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2년 전에 공장에 돌아갔어야 했다. 지난 2009년 8월 6일 이뤄진 쌍용차 노사 대타협 약속대로라면, 쌍용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19명은 그해 10월 1일자로 공장에 복귀했어야 맞다. 대타협 직후 회사는 쌍용차지부에 비정규직 노동자 복직을 위해 19명 명단을 달라고까지 했지만 돌연 입장을 바꿨다. 그리고 2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 하소연했다. 서울로 올라가 이유일, 박영태 사장 집 앞에서 절규했다.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 마힌드라에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인도 대사관도 찾았다. 2년 동안 할 수 있는 일 다 했고,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봤다. 그러는 사이 조합원은 19명에서 11명으로 줄었다.
“이제 다른 데는 안 갑니다. 반드시 여기서 끝장을 볼 거예요.” 29일, 평택시 지산동 원유철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만난 서맹섭 쌍용차비정규직지회장이 굳은 표정으로 한 말이다. 지회는 지난달 24일부터 한 달 넘게 이곳과 평택 비젼동 정장선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노숙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인 원 의원과 민주당 소속 정 의원은 지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사태 당시 중재단으로 나서 8.6 노사대타협을 ‘보증’해 준 이들이다. 노사 합의가 잘 이행되도록 할 책임 있는 당사자들인 셈이다.
“더 이상 다른 데 갈 곳 없다”
지회가 이들에게 하는 요구는 간단하다. 두 국회의원이 2009년 8.6 대타협 중재단이었던만큼 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 복직 약속을 이행하도록 직접 나서라는 것. 이를 위해 노사합의 당사자, 중재단, 비정규직지회가 참가하는 복직협의기구를 구성하라는 요구다.
처음엔 뜬금없다는 분위기였다. 이들이 노숙농성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투쟁에 나서기 전까진 평택시민을 물론이고 중재자인 국회의원들조차 쌍용차사태에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 “쌍용차 문제 속에는 정리해고자, 무급휴직자, 징계해고자, 징계해고 후 부당해고 인정을 받은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같은 비정규직까지 총 다섯 부류가 있어요. 그 중 숫자가 가장 적어서 그런지 비정규직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죠.” 서 지회장과 함께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유제선 지회 조직부장의 말이다.유 부장은 “지회가 선전전과 농성을 줄기차게 진행하자 조금씩 관심과 지지가 모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종종 빵이나 음료수, 라면을 사들고 와 격려해주기도 한다. 의원 사무실에 드나드는 한나라당 당직자도 힘내라고 할 정도다. 서 지회장은 “약속 안 지키는 회사 하나 어쩌지 못한다며 국회의원 질타하는 시민은 봤어도 우리에게 욕하는 시민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말한다.
관심 밖이었던 쌍용차 비정규직 문제
쌍용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문제가 지역 시민들에게 알려지자 국회의원도 최근 회사 측과 접촉하는 등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서는 분위기다. 하지만 서 지회장은 “회사가 워낙 강경해 아무리 여당 국회의원이라도 강력한 사태해결 의지를 갖지 않으면 쉽게 문제가 풀릴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회가 추워지고 있는 날씨에도 굳이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노숙농성까지 벌이고 있는 이유다.
서 지회장은 회사가 금속노조 조합원이 공장 안에 생기는 게 싫기 때문에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규직 무급휴직자든 비정규직이든 금속노조 깃발이 쌍용차에 들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 실제로 쌍용차에 기업별 노조가 생긴 이후 노조 간부가 지회에 찾아와 금속노조 탈퇴하면 잘 해결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 지회장의 입장은 단호하다. 서 지회장은 “금속노조 탈퇴하고 현장에 복귀하는 것은 생각도 안 해봤다”며 “만일 회사가 대놓고 금속노조 탈퇴를 조건으로 내 걸면 부당노동행위로 즉각 고발조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서 지회장과 지회 조합원들의 목표는 ‘당당하게’ 일터로 돌아가는 것이다. 민주노조를 포기하고 굴욕적으로 복직하는 일은 그간 쌍용차 투쟁에 연대해준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공장으로 돌아가려는 진짜 이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 바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돌아갈 일터에 민주노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장에는 우릴 목 빠지게 기다리는 노동자들이 있어요. 모두 높아진 노동 강도와 저임금 때문에 아우성입니다. 비록 현재 조합원은 아니지만 현장에 금속노조 깃발이 뜨기만을 기다리는 이들입니다.” 서 지회장은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종종 연락해 우리를 격려한다며 이 같이 말한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지고 있다. 벌써 해고된 지 세 번째 맞는 겨울이다. 무릎과 허리가 쑤시고 속도 쓰리다. 하지만 진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대부분 1천일 넘기고 3년 넘기면 해결되데요. 우리도 질기게 싸우다 보면 이기지 않겠어요?” 서 지회장은 이미 공장으로 돌아간 후 어떻게 지회 활동을 잘 할 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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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비정규직 해고자 문제는 무엇?
합의정신 무시되고 있다
2009년 여름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간 옥쇄파업투쟁.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들이었지만 이 싸움 한 켠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회사의 공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보다 앞서 자행됐다. 2008년 11월부터 희망퇴직, 강제휴업 뒤 업체폐업, 계약해지라는 형태로 수백명이 일터에서 쫓겨나야 했기 때문이다.
77일의 마지막 날인 2009년 8월 6일 쌍용차 노사가 사회적 합의를 하면서 쌍용차비정규직지회 해고자 19명을 10월 1일부로 복직시킨다는 합의를 한다. 합의서 문구는 ‘취업 알선’이었다. 하지만 이는 원청 사용자성 문제를 피하기 위한 문구였을 뿐, 사실상 구두로 복직 약속을 받아낸 것이었다.
비정규직에 대한 합의가 사실상 복직약속이었음은 8.6 합의 당시 중재에 나섰던 국회의원들이 최근 회사와 접촉했을 때 회사도 인정한 부분이다. 하지만 회사는 “어디까지나 취업 알선이며 채용여부는 면접을 봐야 알 수 있다”, “11명 일괄복귀는 어렵고 선별적으로 하겠다”라며 합의 정신을 무시하고 있다.
한편 회사는 2009년 9월부터 올해 11월 현재까지 신규 비정규직 54명을 채용했으며, 지금도 계속 신규채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