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할 게 있다. 오늘(2월 6일) 아침 눈을 떴을 때만 해도 이 원고의 주제는 민주화 운동의 막차를 타는 방송언론 노동자들을 향한 불편한 시선에 대한 것이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치열한’ 순간이 끝나갈 즈음인 90년대 초반에야 방송 민주화 운동이 시작됐던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MBC 등 방송·언론사에서 반복되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 말이다.

언론자유 없이 민주주의도 없다는 말이 있다. 90년대 초반 방송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이들이 ‘막차’를 탄 데 대한 부끄러움과 반성을 말했던 이유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시민의 힘으로 형성한 ‘재민주화’ 분위기 속 정권교체기라는 시기에 ‘공정방송’ 깃발을 들고 나온 방송언론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에 복잡한 감정이 섞여있는 배경이다.

방송언론인들도 이런 상황을 안다. 최근 공정방송의 회복과 친(親)정부 성향의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MBC 구성원들이 국민 앞에 사과부터 한 까닭이다. 그러나 약간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정방송을 위해 싸운 게 수차례며, 이 과정에서 많은 방송언론인들이 해직 등 징계 칼날에 쓰러졌진 것은 왜 기억해주지 않냐고. 맞는 얘기이며, 이해 가능한 항변이다.

▲ 2월6일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 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언론노조> 

하지만 거듭된 싸움과 패배 속 침묵과 자조의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고,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전후로 꿈틀대기 시작한 시민들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노조를 중심으로 내부에서 공정보도 부재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지만, 시민들이 방송언론에 걸고 있는 기대엔 한참 미치진 못했다. 정권교체기라는 시기가 올 때까지 방송언론인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 즉 낙하산 사장에 장악된 현실을 탓하고 변명하는 일에 좀 더 열심이었던 게 아니냐는 냉소적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방송 투쟁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일부라고 하지만 방송언론인들이 자신들의 공정방송 투쟁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복잡한 시선에 대해 억울함을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순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려 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신문들을 보며, 방송언론인들의 이번 투쟁에 대한 복잡한 시선을 거두기로 했다. 일단 무조건 지지를 보내는 게 먼저라는 판단이다.

오늘 주요 일간지 1면 하단엔 ‘문화방송 시청자들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공정방송을 위한 기자들의 제작거부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의 파업 2주째인 오늘 사측은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방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정상적인 방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  2월3일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지부 조합원들이 서울 명동에서 시민들에게 파업에 대해 선전을 하고 있다.  <언론노조> 

또 “지난해 MBC는 전 방송사 가운데 시청률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고, 경영성과 면에서도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며 “국민들이 1위로 선택한 방송사의 사장과 임원에게 퇴진을 요구하며 불법 파업을 하는 것은 시청자들이 부여한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경영실적 좋은데 왜 파업?"

지상파 방송은 공공재인 주파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공정성-공공성 등에 대한 책임을 요구받는다. 공영방송은 특히 더 그렇다. 그런데 공영방송 MBC의 수장은 제1의 책무인 방송의 공정성-공공성 실현에 대한 책임 방기를 질책하는 시청자 국민 앞에서 경영실적이 좋은데 뭐가 문제냐며 구성원들이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고 부끄러움 없이 항변하고 있다. ‘정상적인 방송’은 시청률이나 광고 실적만으로 충족되는 게 아님을 생각조차 않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MBC와 방송언론의 퇴행적 현실의 책임은 낙하산 사장과 그들의 휘하, 그리고 이들의 횡포에 ‘저항’에서 ‘침묵’으로 대응해 온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방송언론의 기본적 책무조차 새기지 않고 있는 낙하산 사장과 그들의 휘하의 책임이 가장 큰 게 사실이다.

공정방송 회복과 이를 위한 첫 방안으로 낙하산 사장 퇴진을 말하는 방송언론인들의 싸움에 일단 무조건 지지를 보내자고 말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들을 일단 지지하고 난 뒤, 계속할 일 하나를 감히 제안해 본다. 낙하산 사장 임명이라는 퇴행적 행태가 더 이상 불가능 하도록, 지배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에 이들 구성원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감시의 시선을 거두지 말자고 말이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MBC의 한 기자는 오늘 <한겨레> 1면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시청자와 연애하고 있다.” 연애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애정과 신뢰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세계가 맞부딪치고 실망하면서도 결국엔 화해하는 과정에서 쌓인다. 조금 늦긴 했지만 방송·언론인들은 더 잘하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지금까지의 방송·언론인들에 모습에 실망하긴 했지만, 이들이 또 다시 ‘민주화의 척도’라는 정체성을 잃고 ‘막차’에 편승하길 바라지 않는다면 한 번 더 손을 잡아주면 어떨까.

김세옥 / <PD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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