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세월 회사를 위해 기계를 돌렸다. 머리카락 희끗희끗해진 노동자들은 회사가 잘 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믿었던 경영진은 말 한마디 없이 어느날 갑자기 회사를 팔아버렸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경영진은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을 들이밀었다. 부당한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현장을 지키겠다며 한 달째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풍산마이크로텍지회(현 PSMC)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들을 29일 부산시청 앞 집회에서 만났다.

휴가 보내놓고는 회사 팔아버린 경영진

▲ 문영섭 풍산마이크로텍지회장이 11월 29일 부산 서면에서 진행한 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신동준
이들의 싸움은 지난 해 12월 회사 매각부터 시작됐다. 한 조합원은 “회사가 어렵다고 하니 연월차휴가 소진하려고 다들 휴가를 떠났다. 근데 휴가 삼 일째 되는 날 밤에 회사를 팔아버렸다. 완전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앞서 11월에도 회사는 매각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풍산그룹 부회장이 직접 와서 “절대 매각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그 뒤 한 달 만에 이뤄진 기습매각이었다.

조합원들은 새로운 경영진이 경영과 투자 생각은 없이 주식으로 돈 벌 궁리만 했다고 지적한다. 문영섭 지회장은 “현 경영진은 사채를 끌어다 회사를 사고 들어온 지 일주일만에 한 일이 회사 사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이었다”며 “이후에는 노동자들 임금 30% 깎아서 35억 자금을 만들고, 유상증자를 해야 한다면서 실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정리해고를 하겠다고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회사는 지난 11월 7일 58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윤우영 대의원은 18년을 그곳에서 일했고 이번에 해고자가 됐다. 윤 대의원은 “토요일에 해고통지서 주더니 월요일부터 바로 회사 출입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동안 회사에서 쓰던 물건이랑 옷 하나도 못 챙겨나왔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자신하는데 아무 기준도 없이 하루 아침에 나가라고 하니 억울하고 황당할 뿐”이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단물 빼먹고 필요없다고 버린다?”

조합원들은 현 경영진보다 풍산그룹이 더 원망스럽다고 하소연했다. 한 조합원은 “필요할 때 한참 써먹고 이제 이익 안 난다고 팔아버린 거 아니냐. 단물 다 빼먹고 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윤 대의원도 “IMF 당시 풍산그룹이 많이 어려웠는데 우리 매출로 다 먹여살리고 회사 살리느라 죽어라 일했다”며 “그런데도 회사 어렵다는 말에 임금 올릴 생각도 없이 일했는데 이제와서 필요없다고 버리고 나간거다. 자기 가족도 못챙기던 사람이 뭘 제대로 하겠냐”고 이전 경영진에 대한 분노를 털어놨다.

▲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다. 신동준

이어 윤 대의원은 “서울 본사는 사옥도 새로 짓고, 이전 사장도 본사 사장으로 승진해서 갔는데 우리만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내쫓겼다”고 말했다. 이 곳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문 지회장에 따르면 2003년 680여 명에 달하던 노동자가 현재 250명으로 줄었다. 그 동안 다섯 차례 구조조정이 있었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신규 채용도 없어 근속 15년에도 아직 막내 꼬리표를 달고 있을 정도다. “회사에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이번 정리해고 명단에 없었더라도 언젠가는 내 차례가 올거라는 불안감을 다들 가지고 있다.” 이번 싸움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새로운 경영진의 행태는 불안과 불만만 키웠다. “어떻게 하면 주식으로 자기 돈 벌까 밖에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정리해고냐 임금 30% 삭감이냐 선택하라는데 임금 삭감하겠다는 건 그냥 나가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설명이다. 이들 임금 30%를 삭감하면 기본급은 최저임금보다 적어진다. 그런데도 회사는 노사가 합의하면 문제될게 없다면서 죄다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 끝까지 가보자”

문 지회장은 “이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미래는 없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생각”이라며 “조합원들은 이미 지난 봄부터 경영에 관심없고 돈 놀음만 하려는 경영진을 내보내고 노동자들이 공장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뜻을 모아왔다”고 강조한다. 문 지회장은 “기업이 경영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겨 정리해고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고, 주식만 조금 사서 기업이 가진 돈 마음대로 해도 문제될 것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모든 피해는 노동자들만 본다”며 “우리의 생존권을 걸고 반드시 힘을 모아 승리해야 하는 싸움”이라고 덧붙였다.

