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이 주로 모이는 인터넷 까페에선 여전히 가습기 살균제와 물티슈가 이슈다. 지난 11월 임산부와 영유아의 급성폐질환으로 인한 사망의 원인이 바로 가습기 살균제라는 결론이 전해진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가습기 사용이 필요한 겨울철이 되면서 다시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에 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한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에서 어린아이들이 주로 쓰는 물티슈를 검사했는데 많은 제품에서 기준치 이상의 화학방부제가 사용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도대체 뭘 믿고 사용해야 하는지 논란이 거세다.

가습기살균제 이야기는 섬뜩한 공포영화를 보는 듯하다. 건강했던 임산부, 아이를 낳은 지 며칠 되지 않은 산모, 방긋방긋 베내짓 하던 아기가 갑자기 폐가 딱딱하게 굳어간다. 폐 이식을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된다.

알려진 사망자만 46명이나 되는 이 공포스런 사건의 원인은 수개월간의 역학조사 끝에 밝혀지는데 바로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였다. 살균제 속에는 세정, 소독 기능을 위해 다양한 화학물질이 들어있는데, 그 중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 같은 성분이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을 안개처럼 미세한 입자로 쪼개어 내보내는 방식인 초음파 가습기에 사용된 살균제는 화학물질을 초미세입자로 바뀌어 허파꽈리까지 바로 들어간다. 실내에서 주로 생활하는 영유아나 임산부, 산모들은 하루종일 가습기에서 뿜어나오는 이 독가스를 흡입하다 죽음에 이른 것이다.

▲ 11월30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고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원인은 밝혀졌지만,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상식적으로 이런 치명적인 제품을 만든 회사나 유통을 허가해준 정부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텐데, 어찌된 일인지 회사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한마디 없고 정부는 역학조사가 발표된 지 3개월이 지나서야 문제가 확인되었다는 6개 제품에 대해서만 수거명령을 내렸다. 시중에는 20여개의 가습기살균제가 팔리고 있고 이들의 안전성도 확신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결국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고 있다.

원인 밝혀져도 책임지는 이 없다

사실, 가습기 살균제처럼 순식간에 치명적인 결과로 드러나진 않지만 이미 우리 주위에선 수많은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집안에서 주로 쓰는 방향제, 탈취제, 표백제, 합성세제, 소독제 등에 쓰이는 온갖 화학물질은 비록 허가된 물질을 허용된 양만큼 사용하고 있다고는 하나 인체에 축적되고 자연으로 배출되면서 환경호르몬으로, 독성물질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신종플루를 겪은 뒤부터 살균이나 항균을 내세운 제품들을 우리는 마치 청결과 위생의 필수품처럼 쓰고 있다. 비누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살균력을 높여준다는 세제를 사용해 손을 씻어야만 안심을 하는데, 대부분의 손세정제 제품 속엔 ‘트리클로카반’이라는 환경호르몬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4만 여 가지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중 독성이 파악된 것은 수백 가지에 불과하다.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더 높여 소비자들의 피해를 줄여가야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전에 우리는 가습기 살균제, 물티슈에 이어 또 어떤 제품의 어떤 성분이 우리를 공격할지 불안해하기보다 가능하면 화학물질을 피하는 생활을 선택해야 한다.

조금은 살균이나 항균이라는 말에 무뎌질 필요도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 균이 없기란 불가능하고 그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습도를 유지하는 안전한 방법들도 많고 물티슈는 손수건으로 얼마든지 대용할 수 있고 비누나 식초, 소다, 아로마 등은 합성세제, 방부제, 방향제의 역할을 충분히 하면서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정명희 / 녹색연합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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