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눈시울이 붉어진다. 듣는 사람도 자꾸 천장을 쳐다본다. 한마디로 처절한 현실을 가르는 찬연한 로맨스다. 조영만 센트랄지회장, 올해 마흔 일곱에 아이가 셋. 5년 전 부인과 재혼해 다섯 식구가 됐다고 한다. “저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우리 지회 유일한 여성조합원이고, 제 힘의 원천이 우리 부인입니다.” 부인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며 그새 두 눈이 빨개진다.

그도 그럴 것이 홀로된 조 지회장은 ‘언젠가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찾아오겠지’라는 생각을 품으며 11년을 기다려왔고, 지금의 부인이 현장에서 다쳤을 때 도와준 감정이 연민인줄 알았는데 뒤늦게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우리 부부 지금은 의리로 살지요.” 하며 배시시 웃는다. “마흔 줄 훌쩍 넘은 부부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며 맞장구치는 필자에게 “그런 권태로운 부부의 의리가 아닙니다.”라며 또 슬픈 미소로 되받는다.

바람 부는 창원대로, 가로등 아래 두 그림자가 흔들리듯 다가온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하나 되어 우리 나간다. 승리의 그날까지. 지키련다. 동지의 약속. 해골 두 쪽 나도 지킨다. 노조깃발 아래 뭉친 우리…” 두 그림자는 이내 흐느끼며 ‘와락’ 껴안는다. “여보, 다 떠나도 우리 둘은 꼭 남자.” “그래, 회유 협박에 못 이겨 금속노조 떠났지만 마음이 떠난 게 아니다. 민주노조 지키고 있어야 조합원들 돌아온다.”

“마음이 떠난 게 아닙니다”

조 지회장이 묘사한 지난 겨울의 풍경이다. “조합원들과 뒷풀이하고 부인과 집에 가며 눈물로 ‘파업가’를 셀 수 없이 불렀습니다.” 아이들 얘기 해달라고 요청했다. “막내딸에게 제일 미안하지요. 어려서 저와 할머니 밑에서 커서 걱정했는데 고모들의 성원과 할머니의 정성으로 바르게 성장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막내에게 “배려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을 가훈처럼 강조했다는 조 지회장. “어렵다면 어려운 환경에서 크는 아이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이타심이 결국 자신의 재산이 된다는 교훈을 일깨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막내딸이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 조영만 지회장이 노조와 경남지부에 부탁하고 싶은 게 딱 하나있다고 했다. “남은 조합원들 보면 말로 표현 못할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합니다. 우리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고립됐다고 느끼지 않을 사업을 지회와 함께 기획해주길 바랍니다.”신동준
올해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 조 지회장은 “내 개인을 돌아볼 지회 상황이 아니”라면서도 “굳이 하나 있다면 막내딸 대학 가는 것”이라고 쑥스레 말한다. 재산목록 1호를 물었다. “1989년 전노협 마창노련 시절 노조활동을 시작해 안 해본 직책이 없습니다. 센트랄지회하면 제 이름이 떠올랐으면 하는 게 제 소원입니다. 노조활동이 제 재산 1호입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인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부인이 제 힘의 원천입니다. 부인과 술 대작하며 지회, 세상, 아이들 얘기하는 시간이 제일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부인이 제 힘의 원천이죠”

이쯤 되면 창원 제일 팔불출이라 할 만하다. 부인과 대화와 수다, 여기에 함께 차린 술상. 금속노조 모든 기혼자 가정에 추천할 만한 그림이 아닌가. 타임오프로 임금이 줄어 밖에서 먹기 부담스런 상황이라 집에서 주로 먹는다고 푸념하는 조 지회장. 지회 얘기로 방향을 돌렸다. 조 지회장은 인터뷰 날(2월 13일) 아침 네 장의 조합탈퇴서가 날라 왔다고 한다. “제가 지회장되고 한 달 만에 7kg 빠졌습니다. 오늘 점심도 굶었습니다. 요즘은 밥이 어디로 넘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인 얘기 하던 상황과 또 다른 눈물이 비친다. “그 조합원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보호해주지 못해 안타깝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현재 센트랄지회 조합원은 스물아홉명이다. “저는 매일 현장순회 합니다. 탈퇴자, 조합원 가리지 않고 인사합니다.” 지난 1월 중순 지회장 선거 뒤 현장에 못 들어가는 해고자 세 명(6기 지회장, 부지회장, 조합원)으로 상임집행부 꾸리고 조합원 중 운영위원 한 명, 회계감사 한 명 총회에서 뽑고 나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업이 현장순회라고 한다.

센트랄에는 노조가 세 개 있다. 금속노조 5기 간부들이 만든 한국노총 소속 노조, 6기 간부들이 만든 기업노조, 그리고 금속노조 7기 센트랄지회. 조 지회장은 각 노조가 생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라며 말끝을 흐린다. ‘센트랄사태’는 2007년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로 수출 물량이 급격히 줄면서 회사가 고용과 투자를 볼모로 금속노조 탈퇴를 내걸었고 여기에 흔들려 일부 조합원들이 넘어갔다. 6기 말에 회사가 지회 간부 징계를 내세워 협박해 또 한 조직이 생긴 것으로 전해졌다.

“보호해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

“노조법상 센트랄 지회가 아직 대표노조지만 회사가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입니다. 금속노조가 아닌 두 곳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장에 당근을 많이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 지회장은 조합원 수가 줄어 힘이 약하긴 하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당선 뒤 현장에 갔을 때 외면하던 노동자들이 이제는 불쌍해하고, 미안해하고, 눈물까지 보입니다. 현장노동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활동 계속할겁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평범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를 자기 몸 살라가며 실천하는 조 지회장의 정성에 현장이 얼마나 움직일지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조 지회장이 노조와 경남지부에 부탁하고 싶은 게 딱 하나있다고 했다. “남은 조합원들 보면 말로 표현 못할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합니다. 우리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고립됐다고 느끼지 않을 사업을 지회와 함께 기획해주길 바랍니다.” 절절하게 부탁하는 조 지회장. “2월 9일 박상철 위원장님과 임원들이 조합원 간담회하고 뒷풀이 하고나서 조합원들이 정말 뿌듯하게 느꼈다”고 덧붙인다.

조영만 지회장은 “금속노조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노조다’라는 생각이 있어야 진정한 더 큰 노조가 됩니다. 노조는 이런 사업을 만들어서 대공장부터 소규모 현장까지 뿌리내리게 해야 합니다.” 대공장 중심 사고와 소공장 피해의식이 현장을 강타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조 지회장. 창원 최고의 팔불출, 로맨스 아저씨가 사랑하는 건 부인과 노동조합이다.

* [나는 지회장이다]는 일선 금속노조의 핵심 활동가이자 지휘자인 지회장들을 ‘인간적’으로 소개하는 연재꼭지입니다. 전국을 돌며 각 지회장들의 일상과 고민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센트랄은 자동차 조향장치 부품을 만들며 지엠, 폭스바겐 등에 생산량 45% 정도 수출하는 회사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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