▲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1월 2일부터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다. 신동준

그래서 지회는 현재 해고자 50여 명뿐 아니라 비해고 조합원 1백여 명이 함께 투쟁하고 있다. 문 지회장은 “해고자들의 원직복직 싸움만이 아니라 해고자, 비해고자가 같이 살기 위한 싸움”이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집회 때 만난 이들도 대부분 비해고자였다. 하지만 같이 농성을 하고 집회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해고자들은 얼마 전 총회에서 계속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는 비해고자들의 생계비 지원을 위해 퇴직금에서 1백 만 원씩 걷기로 결의했다. 해고자 대부분이 기금을 입금했고 이 기금으로 비해고자들의 생계비를 조금이라도 지원하면서 흩어지지 않고 힘을 모아간다는 것이 문 지회장의 설명이다.

▲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부산시청에서 집회를 마치고 서면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신동준
문 지회장은 “투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다. 우리 생존을 스스로 지키는 일인데 별다른 결의가 필요하겠냐”고 의지를 표했다.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은 불안하고 어두운 현장의 미래를 밝게 만들기 위해 한 발 한 발 나서고 있다.

* 부산에 위치한 풍산마이크로텍은 지난 해 매각 이후 올해 3월 (주)피에스엠씨(PSMC)로 바꿨다. 풍산그룹은 지난 해 12월 29일 노동자들이 휴가간 틈을 타 회사 지분 57.2%를 하이디스에 기습 매각했다. 이후 하이디스는 현 대표이사인 정동수에게 주식지분을 양도했다.
회사를 인수한 현 경영진은 지난 3월 지회에 고용 및 근로조건 단체협약 승계를 약속했으나, 4월부터 태도를 바꿔 ‘유상증자’를 거론하며 임금삭감과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정리해고 하겠다고 입장을 밝혀왔다. 풍산마이크로텍지회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 7월부터 지회 부분파업 등을 진행했고, 이에 회사는 지난 8월 23일 정리해고를 철회한다고 지회와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회사는 이같은 합의를 뒤집고 10월 6일 노동청에 정리해고를 신고한 뒤 11월 7일 58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지회는 11월 2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해 현재까지 파업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회는 공장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며 서울 풍산그룹 본사와 부산시청, 고용노동부 부산노동청 등에서 1인시위와 시민선전전, 집회 등을 벌이고 있다.

투쟁으로 하나 된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

풍산마이크로텍지회는 지난 1월까지만 해도 현장직원 209명 가운데 23명만이 지회를 구성했었다. 2003년 처음 금속노조에 가입했을 때도 전체 직원 680여 명 중 80명 만이 조합원이었고 수 차례 구조조정 등을 거치면서 이보다도 더 줄어든 셈이다.

문영섭 지회장은 “항상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풍산그룹에 엄청난 탄압을 겪어왔다. 임단협도 시작만 하면 늘 장기투쟁이었다”고 지난 과정을 설명했다. 인원은 소수였지만 매년 질긴 투쟁으로 임단협을 체결하고 2010년에는 회사가 지부 집단교섭에 참가하도록 만드는 등 투쟁의 성과를 만들어왔다. 그러던 중 지난 해 매각을 겪으면서 고용불안을 느낀 현장노동자 155명이 노조에 대거 가입했다. 현재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 대다수가 그 당시 새롭게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이다.

조합원이 소수이던 때 지회에 대한 회사의 탄압은 만만치 않았다. 문 지회장에 따르면 회사가 조합원 전원을 구조조정하겠다고 했다가 큰 싸움을 겪고 절반 가량의 조합원만 남은 적도 있었다. 이번 정리해고에도 회사의 노조 탄압을 그대로 반영됐다. 지회 간부 24명 중 17명이 해고 대상자가 됐고, 기존 조합원 23명 중 20명이 해고됐다. 새롭게 노조에 가입해 대의원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도 회사에서 “노조 탈퇴하면 해고 명단에서 빼주겠다”는 회유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 조합원은 “회사에서 해고 통보하기 전에 해고자 명단을 보여주면서 노조 탈퇴하라고 설득했고, 그 과정에서 명단이 바뀌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투쟁을 같이하고 있는 조합원 중에는 이전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구사대로 조합원들을 탄압했던 이들도 있다. 문 지회장은 “어떤 형님은 자신이 구사대로 있던 당시를 괴로워하면서 더 이상은 개처럼 살지 않겠다고 얘기했다”며 “당시 지회에 반대했던 이들이 이제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투쟁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한다. 문 지회장은 “우리끼리 얘기지만 예전에 뭐했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지금 어떻게 하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며 웃는다.

“이번 싸움 이기고 현장으로 돌아가면 금속노조도 더 힘있게 바로 세우고 제대로 활동해야죠.” 문 지회장의 포부다. 매각과 정리해고, 쉽지 않은 싸움이 시작됐지만 노동자들은 이제 하나로 똘똘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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