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역의 한 지회 취재를 위해 탄 기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충북 영동의 엔텍지회 사무장입니다. 우리 지회장님 소개해 주십시오.” 나의 머릿속에 엔텍은 대전충북지부 소속 작은 지회, 몇 년 전 본사 점거투쟁으로 관심을 끌었던 지회 정도로 기억돼 있었다. <나는 지회장이다>에 소개할 네 번째 지회장을 대구나 전북에서 찾고 있던 때였다. “작은 지회지만 자랑스럽게 금속노조를 지키고 있는 우리 얘기 좀 들어주세요. 복수노조가 생겨 힘듭니다.” “복수노조”라 단어와 “작은 지회지만”이란 전제에 이끌려 충북 영동으로 향했다.

2011년이 사흘 남은 날 저녁, 영동역에서 세 명의 노동자를 만났다. 엔텍지회장, 사무장, 노동안전부장이었다. 기업노조에 과반을 뺏겨 단협이 무력화돼, 세 노동자는 주간근무를 마치고 온 길이었다. 영동역 맞이방에서 서로를 알아본 네 명의 사내는 칼바람을 피해 역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김지학입니다.” 한 눈에 봐도 노동으로 단련된 인상이지만, 눈가의 주름으로 웃음이 많은 사람임을 알았다. <나는 지회장이다> 꼭지의 성격을 설명하고 질문에 들어갔다.

“제 나이 마흔 셋입니다. 부인과 결혼한 지 십년 됐고, 두 딸이 있습니다.” 김 지회장은 큰 아이를 영동군 외곽의 분교에 입학시켰다. 몇 년 전만해도 지자체 지원이 거의 없어 힘들었지만 현재는 대안적 공교육을 실천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 학생도 늘어나고 통학버스도 지원돼 다닌다고 한다. “대자연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서 보냈습니다.” 이 한마디에 김 지회장의 철학이 묻어난다.

▲ 김지학 대전충북지부 엔텍지회장. 신동준

“배려하는 삶을 살자. 딸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입니다. 저의 좌우명이자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말이지요.” 김 지회장은 나만 잘 먹고 잘 살자는 사람이 가장 불쌍하다고 말한다. “나도 언젠가 어려워질 수 있고,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면 나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 세대에게 언젠가 기회가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인생의 보물 1호를 묻는 질문에 “제 인생의 보물은 두 가지입니다. 사람과 지회 현판입니다.” 김 지회장의 말에서 지회 활동이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지회의 현실이 엿보인다. 2005년 지회를 설립하자 회사는 6개월 넘게 직장을 폐쇄했다. 지회는 49일 서울 반포 본사 점거투쟁으로 단협을 쟁취했다. 김 지회장은 공장으로 개선해 지회 현판식을 할 때 감격이 인생을 지탱하는 지주가 됐다고 한다. “서른 세 명 전 조합원이 낙오 없이 점거투쟁을 했습니다. 그 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직장을 잃는 일이 있어도 사람을 버리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지회를 세운 힘이었습니다.”

"다시, 단일 금속노조 건설"

지난 해 가장 큰 성과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회사에 지난 해 7월1일 전체 노동자 과반이 넘는 기업노조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2005년 4월부터 열 달 동안 싸워 힘들게 노조를 만들었는데 사무직, 관리직 중심으로 하루 만에 생겼습니다.” 회사는 기업노조와 단협을 번개처럼 체결했다. 반면 엔텍지회 대해 전기를 제외한 모든 지원을 회수해 가고 전임자 현장복귀를 강제했다. “우선 우리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반성했습니다. 지회의 노력이 부족해 복수노조 상황이 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평가에 대한 결론은 7기 지회의 힘찬 건설이었다. 전임도 없고 단협도 무력화된 상태지만 2005년 노조 건설할 때 초심으로 돌아가 현장 작업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 조합원들이 상대 노조 조합원들에게 감정의 골이 깊지만 우리 먼저 현장에서 일하면서 마음을 열고 다가가고 있습니다. 반응도 슬슬 옵니다.” 김 지회장이 웃으며 말한다. 지난 6개월의 마음 고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허허로운 웃음이다.

