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벌세우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29일 점심시간 경주 아진카인텍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조은희 조합원이 하소연을 했다. 조 조합원이 이번 주 한 일은 하루 종일 ‘가만히 서 있기’였다.
화요일은 그나마 사무실에 앉아 있도록 했지만, 월요일과 수요일은 생산라인 앞에서 서 있는 상태로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대기해야 했다. “다리도 아프고, 얼굴도 퉁퉁 부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조 조합원은 스트레스 때문에 이날 휴가를 냈다.

회사의 표면적 이유는 이렇다. 지난 8일 조 조합원은 직장장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주야 2교대 근무로 전환시키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내년 1월부터 노동자들의 업무배치를 주기적으로 돌리는 로테이션체제를 운영하기 위함이라는 게 회사 설명이었다. 2002년부터 계속 상시주간 근무만 했던 조 조합원은 항의했지만 19일부터 배치전환돼 1주일간 야간작업을 해야 했다. 노사 단체협약을 어긴 일방적 처사였다.

노동자를 학생 벌세우듯이?

1주일 후인 지난 26일 주간조로 출근한 조 조합원에게 회사는 야간근무 때 하던 업무가 아닌 원래 조 조합원이 하던 업무에 배치시켰다. 조 조합원은 회사 업무 지시가 불공평하다며 거부했다. 그리고 이를 트집 잡아 회사는 조 조합원에게 ‘벌(?)’을 세운 것. 회사는 다음달 4일 징계위원회 개최 요청 공문도 지회에 보낸 상태다.

▲ 회사가 이번주 들어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않은 조은희 아진카인텍지회 조합원을 현장에서 하루종일 서 있도록 지시했다. 조 조합원이 28일 현장에 서 있는 모습. 아진카인텍지회 제공
조 조합원은 남편도 이 회사에서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어, 함께 주야간 근무하게 되면 육아가 힘든 상황이다. 때문에 지난 9월 회사와 당분간 주간 상시근무만 하기로 얘기가 돼 있었다. 그런데 회사가 3개월 만에 일방적으로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그런데 회사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이 지회 주장이다. 조 조합원이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않은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것. 실제 조 조합원 말고도 회사는 지난 8일 금속노조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근무조와 라인 재배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 뿐만 아니라 회사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만 잔업과 특근을 못하게 막고 있어 조합원 실질 임금이 40~50%가량 줄었다. 이에 대해 서동찬 아진카인텍 지회장은 “지난달(11월) 금속노조 탈퇴자들이 기업노조를 만들었는데 조합원 11명이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않자 가해지는 회사의 탄압”이라고 분석한다. 이어 서 지회장은 이러한 회사 압박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 서동찬 아진카인텍지회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그 동안 우리 지회 활동을 반성하고 혁신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김상민
그런데 이같은 향후 전망을 아는 조합원들이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하자 조은희 조합원이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아낸다. “우리 사업장에 노조가 없을 때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어떻게 금속노조를 포기할 수 있겠어요.” 관리자들의 언어폭력은 기본이고 신체적 성희롱까지…. 조 조합원이 “2002년 말 금속노조 가입 전에 뭐 이런 데가 다 있냐 싶었다”며 현장에서 다반사로 벌어졌던 인권유린 사례를 울먹거리며 소개했다. 조 조합원은 “금속노조 가입 후 관리자들이 더 이상 대놓고 행패를 부리지 못했다”며 “금속노조를 포기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조 조합원에게 금속노조는 지옥과도 같았던 일터를 바꾼 소중한 존재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라고요? 안 되죠”

이 같은 심정은 조 조합원뿐만 아니다. 금속지회를 탈퇴한 이들로 구성된 기업노조 설립 직후 금속노조 경주지부 간부들이 지회 사무실에서 조직형태 변경총회를 통해 금속노조를 탈퇴하겠다는 계획이 적힌 종이를 발견했었다. 그런데 당시 금속노조 탈퇴파들은 조직형태 변경 총회를 열지 않았고 당시 지회집행부와 회사 관리자들이 조합원들을 만나 개별 탈퇴를 종용하는 식으로 금속노조 탈퇴작업을 벌였다. “금속노조에 대한 신뢰 때문에 총회를 열면 탈퇴가 부결될 수 있다는 회사 판단이 있었던 거죠”. 서 지회장의 말이다. 서 지회장은 이어 “회사 관리자들의 강압에 의해 탈퇴한 이들 중에 미안해하는 이들도 꽤 있다”고 현장의 현재 분위기를 덧붙였다.

조 조합원은 최근 복수노조인 기업노조가 생긴 뒤 회사 관리자들의 태도가 예전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일하기 싫으면 일 안하게 해 줄게”라는 회사 관리자의 협박성 발언이 회사 조회시간 때 등장한다는 게 조 조합원의 말이다. “알고 시작한 싸움입니다. 회사가 본색을 드러내면 낼수록, 남은 자들은 물론이고 강압에 못 이겨 탈퇴한 조합원들도 다시 금속노조라는 민주노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겁니다.” 희망찬 새해를 준비해야 할 연말연시에 아진카인텍지회 조합원들의 각오는 더 단단해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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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노조 등장에서부터 지금까지

자동차에 들어가는 각종 철판을 만드는 경주 아진카인텍에 ‘금속탈퇴파’ 중심의 기업노조가 들어선 것은 지난 11월 28일이다. 당시 권 모 지회장을 비롯한 지회 집행부들은 이날 경주시청에 한국노총 소속 기업노조 설립 신고를 마치고, 조합원들을 기업노조에 가입시켰다.

그리고 당시 현장 조반장들도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한 명씩 불러 금속노조 탈퇴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지회에 따르면 이들은 금속노조 탈퇴에 동의하지 않는 조합원 집까지 찾아가 갖은 협박도 일삼았다. 이를 통해 66명 중 금속노조 조합원은 11명만 남게됐다.

그리고 남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같은 날 저녁 금속노조 경주지부 간부들과 함께 지회 사무실을 ‘접수’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같은 날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어 당시 지회장이던 권 모씨를 금속노조에서 제명했다. 이어 지회 조합원들은 현재의 서 지회장을 비롯한 새 집행부를 꾸리게 된다.

▲ 지난 11월 28일 복수노조 설립 직후 지회 조합원들과 경주지부 간부들이 지회 사무실에 진입해 입수한 문건. 금속노조 탈퇴 계획이 치밀하게 마련돼 있다. 아진카인텍지회 제공
서중호 아진카인텍 대표이사는 금속탈퇴 기업노조가 생기기 전에도 금속노조 탈퇴를 종용하는 발언들을 노동자들에게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은희 조합원에 따르면 서 사장이 권 모 전 지회장이 함께 있음에도 직원들 앞에서 “(노조)상근자들 먹고 노는 놈들이다. 이제 그만 금속노조 탈퇴하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권 전 지회장이 이 같은 사장 발언에 대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는 것. 서 지회장은 이와 관련해 “권 전 지회장 수첩엔 아줌마들을 내보내고 용역직 전환한다거나 간접부서를 촉탁직으로 전환한다는 등 회사 지시에 따라 움직인 정황들이 기록돼 있었다”며 회사가 한참 전부터 전 지회 집행부와 복수의 어용노조 설립에 개입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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