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다. 메마른 겨울을 적셔주는 겨울비. 경주 보문단지의 차갑고 비릿한 비 내음이 감성을 자극한다. 기분 좋은 예감을 간직한 채 대우버스사무지회 대의원회의장에 도착했다. 지회대의원회의가 얼마나 길까라는 짐작으로 기다렸지만 김화수 지회장은 함흥차사였다. 사업보고를 마친 김 지회장이 대의원들에게 휴식시간을 길게 준다. 그 틈에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화수 지회장은 부인과 만남이 특이했다고 소개한다. 인터넷이 본격 보급되기 전, 피시통신은 첨단의 아이콘이었다. 1996년 노동법 개정 총파업 지침도 이를 통해 전파하던 시절이었다. 김 지회장은 <천리안> 한 동호회에서 채팅하던 한 여성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다고.

김 지회장은 초등 오학년과 일학년생을 둔 두 아이의 아빠다. 김 지회장은 두 아이에게 사회불평등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조 활동을 한다고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신문이나 방송보도를 활용해 시사적인 개념과 상황을 설명한다고 한다. 얼마 전 큰 아이가 사회시간에 선생님과 논쟁을 벌인 일화를 소개한다. 선생님은 교육부의 지침대로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설명했는데, 김 지회장의 큰 아이가 “‘자유’는 경제개념이고 ‘민주’는 정치개념이라 양립할 수 없다. 한국은 민주주의 체제이다.”라고 주장해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 김화수 지회장의 좌우명은 ‘무한불성 無汗不成’이다. 땀 흘려야 이룰 수 있다는 인생의 지침을 노조 활동에도 오롯이 적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동준

김화수 지회장의 좌우명은 ‘무한불성 無汗不成’이다. 땀 흘려야 이룰 수 있다는 인생의 지침을 노조 활동에도 오롯이 적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회 사무실에 걸어둔 말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지회장의 땀 한 방울이 조합원들의 권리와 힘으로 나타납니다.” 천상 지회장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김 지회장은 특별히 아끼는 보물이 있다고 한다. <21세기 노동전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laborprogress.org 홈페이지다. 이 홈페이지에서 김 지회장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노동운동론을 펼치고 있다. 김 지회장은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이 21세기 들어 소비의 주체가 됐다. 노동자계급도 다양해지고 이들의 욕구와 교육수준도 높아졌다. 이렇게 바뀐 환경에 맞는 노동조직을 만들지 못하는 사이 자본은 국가시스템과 법률마저 바꾸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다. 김 지회장은 “더 이상 집회 중심의 투쟁으로 노동자계급의 가치와 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 21세기 노동자는 생산, 소비, 소유의 주체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생산수단 장악에서 소비구조의 장악으로 자본을 뛰어 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화수 지회장은 “소비 앞에 이기는 자본가는 없다. 일상이 소비다. 15만 명 동시 파업은 힘들겠지만 15만 명 동시 소비로 소비구조를 바꿔, 노조의 사회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조 조합비로 추산한 전체 조합원의 한 달 월급 총액은 3조원이 넘는다. 이를 노조 공식 통장에 모아 한 달만 활용해도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정부국고채 이율을 적용해 대충 계산해도 한 달 이자가 1천억원 정도다. 김 지회장은 노조의 하드웨어도 키워야 한다고 촉구한다. “노조가 1백층짜리 건물 짓고 고속도로 톨게이트 광고판 사서 광고해야 한다. 찌라시 뿌리고 쫓아다니는 시대는 지났다.” 동의 여부를 떠나 금속노조가 가야할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고민하는 김 지회장의 열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 김화수 지회장에게 사무지회의 존재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다. “현장만 싸우면 힘들다. 사무-연구직이 회사의 정보를 쥐고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 1월 일 열린 지회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과 상임집행 간부들이 기념사진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동준

김화수 지회장에게 올해 꼭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 지회장은 “역사, 철학, 시사를 망라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조합원 교육에 몰두하고 싶다”고 말한다. “현재 작업 중이고 영상을 주요 교육 수단으로 삼을 예정”이라고 밝힌다. 김 지회장은 “똑똑하면 맑스의 <자본론> 읽고 무식하면 찌라시나 읽어야 하느냐”고 현재 노조 교육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노동자의 경전이 필요하다. 이른바 <노경>이다. 교수노동자부터 청소년노동자까지 함께 보고, 무장하고, 느끼는 노동자의 교과서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올 때 한 말 같은 명언과 경구 등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찌라시 뿌리고 쫓아다니는 시대 지났다”

김화수 지회장에게 사무지회의 존재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다. “현장만 싸우면 힘들다. 사무-연구직이 회사의 정보를 쥐고 함께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 김 지회장은 조직화 측면에서도 “자동화 비율이 높아지고 사무-연구-관리직 인원이 늘고 있다. 몇몇 사업장 사례만 봐도 파업할 때 사무직과 임시직 투입으로 공장이 돌아가 투쟁이 실패했다.”고 분석한다. 김 지회장은 “금속노조가 살기 위해서라도 사무직 조직화에 시급히 힘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말 나온 김에 노조에 대한 쓴 소리를 부탁했다. “현재 노조는 기업노조 운동 방식에 빠져 있다. 1년짜리 계획만 내놓고 있다. 10년을 내다보고 조합원들에게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김 지회장은 대안으로 “사회구조와 패러다임 변화에 민감한 조합원들에게 품앗이 집회만 강조하니 산별노조 무용론이 나온다. 간부들이 먼저 변화하자. 15만 금속노동자가 소비구조를 장악하는 운동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자”고 ‘21세기 노동전사론’을 다시 제출한다.

대우버스사무지회는 품질관리, 생산관리, 연구소, 구매, 총무 등을 맡고 있는 240명 사무직 노동자가 뭉쳐 있는 노조다. 조합원들은 회계, 노무 등을 담당하는 일부 사무직을 뺀 회사의 핵심 정보를 취급하는 노동자들이다. 김화수 지회장은 2005년 노조를 건설하기 전까지 데모를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한다. 2008년, 6개월 지회 파업을 진두지휘해 승리한 경험이 있다. 김 지회장은 한국화를 꼭 배우고 싶은 인터넷 바둑 4단의 실력자다.

* [나는 지회장이다]는 일선 금속노조의 핵심 활동가이자 지휘자인 지회장들을 ‘인간적’으로 소개하는 연재꼭지입니다. 전국을 돌며 각 지회장들의 일상과 고민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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