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 2교대로 근무할 시절 지친 몸 추스르느라 잠자기 바빴던 두원정공지회 조합원들. 하지만 지난해 9월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하면서 이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기 시작했다. 퇴근 후 여가시간이 늘자 최근 두원정공지회엔 ‘운동 붐’이 불고 있다. 축구, 등산, MTB, 베드민턴, 탁구, 족구, 볼링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노동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데 운동만한 게 없기 때문.

이들 종목 중 동호회 규모가 가장 큰 것은 축구다. 하늘차기, 두원조기축구회, 한우리 등 총 세 팀에 회원 수 1백 여 명 규모. 회원 중 일부 비조합원들이 있지만 전체 조합원수가 4백90여명이니 어림잡아 다섯 명 중 한 명이 축구 동호회원인 셈이다.

“조합원 평균 나이가 40대 중후반인 우리 같은 사업장에 이렇게 축구가 활성화 된 곳이 또 있을까요?” 8일 오후 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배성태 두원정공 축구연합회 회장에게 동아리 자랑을 듣고 싶다고 하니 이 같이 되묻는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들게 되면 대부분 축구 같은 격한 종목보다 다소 ‘점잖은’ 스포츠를 찾게 되기 마련. 하지만 두원정공의 경우 5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넓은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이들이 많다.

5명 중 1명이 축구동호회원

배 조합원은 “공 하나 가지고 수 십 명이 어우러질 수 있는 운동이라 그런지, 과거 조합원들이 이삼십 대였을 때부터 자주 모여 축구를 하곤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열정이 식지 않고 있는 게 두원정공 축구동호회의 큰 자랑이다.

▲ 8일 저녁 두원정공 축구동호회 왕중왕전이 열리기 직전 경기 참가자들이 모여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상민
그렇다면 실력은? 배 조합원은 “과거 잘 나갈 땐 외부 대회에 나가 우승컵을 받아오기도 했지만, 나이를 많이 먹다보니 솔직히 기량이 떨어진 게 사실”이라고 털어 놓는다. 최근 성적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성적은 예선 1차전 탈락. “뭐 어때요. 우리가 좋아서 즐기는 건데.” 배 조합원은 “우리에게 성적이나 실력은 중요치 않다”며 이 같이 말한다. 그저 서로 몸으로 부대끼는 게 좋을 뿐이다.

8일 저녁 살을 에는 추위에도 공장 근처 운동장에선 두원정공 축구동호회 경기가 열렸다. 1년에 단 한 번 있는 ‘왕중왕전’이다. 축구동호회 세 팀 중 전반기 우승팀과 후반기 우승팀이 맞붙는다. 무슨 큰 행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관중 한명 없이 썰렁하다. 공 차는 것 자체만으로 좋은데 관중 응원 따윈 필요 없다.
물론 당사자들에겐 1년을 결산하는 중요한 경기다. 이 경기에 따라 득점왕, 어시스트왕 등 ‘영광의 주인공’이 가려지게 된다. 그런데 배 조합원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은 따로 있다. 바로 ‘페어플레이어상’이다.

“페어플레이어상이 가장 중요”

아무리 즐기자고 공을 차는 것이지만 실제 경기가 시작되면 승자와 패자가 갈리다보니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지지 않을 수 없다. 이기기 위해 격한 몸싸움을 벌이거나 때론 의도적으로 반칙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만든 것이 ‘페어플레이어상’이다. 이 상은 승리한 팀이 패배한 팀원 중 한명을 지목해 수여한다. 배 조합원은 “경기가 너무 격화돼 부상자가 안 나오도록 페어플레이를 강조하고 있다”며 “이 상으로 승자도 웃고 패자도 웃게 된다”고 설명한다.

경쟁보다 함께 어우러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원정공 축구동호회 회원들. 배 조합원은 “두원정공 축구동호회는 노동조합과 아무 상관이 없는 조직이지만 노동자다운 스포츠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아무리 민주노조라 해도 조합원들이 모래알이면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조합원들 뭉치게 하는 데 운동만큼 좋은 게 없어요. 서로 몸 부대끼며 운동하다보면 개인도 조직도 건강해지기 마련이죠.”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장까지 역임한 바 있는 배 조합원의 지론이다.

여기서 배 조합원이 말하는 ‘조합원 운동동호회 꼬시기 팁’ 하나. “정기적으로 건강검진할 때, 의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이때를 집중해서 공략하면 효과가 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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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나 봤나, 축구투쟁?
두원정공지회 93년 투쟁에서 2002년 금속가입까지

두원정공에는 축구와 얽힌 재밌는 역사가 있다. 93년 임단투 때 일이다. 당시 한국노총 소속이었던 두원정공노조는 39일간 파업을 벌였다.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일부 조반장들이 몰래 회사로 복귀해 생산을 재개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기세는 좀처럼 꺾일 기세가 아니었다.

▲ 두원정공 축구연합회 회장인 배성태 조합원은 "서로 몸 부대끼며 운동하다보면 개인도 조직도 건강해지기 마련"이라며 운동 동아리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상민
두원정공 노동자들의 파업 여파가 원청사인 현대기아차에 미칠 무렵 노조는 별다른 성과 없이 회사와 타협을 하고 만다. 현장은 들끓었지만 노조 집행부 결정을 뒤집을 만큼 조직화돼 있진 않았다. 대신 당시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축구 투쟁’을 벌였다. 조합원들이 근무시간 에 대거 조퇴한 뒤 연일 축구 연습을 하거나 부서별 경기를 치른 것. 효과로 봤을 땐 사실상 파업이나 다름없었다.

부서별 축구경기가 7차전까지 진행되자 결국 파업기간 몰래 회사로 복귀했던 조반장들이 사퇴했다. 자발적 현장 투쟁의 힘으로 일궈낸 작은 승리였다. 하지만 이 작은 승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는 게 배성태 조합원의 설명이다.

배 조합원은 “이 사건을 계기로 현장 권력이 조반장에서 노조 대의원으로 이동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 분위기에 힘입어 두원정공엔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현장조직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9년 뒤인 2002년 4월, 두원정공 노동자들은 총회를 열고 80%가 넘는 압도적 찬성으로 한국노총을 탈퇴, 금속노조(민주노총)에 가입했다.

* 공장 출퇴근 길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기계 부속품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모임. 바로 우리 지역과 현장에 있는 동아리들입니다. ‘우리 동아리를 소개합니다’는 <금속노동자>가 지역과 사업장에서 활동하는 각종 동아리를 소개하는 연재꼭지입니다. 전국에 자랑하고 싶은 동아리모임이 있으면 금속노조 선전홍보실(02-2670-9507)로 연락바랍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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