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 한적한 어느 밭 한편에 비닐하우스 한 동이 쳐져 있다. 그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드럼통에 피운 불을 쬐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사상과 뒷풀이 음식 준비가 한창이다. 11일 오후 이들이 준비하는 행사는 ‘풍년기원제’다. 그 주인공은 바로 4년 째 싸움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포항지부 DKC지회 노동자들. 공장을 바로 앞에 두고 밭에서 풍년기원제를 지내는 이들의 사연 한 번 들어보시라.

DKC지회는 지난 2009년 10월, 파업을 끝내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노조를 반드시 ‘깨겠다’는 회사 탄압에 맞선 싸움이었다. 현장 복귀 뒤 회사는 지회 간부 6명을 해고했다. 현재 지회는 해고자 6명이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회사의 끈질긴 탄압에도 버티고 있는 금속노조 조합원 19명이 현장을 지킨다. 하지만 다른 곳처럼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는 것조차 이곳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회사가 공장 정문 앞 도로를 아예 사버리더니 좁던 길 넓히고 나무 다 뽑고. 이제 저 길에는 천막이고 현수막이고 아무것도 설치할 수 없어요.” 공장 앞 도로에 쳤던 천막은 그런 이유로 철거당했다. 할 수 없이 공장 정문이 보이는 밭에 자리를 잡았다. 밭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더니 회사가 구청에 민원 넣는 바람에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그래서 설치한 것이 비닐하우스.

▲ 1월11일 해질녘 DKC지회 비닐하우스 안에서 포항지역 노동자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이날 DKC지회 한 해 농사가 잘 지어지길 비는 잔치가 벌어진 날이다. 비닐하우스 위 불켜진 건물이 DKC 공장이다. 신동준

공장 앞 밭에 비닐하우스 친 사연

이 뿐이 아니다. 회사가 온갖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해 둬 회사 안팎에서 집회조차 할 수없고 현수막도 걸 수 없다. “2008년 회사의 단체협약 해지통보 뒤 아직까지 무단협 상태입니다. 회사 안에서도 회사 허락을 받은 노조활동만 할 수 있어요.” 선전물 하나 게시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이들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해고자들도 어렵지만 현장에서 온갖 탄압 다 당하면서 버텨야 하는 조합원들 어려움이 더 많다.” 한 해고자 얘기처럼 회사의 현장 탄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한 조합원은 “2009년 현장에 복귀했을 때부터 회사는 ‘징계 낮춰주겠다, 가압류 빼주겠다’면서 온갖 회유를 했고 그 때문에 노조를 탈퇴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한다. “아직도 탈퇴 작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탈퇴하지 않은 이들은 비조합원들과의 차별을 고스란히 겪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회사는 온갖 빌미로 조합원들을 징계했다. 같은 사안이더라도 비조합원은 그냥 넘어가고 조합원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 일쑤다. “잘못한 게 없어도 길 지나다닐 때 아예 대놓고 욕하고 모욕주는 관리자들도 있다.” 어느 조합원의 말이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가압류다. 회사는 2009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조합원들에게 부동산과 채권 가압류를 진행했다. 최근 또 다시 3차 가압류를 진행했고 현재 조합원 11명이 17억 원에 달하는 급여 가압류를 당한 상태다. 이들은 3년 째 월급의 50%를 꼬박꼬박 가압류 당하면서 반토막난 임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 1월11일 이동곤 포항지부 DKC지회장이 올 한 해 풍성한 성과를 기원하는 ‘DKC 풍년기원제’ 고사에서 축문을 읽은 뒤 태우고 있다. 신동준

반토막 월급으로 3년째

이동곤 지회장은 “조합원들 돈줄을 막아서 생계를 어렵게 하는 거다. 보험이나 적금은 다 해약했고 대출금 있는 조합원들은 더 힘들다. 대부분 부인들이 맞벌이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 이 지회장은 “집이라도 팔려고 해도 회사가 부동산까지 가압류 걸어둬서 매매조차 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3년 째 월급 절반만 받아가며, 온갖 부당함을 견디며 금속노조 조합원을 유지하는 것.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지만 조합원들은 “그만둘 거라면 벌써 그만뒀지요”, “아마 앞으로도 노조 깃발 접는 일은 없을 겁니다” 라고 확고히 말한다.