임기 중 상상하는 가장 극적인 순간은 당연히 “다시 금속 단일노조 건설!”이라고 힘차게 말하는 김 지회장. “다수 노조 지위를 회복하고 현장의 모든 노동자가 금속노조로 뭉치는 게 임진년 소원입니다.” 김 지회장은 서둘지 않겠다고 한다. “남을 해치려는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7기에서 안되면 8기, 8기에서 안되면 9기가 계속 이어갈 겁니다.” 자본이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현장의 마음을 얻어 질기게 투쟁하는 노동자다. 이 진리를 잘 아는 김 지회장이다.

김지학 지회장은 2003년 5월 충남 당진 한보철강에서 대형화물차 5백대가 동참한 화물연대 대 투쟁에 참여했던 운수노동자 출신이다. 25톤 카고 트럭을 몰던 김 지회장은 그 해 8월 한차례 더 벌어진 투쟁으로 구속됐다. 석방 뒤 만삭의 부인과 한 많은 당진 땅을 떠날 때 그에게 남은 건 빚 이천만원. 다시는 노조 안하겠다고 부인과 약속했다. 2004년 4월 영동으로 넘어와 엔텍에 입사했다. 월급 58만원. 그야말로 쥐꼬리. 현장은 숨 쉴 수 없는 통제 상황이었다. 이혼 서류 쓰라는 부인을 한 달 동안 설득했다. 현장 노동자들과 노조 결성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 “우리 지회는 매주 화요일 총회를 합니다. 모든 조합원이 중식집회를 합니다. 직장폐쇄 깨고 지회 설립한 뒤 한 번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지회는 집회에서 지난 주 활동을 보고하고 이번 주 계획을 공유한다고 한다. 이종열 엔텍지회 사무장, 김지학 지회장, 노진광 노동안전부장(사진 왼쪽부터). 신동준

김 지회장은 “우리 지회는 매주 화요일 총회를 합니다. 모든 조합원이 중식집회를 합니다. 직장폐쇄 깨고 지회 설립한 뒤 한 번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지회는 집회에서 지난 주 활동을 보고하고 이번 주 계획을 공유한다고 한다. “우리 지회의 힘은 여기에서 나옵니다. 노조가 15만명으로 커진 뒤 노조답지 못하고 기득권에 목매는 단위들도 보입니다. 우리 지회의 모범을 응용해 창조적으로 현장 조직 단위에 적용해 보시길 권합니다.” 작은 금속노조 시절의 노조다운 기풍이 아쉽다는 김 지회장. 노조는 현장에 기반한 정책과 투쟁을 집행하고, 지부는 작은 지회부터 잘 챙겨 조직하고, 지회간부가 긴장하고 현장을 자주 돌면 조합원은 분명히 따라 온다고 김 지회장은 강조한다.

엔텍은 ‘시스템키친’에 들어가는 쿡탑을 구성하는 후드와 광열판 렌지와 가스 렌지를 만든다. 회사는 물량이 줄어든다며 지회를 떠보는 중이지만 서른아홉 조합원은 금속노조의 이름으로 ‘준비’하고 있다.

김 지회장은 이 말을 꼭 써달라고 했다. “대전충북지부가 엔텍 상황에 관심을 두고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유성 영동지회도 우리 지회 설립부터 도움을 준 큰 집입니다. 유성의 어려운 상황과 우리 지회의 상황을 전국의 금속노동자들이 잊지 말고 민주노조 복원을 위해 계속 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김 지회장의 넓은 오지랖이다.

* [나는 지회장이다]는 일선 금속노조의 핵심 활동가이자 지휘자인 지회장들을 ‘인간적’으로 소개하는 연재꼭지입니다. 전국을 돌며 각 지회장들의 일상과 고민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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