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역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박주민 광주지역금속지회장은 조직사업이 한창인 서남지역지회가 낫지 않겠냐며 난감해했다.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대단한 투쟁담이 아니라 지회의 일상 얘기를 들려달라고 하니 그제야 잠시 기다려달란다. 설을 앞둔 지난 20일 광주지역금속지회 간부들은 재정사업으로 바쁜 와중이었다. 지회 사무실 앞으로 양손과 옆구리에 재정사업 물품을 들고 나타난 오미령 사무장도 쑥스러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다. 설을 앞두고 지회 조합원을 대상으로 굴비 판매중이라고 한다.

지회 소속 로케트분회 출신인 오 사무장은 노조 활동 경력이 얼마 안 돼 지회 역사를 잘 모른다며 겸손해했다. 금속노조 가입 뒤 열 명중 두 명의 조합원을 제외하고 모두 해고됐다고 한다. 금속노조 가입 뒤 싸운 3년이 노조 활동의 전부이니 신규 조합원이나 다름없긴 하다. 편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급한 일부터 처리하라 하고는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을 천천히 둘러봤다.

한쪽 벽에는 지역지회답게 노조뿐만 아니라 각종 지역사회 단체 일정이 적힌 일계표와 지회 소식지, 자료와 책이 꽂힌 책장이 서있다. 일계표 한쪽 귀퉁이에 지회 조직구성을 적혀 있었다. 표로 작성해 출력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간소한 조직이다. 동양정산 89년 5월 8일 결성 14명, 상진미크론 01년 3월 7일 결성 29명, 대우 IS 07년, 로케트 08년 등.

▲ 오 사무장은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지회를 거처 간 저도 잘 모르는 선배님들도 많아요. 설과 추선 전에 ‘선후배 모임’을 개최해 선후배간 교류를 합니다. 이때 선배님들이 십시일반 돈을 거둬 지회 사업비에 보태기도 하죠”라며 소개했다. 김형석
지회 역사는 89년 ‘광주지역금속노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동차 및 전자 부품 업체 중심의 광주 하남공단을 기반으로 처음부터 지역노조로 출범했다. 이후 89년 동양정밀을 필두로 2001년 상진미크론에 이르기까지 매년 조합원을 늘리며 광주광역시 하남공단의 맹주 역할을 수행해왔다.

89년 광주지역금속노조부터의 역사

“한때 최대 12개 분회, 200여명의 조합원으로 악명(?)이 자자했어요. ‘지역금속’이 떴다하면 노조 설립이 가능했었죠. 당시만 해도 상근자 다섯 명이 노조에 비협조적인 사업장에 몰려가서 저서(휘저어)버리면 대개 해결됐거든요.” 박 지회장이 회상한다. “그래선지 지금도 다른 단체 활동가들은 ‘그래도 지역금속인데’라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역할을 요구해요.” 박 지회장은 웃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신생 조합원은 늘지 않고 공장이전, 노조탈퇴, 폐업을 반복하며 조직은 위축돼 왔다. “최근 10여 년간 계속 줄어들기만 했습니다. 2005년부터 신생조직은 없습니다. 로케트와 대우IS가 가장 막내 사업장이죠. 그나마 로케트는 2009년 투쟁을 끝으로 10명 조합원 중 8명이 해고된 상태고, 대우IS는 작년 말 사업장이전에 따른 퇴사를 결정했어요.” 박 지회장의 말이다.

“노무현 정부시절 비정규직법이 통과되고부터 좀 규모가 된다 싶은 사업장은 전부 도급과 용역 같은 비정규직을 쓰다 보니 우리로서는 접근 자체가 힘들어졌어요.” 박 지회장은 조직 약화의 주된 원인을 이같이 꼽았다. 박 지회장은 상담 및 조직사업 등 기존 활동으로는 비정규직 중심으로 변화된 노동시장 구조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박 지회장은 “노무현 정부시절 비정규직 법이 통과되고부터 좀 규모가 된다 싶은 사업장은 전부 도급과 용역 같은 비정규직을 쓰다 보니 우리로서는 접근 자체가 힘들어졌어요”라며 조직 약화의 주된 원인을 꼽았다. 김형석
박 지회장은 최근의 대우IS분회 근황을 소개했다. 대우IS는 자동차 오디오를 생산하는 전자부품업체다. 한국노총 소속 노조에 대항한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한 지 3년만인 2011년에 단협쟁취 투쟁을 벌였다. 로비 점거농성과 한 달간의 분회장 단식 등 집중투쟁을 벌였지만 용역깡패도 경찰도 부르지 않는 회사의 철저한 무대응 전략에 말려 결국은 파업 투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법 통과 뒤 조직사업 난항