“무슨 큰 뜻을 품어서 노조를 계속 하는 게 아니예요. 명절날 가족들이 모였는데 다른 사람들 다 탈퇴하고 편하게 사는데 너도 그만두고 조용히 회사만 다니라고 하더라구요. 그때 생각을 해봤는데 내가 탈퇴하고 조합원이 없어지면 과연 우리 현장에 정규직이 있을까 싶더라구요. 아들이 고등학생이고 졸업하면 곧 현장에 가야하는데 그때 정규직이라는 게 존재할까 생각하니 그만 둘 수 없더라구요.”

회사는 지회 간부 6명을 해고한 뒤 그 자리를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회사는 7년 째 생산직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았다. 회사는 노사협의회를 따로 두고 회사가 원하는 내용을 통과시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그나마 더 나쁜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노조가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는 노조가 있고 없고 차이를 분명히 압니다. 노조 탈퇴한 사람들도 자기들은 안하면서 노조가 있는 게 낫다고 말한다.” 한 조합원의 말이다.

▲ DKC지회는 회사의 위세에 지회 이름이 들어간 현수막 한 장 걸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DKC지회 동지들은 회사의 가압류로 월급의 반을 뺏겨도 3년째 버티는 강철 노동자들이다. 포항지부 이름이 들어간 현수막 뒤로 DKC지회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신동준

“노조 있고 없고 차이 다 압니다”

이날 풍년기원제에는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포항지역 노동자들 뿐 아니라 경주 발레오만도, 구미 KEC 등 경북 지역 노동자들도 이곳을 찾았다. 9일부터 전국현장순회 중인 금속노조 임원들도 합류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밭 주변에도 현수막 걸기가 힘들었는데 사람들 오니까 현수막을 두 개나 걸 수 있었다.” 한 조합원은 “우리가 원하는 건 죽어라 같이 싸워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늘 관심 가져주고 찾아와주는 것”이라며 “자주 방문해주면 정말 힘이 된다”고 강조한다.

“피와 땀 눈물로 지켜온 우리 지회가 승리할 수 있도록 두루 지켜주시옵고 투쟁 승리의 풍년이 오기를 빕니다. DKC지회 조합원들의 건강을 지켜주옵소서.” 이날 지회 조합원들은 풍년과 승리를 기원하는 축문을 읽었다. 축문이 활활 타는 순간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에게서 “풍년 확실히 들겠구만, 올해는 다들 복직하겠어”라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이들 노동자들은 이 밭에는 채소를 심을 예정이다. 가족들도 모여 밭을 꾸려 나갈 것이다. “식목일에는 좋은 나무들도 심을 생각입니다. 그날도 꼭 오십쇼.”

* DKC 회사는 2008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 단체협약 133개 조항 중 118개에 달하는 개악안을 제시하고, 이후 노조활동 탄압, 조합원 징계, 직장폐쇄, 일방적인 단협해지 등 온갖 탄압을 자행했다. 이에 지회(지회장 이동곤)는 그 해부터 싸움을 시작해 4년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회는 그 해 조합원 전체가 파업투쟁을 벌인 뒤 2009년 10월 현장에 복귀했다. 이후에도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노조탈퇴 회유, 협박을 진행하는 한편 지회 간부 6명을 해고하고 노조를 탈퇴하지 않은 조합원들에게 징계를 가했다. 회사는 또한 조합원들에게 부동산과 임금 등 수십 억 원의 가압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지회 조합원 20여 명이 현장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고 해고자 6명도 회사 바깥에서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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