 실시했다. 또한 공장에 전기, 가스, 수도를 차단하고 다시 노조 탈퇴 공작을 벌이는 등 강수를 뒀다. 하지만 270일 파업을 견뎌낸 조합원들은 이번에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용역이 공장에 들어왔을 때 조합원과 지역 노동자들이 긴급히 모여 물리쳤다.

▲ 대성엠피씨 노동 조건 향상과 더불어 회사도 국내 점유율 1위 자리를 되찾았다. 한 노동자가 금속판 인쇄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김상민
회사는 결국 같은 해 3월 정리해고 99일 만에 △정리해고 철회 △단계별 현장 복귀 △고소 고발 취하 등에 합의해줬다. 구속됐던 조 지회장과 당시 지회장도 같은 해 5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8월에는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 뒤 회사는 더 이상 지회와 큰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리고 6년이 현재 대성엠피씨는 금속인쇄업 국내 점유율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이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동 조건도 많이 향상됐다. 노동자들이 요구해왔던 냉난방시설이 현장에 설치됐으며, 유해 물질로부터 노동자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시설도 갖춰졌다. 임금도 과거에 비해 3~40% 올랐다. 조 지회장은 “금속노조 가입한 후 얻게 된 소중한 성과들”이라고 평가한다.

그렇다고 긴장을 늦추지는 않는다. 조 지회장은 쉬는 날 빼고는 공장 안이든 밖이든 항상 금속노조 조끼를 입고 다닌다. “치열했던 대성엠피씨지회 투쟁 역사를 한시도 잊지 않기 위해서죠. 조금의 틈만 보이면 회사는 언제 도발할지 모르는 거잖아요.”

* 금속노조는 현재 약 2백 40개에 달하는 지회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조직의 규모가 크건 작건, 역사가 길건 짧건 많은 곳들이 치열한 투쟁을 겪으면서 노동조합을 지키고 발전시켜왔습니다. 우리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담고 있습니다. <금속노동자>는 노동조합 활동과 노동운동 과정에서 소중한 경험을 간직한 조합원들을 찾아 우리 지역, 우리 사업장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네번째 편입니다. 본 기획은 계속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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