박 지회장은 담담하게 털어놓았지만 아쉬움을 감추진 못하는 눈치였다. “작년 신임 지회장으로 당선된 이래 대우IS 투쟁을 마무리하느라 사업계획 수립이던, 신규 조직사업이던 어느 것 하나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이 같이 말하는 박 지회장의 말 속에서 굳이 취재대상으로 서남지역지회를 추천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무거운 화제를 돌릴 겸 지회의 일상사업을 소개해 달라는 질문에 오 사무장은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지회를 거처 간 저도 잘 모르는 선배님들도 많아요. 설과 추선 전에 ‘선후배 모임’을 개최해 선후배간 교류를 합니다. 이때 선배님들이 십시일반 돈을 거둬 지회 사업비에 보태기도 하죠”라며 소개했다.

지회 모임은 사업장별로 따로 모이는 것보다 조합원간 교류와 소통을 늘리기 위한 모임이 많다. 물론 30대가 주축인 상진미크론분회 조합원이 많이 참여한다. 상진미크론분회에는 볼링모임과 축구모임이 있지만 사업장이 다른 조합원간 교류를 위해 지회장배 볼링대회를 연 2회 개최한다. 최근에는 분기별로 ‘무등산 옛길 걷기’ 행사도 개최한다고. 본격적인 등산보다는 나이 든 조합원들이 가볍고 폭 넓게 참가하는 행사다. 또 분회단위로 월 1회 2시간 교육을 진행하면서 영화관람이나 건강강좌를 듣는다. 지회사무실에서 다섯강짜리 노동교실도 열어 교육을 수료한 조합원들끼리 졸업여행을 가기도 한다고.

다채로운 지회 일상사업

최근 들어서야 지회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1월 안에는 계획을 정리할 생각이라는 박 지회장. “노조 간부 확보가 절체절명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간부들이 지역 조직 활동가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분회장보다는 대의원을 중심으로 간부를 확대해 공단 조직사업과 선전전을 벌일 생각입니다.” 박 지회장의 구상이다.

▲ 인터뷰를 마치며 박 지회장은 “2006년에도 지회장을 맡았었지만 조직 확장을 못해 노조와 조합원에게 제일 죄스러웠습니다. 2년 뒤에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많은 조합원 수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두 개의 분회를 더 조직해 지역지회 모양을 갖추려고 합니다”라고 밝혔다. 김형석
이어 박 지회장은 “동아리 모임이나 야유회 같은 일상사업도 있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공단 노동자 조직화사업과 간부 확대”라고 강조한다. “지역 노동자 문화제나 공단 체육대회 등의 기획사업을 펼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지역의 기업지부와 지역공동사업을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공단사업이나 지역사업에 금속노조가 큰 도움이 됩니다. 노조의 재정과 사업배치에 배려를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이 밝히는 박 지회장은 “덕분에 지역지회의 역할을 재인식하고 있지만 ‘우리가 안하면 안한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현안이 있더라도 공단조직 사업에 대한 일상적인 제안과 지침을 줬으면 합니다. 형편이 된다면 금속노조를 알리는 라디오 선전도 했으면 좋겠구요”라고 덧붙였다. 이어 박 지회장은 “지역사업은 지역지회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노조와 지부에서 함께 기획하고 제안해주세요”라고 당부한다.

* 2011년 말 현재 금속노조 산하에 19개 지부 2백 40여 지회가 있습니다. 특히 지회는 금속노조의 골간을 이루는 사실상의 최초 사업단위입니다. 그리고 각 지회는 서로 규모도, 업종도, 역사도, 사업방식도 제각각입니다. 이 같은 제각각의 사업이 모여 금속노조를 이룹니다. [우리지회가 사는 법]은 1년 동안 전국을 돌며 이 같은 각 지회의 활동상을 조명하는 연재코너입니다. 금속노조 산하 지회가 바로 금속노조의 얼굴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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