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저녁시간대의 뉴스를 보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 소속의 추미애 환경노동위원회 상임위원장이 같은 당의 의원들조차 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선 한나라당 의원들만 앉혀 놓고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장면이 나왔다. 저런 황당무계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앞서 뭔지 모를 현기증마저 들게 하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인지조차 모를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이 기막힌 풍경에서 우리는 무지와 오만이라는 단어를 새삼 곱씹을 수밖에 없다.

▲ 12월30일 국회 환노위 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상임위 의원들이 노조법 강행을 막으려는 이정희 의원 손목을 잡으며 힘으로 제압하려 하고 있다.  <노동과 세계>

노동관계법 개정의 숨겨진 주제: 산별노조 교섭권

이번 노동관계법의 개정은 밖으로 드러나듯이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문제만이 핵심이 아니라, 기업별 노조체제의 유지와 산별노조체제로의 전환문제라는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이 물밑에 깔려 있었다. 즉,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교섭창구의 설치문제가 등장할 수밖에 없고, 교섭창구의 복수화가 가져올 고비용 저효율의 문제를 산별교섭이라는 창구설치로 해결할 수 있다는 노동운동 진영의 지극히 순박하고 낙관적인 기대도 존재하였다. 교섭권은 노조가 가진 고유한 권리일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한, 사용자와 정부도 산별교섭 자체를 부정하기가 곤란할 것이라고 단순하게 희망하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희망은 환노위의 법안심의 과정에서 무참하게 짓밟혀 버렸다.

노조가 단결권에 따라 산별노조로 조직하는 일을 자본과 정부가 나서서 방해하고 훼손하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하다. 왜냐면 노조내부적인 일을 노조 밖에서 의도적으로 방해하려면, 이를 위해 또 다른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용자로 일컬어져 온 자본은 노조의 단결권을 제약하기 위해선 교섭권을 무력화시키려는 방향으로 접근해 왔다. 교섭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노조는 더 이상 노조로 활동하기가 어려운 반신불수라는 사실을 저들은 잘 알고 있다. 노동관계법 개정에서 자본과 정부가 기업별 노조체제를 공고화하기 교섭창구 단일화를 끊임없이 주장해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지난 8월19일 열린 조합 2009년 16차 중앙교섭.

 지금 우리는 무얼 해야 하나?

민주적인 절차가 생략된 채 환노위의 법안심의과정을 거친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만약 국회를 통과한다면, 산별노조 교섭권은 사실상 봉쇄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노조가 교섭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법안에 대해 한국노총은 환영으로 화답했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는 건 또 다른 블랙코미디일 뿐이다. 한국노총에 대해 도대체 무슨 기대를 하였냐는 현장 노동자들의 성난 목소리만 키우거나, 모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면서 모르쇠로 강변하는 우울함만 채울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보다는 기업이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인정하도록 현장에서부터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노동관계법이 국회에서 논의되어 오던 지금과 같이 ‘어떻게 되겠지’하는 식의 소극적인 대응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져 버렸다. 현장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다는 푸념을 하는 게 어쩌면 사치로 되어 버린 현실에서 산별교섭권의 봉쇄에 가장 피해를 받은 금속노조부터 먼저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남이 내 일을 절대 해 주지 않는다는 생활의 격언을 한번만이라도 곱씹어 보면, 가장 어려워 보이는 일들도 하나씩 해결의 길이 보일 수는 있다.

고민에서 분노의 조직화로

금속노조 중앙교섭과정에서 그 동안 벌어져왔던 사소한 일들이 현실로 되었다는 자성에서부터 출발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금속산업사용자 단체는 교섭과정에서 노조의 교섭권을 인정하듯 하면서도 은근슬쩍 교섭권을 나누어 가질 수도 있지 않느냐는 식의 발언을 해왔기 때문이다. 기업경영권은 절대 신성시하는 사람들이 노조의 교섭권마저도 노사가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는 게 좋지 않느냐는 식의 야바위 놀음 같은 주장에 금속노조 스스로도 무디게 반응을 해온 결과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존재하기에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끊임없이 산별노조의 교섭권 인정은 ‘특혜’라는 식의 주장도 나오게 된다. 노조가 가진 고유권한을 특혜라고 막말을 해대는 현실을 바꾸려면 조합원들로부터의 분노를 조직화하는 일부터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노조운동의 순리이다.

이종래 /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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